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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못 들어봤지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테크 회사[앤츠랩]

중앙일보

입력

ASML이라는 회사 들어보셨나요? (쉿, ASMR 아님). 반도체를 만드는 장비를 만드는 네덜란드 회사인데요. 한국에선 흔히 ‘이재용도 찾아갔다’ 같은 헤드라인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일반인들이 워낙 모르다 보니까 ASML 홈페이지에도 “당신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테크놀로지 회사”라는 문구를 써 놨을 정도인데요.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사진 ASML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사진 ASML

이렇게 안 알려졌지만 ASML은 고성능 반도체를 만들 때 꼭 필요한 노광(露光∙빛을 쪼임)장비를 양산하는 세계 유일의 회사입니다. 일본의 캐논이나 니콘도 관련 기술이 있지만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분야에선 ASML이 독보적입니다.

ASML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객은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미국의 인텔 인데요. 얼마나 ASML 장비 확보가 절실했으면, 최근 ASML에서 'HIGH-NA EUV 장비'라는 신제품이 나오자 인텔 측에서 “우리가 첫 장비를 샀다”고 자랑을 할 정도입니다.

네덜란드 펠트호벤의 ASML 본사. 셔터스톡

네덜란드 펠트호벤의 ASML 본사. 셔터스톡

ASML은 1984년 설립 당시 Advanced Semiconductor Materials Lithogaphy의 약어였지만 지금은 그냥 고유명사 ASML을 쓰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전기전자 대기업 필립스와 ASMI라는 회사가 출자해서 세웠는데요. 반도체 사업이 발전하면서 긴요해진 노광 분야 기술력을 키워보자고 설립했습니다. 엄청난 초기 투자가 필요해 자금이 쪼들렸지만 1995년 암스테르담증시와 뉴욕증시에 상장하고 그즈음 현재 상품 라인업의 근간이 되는 PAS5500라는 제품을 내놓으면서 흑자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럼 이 노광장비가 반도체 공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 ASML의 제품은 뭐가 그리 대단한지를 알아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지난 번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경쟁력을 강조하며 손에 들고 흔들었던 둥그렇게 생긴 반도체 웨이퍼.. 그 웨이퍼 위에 어떻게 해서라도 더 많은 칩을 꽂아넣어야 AI도 되고 5G도 되고 고성능 고사양 반도체를 만들어 낼 수가 있는데요.

지난해 4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삼성전자 등 19개 반도체 회사 경영진이 화상으로 참석한 가운데 '반도체 회의'를 진행하며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4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삼성전자 등 19개 반도체 회사 경영진이 화상으로 참석한 가운데 '반도체 회의'를 진행하며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노광장비라는 것은 웨이퍼 위에 전류가 흐르는 길, 즉 회로를 그려요. 빛으로 미세한 패턴을 새기는 건데요. 얼마나 얇게 그리느냐에 따라 더 많은 반도체를 실을 수 있는 거죠. 여기서 '얇다'의 개념은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거니까 그냥 '내가 예쁘게 그려줄게~' 해선 안되고, 빛의 파장이 짧아야 해요.

예컨대 ASML이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는 EUV(극자외선) 장비의 경우, 기존 불화 아르곤(ArF) 레이저의 14분의 1 수준, 산술적으로 14배나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 세계 유일의 회사가 됐다고 하면 좀 너무 쉽죠.

빛의 파장이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주위 물질들이 빛을 또 흡수해 버려요. 빛을 쏘는 지점에서 웨이퍼 위 회로에 도달하기까지 단 1%의 빛만 살아남아 전달된다고 해요. 여러 개의 거울을 쌓아서 도달을 용이하게 해야하는데 흡수 안되고 많이 도달하게 해서 회로를 얇게 그려내는 것, 이게 ASML EUV 장비의 독보적 핵심 기술입니다. 참, 여기에 쓰이는 렌즈와 거울은 흔히 안경점에서 좋은 렌즈라고 권하는 독일제 자이스(Zeiss) 제품입니다.

물을 활용한 DUV Immersion 시스템. 현재 노광장비의 주종을 이룬다. 사진 ASML

물을 활용한 DUV Immersion 시스템. 현재 노광장비의 주종을 이룬다. 사진 ASML

ASML의 지난해 매출은 186억 유로(약 24조9705억원), 순이익은 59억 유로(7조9207억원)를 기록했습니다. 매출총이익률이 50%가 넘는다고 합니다. ASML의 상품 라인업은 앞서 언급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극(極)자외선(EUV) 장비, 기존 모델로서 현재 노광장비의 주류를 이루는 심(深)자외선(DUV) 장비, 기존 장비를 재건한 중고 재건장비, 계측&검사, 소프트웨어 등으로 이뤄집니다.

이 가운데 버스 크기의 EUV 장비는 한 대에 1억5000만 유로, 우리 돈 약 2000억원씩 하는데요. F-35 전투기보다 비싸다고 하죠. 반도체 공장 라인 하나에 10대는 들어가는데, 그럼 2조원! 그런데 또 이게 마구 찍어낼 수는 없고, 2020년에 31대, 작년에 42대 팔았습니다.

피터 베닝크 ASML CEO는 최근 넘쳐나는 수요를 생산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죠. 노광장비를 운송하려면 컨테이너 40개, 트럭 20대, 보잉 747 화물기 3대가 필요하다고 하니 글로벌 운송대란도 좀 악영향이긴 하겠네요. 여기에 400개의 부품회사가 전세계에 퍼져있습니다. 핵심 부품 200여개는 독일(광학제품), 일본(화학제품), 미국(하드웨어)에서 조달한다고 해요.

TSMC(작년 EUV 26대 구입)와 삼성전자(12대)가 VIP 고객이고요. 인텔이 2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각각 한 대씩 구입했습니다(미즈호증권).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ASML은 동탄2신도시에 DUV EUV 트레이닝센터, 재제조 시설 등을 짓기로 했다. 셔터스톡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ASML은 동탄2신도시에 DUV EUV 트레이닝센터, 재제조 시설 등을 짓기로 했다. 셔터스톡

ASML의 올해 매출은 작년보다 2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요. 2025년까지 매출은 꾸준히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컨센서스입니다. 수요가 생산능력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에 ASML은 일부 테스팅 과정을 생략하고 배송한 뒤 고객사에 도착해서 최종 테스트와 공식 인도 절차를 밟는 방식까지 도입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하면 매출 인식이 다소 늦어진다고 해요. 바꿔 말하면 실제 매출은 공식 수치보다 더 높다는 것! 20억 유로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주문을 받았는데 아직 인도하지 못한 물량도 230억 유로 어치가 된다고 하고요. 이것은 1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ASML에 따르면 현재 수요는 생산능력을 40% 이상 능가한다고 하죠.

정치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 네덜란드에 "중국에는 ASML 제품을 수출하지 말라"고 했는데요. 그 조치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중고 제품은 대상이 아니어서 중국에는 구버전을 팔기도 하는데 이 매출이 전체 매출의 15%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ASML 관계자는 "어차피 중고 버전이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신제품을 못 팔 이유는 뭐냐"고 볼멘 소리를 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ASML의 생산능력 확충이 좀 느슨한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도이치뱅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3D DRAM에 활용되는 장비 확충이 시급하다. 삼성전자가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ASML은 공급업체 입장에서 너무 느긋한 전망을 하고 있다. 2025~2030년이 걱정"이라고 적었습니다. ASML의 주가가 반도체 업황과 금리인상에 따라 출렁거리는 점도 유의해야.

결론적으로 6개월 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이 기사는 3월 25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이번 콘텐트가 마음에 드셨다면 주변에 널리 공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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