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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못 알아듣던 워킹맘…美 공인회계사에서 서예가 된 사연 [추기자의 속엣팅]

중앙일보

입력

추기자의 속엣팅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프롤로그]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는 1994년 ‘통일 한국의 구상’을 주제로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만난 참석자와 3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해외 교포들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배울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단체가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발언이 인상적이었다는데요. 뉴욕에서 논어와 주역까지 공부한다는 미국 공인회계사 김릴리안(67) 씨였습니다. 지금은 서예가가 되어 현대서예라는 캘리그래피로 지난해 통일부가 주최하는 ‘통일미술대전’과 올해 ‘소품대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서예가 김릴리안씨가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화랑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서예가 김릴리안씨가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화랑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김릴리안(67ㆍ본명 이정란) 씨는 교습소를 운영하는 워킹맘이었다. 30살을 앞두고 늦깎이 유학길에 올라 뉴욕 공인회계사 시험에 한 번에 합격했다. 기업 감사와 회계사로 활동했던 그는 60살이 되자 회계사 일을 완전히 그만뒀다. 올해로 7년째 미국 교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는 김씨를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의 세종화랑에서 만났다.

“아시안과 공부 못해” 모욕 극복    

한국에서도 남부러울 것 없었던 그에게 유학은 일종의 과업이었다. 3대 독자이자 세종대왕 29대손인 아버지는 5남매에 “우리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꼭 생각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세계를 제패했는지 배워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고3 때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약사였던 어머니가 자녀를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미국 공인회계사에서 서예가로 변신한 김릴리안씨. 김현동 기자

미국 공인회계사에서 서예가로 변신한 김릴리안씨. 김현동 기자

김씨는 수학 교수를 꿈꿨다. 한글과 산수를 빨리 깨우친 덕에 초등학교도 남들보다 2년 더 빨리 입학한 데다 월반까지 하면서 친구들보다 3살이나 어렸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뉴욕대 대학원도 수학과 입학 수속을 마쳤다. 경영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꾼 건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남동생의 사무실에 갔다가 회계사와 미팅하는 모습을 본 후다. 회계사라는 직업에 끌려 다시 입학 준비를 했다. 공인회계사 인턴십 요건을 채우기 위해 낮엔 회사, 저녁엔 학교에 다녔다.

유학 생활은 가혹했다. 수업의 10분의 1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교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녹음해 공부했지만, 교실에선 아무 말도 못 했다. 어느 날 대학 총장실에서 뉴욕대 경영대학원에 두 명뿐인 동양인 여학생을 호출했다. “영어도 안 되는 아시안 여성과는 같이 수업 못 듣겠다”는 불만이 들어왔다고 한다. 김씨에겐 너무나 모욕적인 순간이었다. 대만 여학생은 결국 학교를 그만뒀고, 김씨도 포기하려고 했다.

미국에서 의대에 다니던 막냇동생이 말렸다. “미국에선 공부나 일이나 특출나게 잘하면 아무도 무시 못 한다. 지금 포기하면 낙오자다. 열심히 해서 언니 무시하는 애들 다 이겨버려라”라면서다. 결정타는 8살 아들의 한마디였다. “엄마, 미국에 올 땐 저한테 가고 싶냐고 물어보지도 않았잖아요. 저는 이제 열심히 하고 있는데 엄마 힘들다고 다시 가자는 거에요?” 아들 앞에 부끄러웠다.

서예가 김릴리안씨가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화랑에서 붓글씨를 써보이고 있다. 김현동 기자

서예가 김릴리안씨가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화랑에서 붓글씨를 써보이고 있다. 김현동 기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시험 기간에 3~4일 새는 건 예삿일이었고, 평소에도 4시간 이상은 자지 않았다. 결국 총장상을 받고 최우등으로 졸업해 공인회계사가 됐다고 한다. 패션 업체에서 감사로 일할 때도 성과를 냈다. 남미 공장의 품질 관리반장에 손이 빠른 한국인을 영입해 불량품을 크게 줄이기도 했다. 그러다 과학고에 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배우가 되겠다고 하자 “아들의 일탈을 말리려고” 해외 출장이 잦았던 직장을 포기하고 뉴욕 국세청(IRS)으로 이직했다.

7년째 인생 2막 준비 “서예는 통일운동”  

김씨는 60살에 회계사 일에서 손을 떼고 인생 2막 준비에 나섰다. 교회에서 토요일마다 한국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일이 계기였다. 그는 “미국에서 부모와 소통이 안 돼 엇나가는 한국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2016년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시작으로 아동 요리 교육 지도사와 캘리그래피 자격증까지 땄다. 마지막 단계가 최근 시작한 경희대학원 서예 지도자 교육과정이다.

김릴리안씨는 "서예는 통일운동"이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흥사단에서 활동한 김씨에게 서예는 안창호가 주창한 '대공주의'를 잇는 활동이다. 김현동 기자

김릴리안씨는 "서예는 통일운동"이라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흥사단에서 활동한 김씨에게 서예는 안창호가 주창한 '대공주의'를 잇는 활동이다. 김현동 기자

서예도 그에겐 또 다른 도전이었다. 그는 “유학 시절엔 영어가 가장 어려웠는데 사실 내가 가장 못 하는 게 글과 그림이었다”고 했다. 연습 삼아 출품한 대회에서 입선하기 시작하자 재미가 붙었다. 처음엔 1년에 3~4번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하루 15시간 이상씩 서예를 연습하는 게 일상이 됐다.

공부를 마친 후 내년에는 미국에 돌아갈 예정이다. “미국에서 문화교실을 열어 재미교포와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미국인들이 우리 전통문화를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의 ‘진짜’ 포부는 거창하다. “서예는 통일 운동이에요. 도산 안창호 선생이 독립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선 하나가 돼야 한다는 ‘대공(大公)주의’를 내세워 여러 단체를 모았거든요. 전통문화를 통해 한민족의 문화적 뿌리를 교감하는 게 통일에 다가가는 확실한 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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