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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한파' 풀리나…전세대출 완화되고, '억'대 마통 돌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시중은행이 잇따라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은행 창구의 모습. 연합뉴스.

시중은행이 잇따라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은행 창구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은행권에 매섭게 불던 ‘대출 한파’가 물러가고 있다. 시중은행이 금융당국의 총량 규제로 높여놨던 대출 문턱을 이달 들어 크게 낮추면서다. 최근 전세자금 대출 규제가 풀린 데 이어 지난해 하반기 자취를 감췄던 ‘억’대 마이너스통장(신용 한도 대출)도 등장했다.

은행권 가계대출 규제 완화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은행권 가계대출 규제 완화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다시 등장한 '억'대 마통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5000만원으로 묶였던 시중은행의 마이너스통장(이하 마통) 한도 규제가 잇따라 풀리고 있다. 우리은행은 다음 달 4일부터 마통 한도를 5000만원에서 상품 종류에 따라 8000만~3억원까지 늘린다. 지난해 1월 한도를 5000만원으로 낮춘 지 1년 2개월 만의 조정이다. 직장인 신용대출 한도도 최대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늘어난다. 신한은행도 마통과 신용대출 한도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나머지 시중은행은 이미 대출 한도를 지난해 상반기 수준으로 돌려놨다. KB국민은행은 지난 7일부터 마통 한도를 1억~1억5000만원으로, 하나은행은 지난 1월 마통 한도를 1억5000만원으로 증액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달 25일부터 신용대출 한도를 2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대폭 늘렸다.

전세대출 관련 규제도 이달 들어 완화됐다. 시중 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전세대출을 전셋값 증액 범위 내에서만 해주고 전세대출 신청도 잔금 지급일 이전까지만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관련 규제는 지난 21일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전 시중은행에서 사라졌다.

이뿐이 아니다. 우대금리도 살아나고 있다. 우리은행은 연 0.2%포인트의 신규 대출 특별 우대금리를 신설했다. 5월 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적용한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우대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대출금리를 낮추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24일부터 중신용 대출상품 최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고. 케이뱅크도 이달 초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대출 금리를 최대 0.3%포인트 낮췄다.

가계대출 줄자 대출 빗장 푸는 은행권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 증감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 증감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은행권의 대출 문턱 낮추기는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가계대출 감소세 영향이 크다. 5대 시중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24일 기준 706조2932억원으로 전월 말보다 6441억원 감소했다. 지난 1월(-1조3634억원), 2월(-1조7522억원)에 이어 석 달 연속 감소세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감소세가 지속되면 은행 실적에 타격을 줄 수 있어 (내부적으로) 대출 규제 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대출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든 데는 대출 금리가 치솟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 1월 기준 연 3.91%로 4% 선에 육박한다. 1년 전(2.83%)보다 1%포인트 이상 올랐다. 통상 대출금리가 연 3% 일때 가계대출은 분기 당 34조1000억원 늘지만, 금리가 연 4%로 뛰면 분기당 16조원으로 증가 규모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이는 한국은행이 금리 수준에 따른 가계대출 증가 규모를 산출한 결과다.

금융당국이 도입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영향도 크다. 올해 1월부터는 전체 대출액이 2억원 초과할 경우 연간 대출 상환액은 연 소득의 40%(비은행 50%)를 넘을 수 없다. 7월부터는 총대출액이 1억원을 넘으면 규제 대상이다. 한은은 DSR 규제로 은행의 신규 가계 대출은 올해 7월 이후 13.4%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금리 변화에 따른 가계대출 증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금리 변화에 따른 가계대출 증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가계대출 증가세가 한풀 꺾이며 금융당국의 압박도 지난해보다 약해졌다. 더욱이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출 규제는 완화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주택담보 인정비율(LTV)을 최대 80%(생애 최초 구입)까지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LTV 규제만 완화하면 청년층 등에는 정책효과가 적은 만큼 DSR 규제도 일부 완화할 수 있다는 게 은행권의 시각이다.

하지만 은행권의 대출 규제가 1년여 만에 ‘냉·온탕’을 오가다 보니 소비자만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연말 강도 높은 총량규제로 일부 대출자가 잔금 대출 등에 어려움을 겪거나 비싼 이자를 내고 2금융권 등에서 대출을 받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총량규제는 연초에 대출 문턱을 낮추다가 총량 관리가 필요한 하반기부터 대출을 죄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선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가계부채 문제는 총량규제 같은 단기적인 땜질 처방이 아닌 부동산 공급을 늘려 자산가격을 안정시키는 등의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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