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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산업 ‘투자 족쇄’ 걷어내고, 중처법은 다듬고…‘K패스’는 만들어야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 6단체장과 오찬 회동에 앞서 티타임을 갖고 있다. [중앙포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1일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 6단체장과 오찬 회동에 앞서 티타임을 갖고 있다. [중앙포토]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걷어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대·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신사업을 개척하고, 시민 편의를 증진하는데 고질적 문제로 규제가 꼽힌 지도 오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 ‘전봇대’를 비롯해 ‘손톱 밑 가시’(박근혜 정부) ‘붉은 깃발’(문재인 정부) 등 표현이 바뀌었을 뿐 되레 규제 실타래는 더 꼬였다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강력한 규제 개혁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21일 경제 6단체장을 만난 뒤 “신발 속 돌멩이 같은 불필요한 규제들을 빼내 기업들이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힘껏 달릴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해외 진출 규제를 두고 “모래주머니를 달고 메달 따오라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규제 개혁에 대한 컨센서스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가운데 중앙일보는 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로부터 새 정부가 개선·지원해야 할 규제 정책 10대 과제를 제안 받았다. 이를 전문가가 함께 ▶과감히 폐지하거나 ▶합리적으로 보완할 규제 ▶화끈하게 지원해야 할 숙제 등 10가지를 꼽았다.

새 정부의 규제 개혁 10選.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새 정부의 규제 개혁 10選.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과감하게 폐지하고

① 재계에서는 “기간제나 파견‧도급 규제를 과감히 없애거나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기간제법상 2년 사용기간이 초과되면 정규직에 준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근로자가 계속 근무할 의사가 있어도 부담을 느낀 사업주 쪽이 계약을 연장하길 꺼려 고용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주장이다. 파견법도 대상 업무를 32개로 한정하고 있다 보니 되레 불법 파견 등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② 유통산업발전법은 시장에선 철 지난 ‘투자 족쇄’로 불린다. 대형마트 등은 전통시장 반경 1㎞ 안에 출점이 제한되고, 월 2회 의무 휴업해야 한다. 영업시간 제한도 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당선인은 광주광역시를 찾아 복합쇼핑몰을 거론하며 유통 규제 완화를 예고했다. 재계는 “대형마트 등에 대한 출점 및 영업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③ 전경련에 따르면 자산 1000억원 기업이 적용받는 규제 수는 5개지만, 자산 10조원이 넘으면 275개로 늘어난다. 중소기업이 성장을 거부하는 ‘피터팬 증후군’도 생겼다. “중소기업 졸업 기준에 다다른 기업 10곳 중 3곳은 졸업 회피를 위해 인위적 구조조정을 한 경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기업 규모에 따라 무조건 적용받는 ‘차별적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9년 8월 이후 신설된 대기업 차별규제 주요내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019년 8월 이후 신설된 대기업 차별규제 주요내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합리적으로 손질하고

④ 경제단체 4곳이 한 목소리로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 규제가 ‘중대재해처벌법’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45%가 “중대재해법이 고용의 걸림돌”이라고 답했다. 고령 및 만성질환자 등 취업 취약계층의 채용을 기피하게 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직업성 질병의 중증도 기준 및 원청 책임 범위 구체화 ▶처벌 수위 완화 ▶면책 규정 마련 등을 제안했다.

⑤ 주 52시간제를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실질임금이 줄어들자 일부 근로자들이 택배 업종 등으로 이직해 신규 채용은 더 어려워졌다. 날씨 영향을 받는 조선·건설업은 집중근로가 잦아 납기 준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재계는 “연장근로 한도를 노사합의 시 최소 월 단위로 합산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⑥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은 생존을 위협한다”고 우려한다. 최저임금 결정 논의와 관련해서는 “지역·업종별 특수성이나 기업 환경과 여건을 반영해야 한다”는 게 경제계의 주장이다. 또 최저임금을 올리더라도 속도가 중요한데 최근 5년 만에 41.6% 인상(2017년 6470원→2022년 9160원) 같은 경우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왼쪽)과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한국경영자총협회 류기정 전무(왼쪽)과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무거운 표정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⑦ A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5년간 조사를 받았다. 결국 거래의 부당성, 특수관계인 관여 등을 입증하지 못하고 무혐의 종결됐다. 재계는 이에 대해 “공정위의 과도한 조사, 동일 혐의에 대한 반복 조사로 기업 활동에 지장이 생긴 대표적 사례”라며 “동일 혐의에 대한 조사를 2회 이내로 제한하도록 공정거래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끈한 혁신방안 만들어야

⑧ 2019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기업의 31%는 애초에 한국에서 창업할 수 없거나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우버의 자가용 공유 승차, 알리바바의 안면 인식 결제 등이 대표적이다. 신산업에 대해선 네거티브 시스템(우선 허용, 사후 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 신산업을 가로막는 규제에 대해 ‘2년 후 효력 상실’ 일몰조항을 신설해 창업을 활성화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⑨ 인력난에 시달리던 B기업은 최근 대학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베트남 출신 연구 인력을 채용하려다 난관에 부딪쳤다. 한국에서 수학한 외국인 ‘고급두뇌’를 기업이 활용하게 돕는 ‘K패스’ 비자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현장 목소리가 높다. 영국도 브렉시트로 인한 인재 유출에 대비해 외국인 학생의 학위 후 체류 기간을 2년으로 연장하는 특별비자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연구개발 인프라는 선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가령 향후 글로벌 풍력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20㎿ 규모 이상의 풍력발전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서 풍력 블레이드 실증 장비는 한국재료연구원이 보유한 8㎿급이 최신식이다. 시장의 미래 수요를 따라가려면 정부가 나서서 20㎿급 이상으로 목표를 잡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북해에 조성된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 [사진 오스테드(풍력 발전기업) 홈페이지]

북해에 조성된 대규모 풍력발전 단지. [사진 오스테드(풍력 발전기업) 홈페이지]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전 정부에서도 위원회를 만들고 규제 개혁을 논의했지만 이해 관계자들이 기존 이익을 보호하는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결국 규제 개혁은 기업의 민원을 처리하는 이슈가 아니라 기업을 활동할 수 있게 해서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대 명예교수는 “새 정부에서 규제를 개혁하려면 가능한 각 부 고시, 장관령 규칙, 대통령령 시행령 범위 내에서라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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