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형’(사거리 1만5000㎞)을 쐈다며 영상까지 공개한 가운데 군 당국이 화성-15형(사거리 1만3000㎞) 발사로 사실상 결론낸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이 지난달 27일과 지난 5일, 지난 16일 세 차례에 걸쳐 시험 발사했던 미사일과 이번에 평양 순안공항에서 쏜 미사일이 다르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27일 군 관계자는 “북한이 화성-17형이라고 공개보도(25일)한 것에 대해 한ㆍ미 당국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정밀 분석하고 있다”며 “현재로선 화성-15형 발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찰위성 등으로 수집한 정보로는 이번에 탐지한 미사일의 엔진 노즐 수가 화성-17형(4개)이 아닌 화성-15형(2개)과 같고, 1단 엔진의 연소 시간도 화성-15형에 가깝다는 판단이다. 군 당국은 북한이 25일 공개한 영상의 경우 이전에 세 차례 화성-17형을 발사하면서 촬영해둔 영상을 편집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단 정보기관의 판단은 군 당국과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발표 이전부터 화성-17형으로 추정했으며 현재까지 이런 분석을 유지하고 있다.
"비행특성 '화성-17형' 가까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군 당국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다”는 말이 나온다. 특히 화성-17형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전문가들은 미사일의 비행 특성을 근거로 제시한다.
구체적인 정보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북한이 25일 공개한 미사일의 제원(최고 고도 6248㎞, 비행거리 1090㎞, 비행시간 67분)과 발사 당일 합동참모본부가 한ㆍ미 정보자산에 탐지됐다며 밝힌 제원(최고 고도 6200㎞, 비행거리 1080㎞)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다.
반 밴 디펜 전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 담당 수석부차관보도 미국의소리(VOA)와 인터뷰(26일 보도)에서 “한국과 일본이 발표한 정보에 따르면 궤적이 화성-15형보다는 화성-17형과 더 일치한다”며 “화성-17형이라고 보는 게 맞을 확률이 높은 추측”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 부연구위원은 “북한의 과거 행적 등을 볼 때 국가지도자가 등장할 정도의 성공 영상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것은 눈여겨봐야 하는 대목”이라며 “화성-17형이 아니라면 군 당국이 추가적인 분석 자료를 공개해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상 조작”에 “단정 어려워”
북한이 공개한 영상의 진위를 놓고도 평가가 엇갈린다. 일각에선 “발사 당시 평양의 기상 조건과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는 반면, “영상 촬영 방식이나 후보정 등을 고려하면 조작 증거만으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북한이 지난 25일 화성-17형이라며 공개한 영상이) 만약 지난 16일 시험 발사해 20㎞ 고도 아래에서 폭발한 미사일을 촬영한 영상이라면 발사 순간부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화염이나 비행 모습을 볼 때 실패한 미사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화성-15형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이론적으로는 탄두 등 페이로드(payload) 무게가 0㎏에 가깝게 비어있다면 기존 화성-15형으로도 유사한 비행을 할 수 있다”며 “(추력을 올리기 위해) 화성-15형의 2단 추진체 성능을 개량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미사일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미사일 종류가 아니라 올해 들어 진전된 북한의 미사일 기술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더욱 다양하고 성능이 고도화된 북한의 미사일 공격 능력에 대응해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를 원점에서 재고해야 할 상황”이라며 “군이 북한 위협을 평가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민 불안감을 낮출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짚었다.
TEL로 세운 뒤 곧장 발사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영상에선 이동식 발사대(TEL)의 기술적 진전도 확인됐다. 과거 북한은 화성-14형, 화성-15형 등 ICBM급 미사일을 쏠 당시엔 TEL에서 직접 쏘지 않고 따로 콘크리트 구조물 형태의 발사대를 미리 만들어서 쐈다.
TEL은 미사일 운반 수단으로만 쓴 뒤, 섭씨 3000도에 달하는 화염 등 발사 과정에서의 피해를 막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하지만 이번엔 TEL에서 세운 뒤 곧장 발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장영근 교수는 “화염이 TEL로 향하지 않고 옆으로 빠지도록 화염 유도장치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TEL 기술이 그만큼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과 달리 워낙 크기 때문에 이동거리가 매우 제한적”이라며 “실제 전력화해 배치하더라도 TEL의 군사적 효용성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