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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점퍼에 선글라스…'마블' 주인공처럼 등장한 김정은 속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2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를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담은 15분 15초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단순히 발사 현장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영화·뮤직비디오 등에서 사용하는 편집기법을 동원해 짧은 영화처럼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ICBM보다 김 위원장의 모습에 더 초점을 맞춘 영상을 제작, 공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북한이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25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신형 ICBM 시험발사를 단행할 데 대한 친필 명령서를 하달하고 시험발사 현장을 직접 찾아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25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신형 ICBM 시험발사를 단행할 데 대한 친필 명령서를 하달하고 시험발사 현장을 직접 찾아 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전 과정을 직접 지도했다. 연합뉴스

매체는 영상 속에서 김 국무위원장을 마치 미국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마블'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해당 영상에서 연기까지 했다. 검은색 가죽 항공점퍼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등장해 손목시계를 보며 화성-17형 발사 카운트다운을 지시하는 등의 장면을 연출하면서다.

조선중앙TV는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내용 매체다. 이 때문에 해당 영상은 국방력 강화를 집권 10년의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우는 김 위원장의 정치적 치적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북한은 정권 초기부터 영상을 체제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능했다. 김일성 주석은 해방 직후 제작 공정이 단순하면서도 신속하게 대중을 계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록영화에 주목했다. 기록영화제작소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기록영화는 6·25전쟁, 전후복구사업 등에서 주민들을 교양하는 영상교재로 활용됐다.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를 계승·발전시켜 시리즈물을 제작하는 등 기록영화의 폭을 넓히기도 했다.

모란봉악단이 2012년 7월 평양 시내 한 극장에서 진행한 시범공연에서 미키 마우스 등 미국 월트디즈니의 캐릭터가 등장한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모란봉악단이 2012년 7월 평양 시내 한 극장에서 진행한 시범공연에서 미키 마우스 등 미국 월트디즈니의 캐릭터가 등장한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정은 정권도 집권 초기부터 기록영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특히 젊은 후계자로서 짧은 정치 경력을 가진 김 위원장은 선대 지도자들의 현지지도 영상에 자신을 투영하는 기법을 활용해 자신의 부족한 리더십을 채우는 모습을 보였다. 또 주요 건축물 완공, 신형무기 공개, 미사일 발사 등을 영상으로 담아 정치적 치적을 내세우기 위해 기록영화를 이용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영상은 기존의 기록영화들과도 확연히 비교된다. 우선 화면을 연출하는 기법부터 진화했다.

드론을 활용해 높은 곳에서 현장을 내려찍는 부감촬영 기법을 통해 웅장한 효과를 주는가 하면 느린 화면과 빠른 편집을 섞어 쓰면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연출도 보여줬다. 한국이나 서방 국가들과 비교하면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기존에는 좀처럼 볼 수 없던 촬영 기법들이다.

특히 ICBM 발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영상인데, 영상의 주인공은 ICBM이 아니라 김정은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ICBM을 배경으로 무기고에서 걸어나오는 장면 등에는 슬로 모션 기법을 써 그의 존재감을 더 부각했다. 여기엔 '젊은 지도자'인 김 위원장의 개인적 취향도 반영됐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행사나 공연과 관련해 파격을 선보이며 대내외적으로 큰 이목을 끌기도 했다. 2012년 7월 6일 평양의 한 공연장에서 진행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는 미국 월트 디즈니(Walt Disney)사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 등 캐릭터 인형이 등장했고, 헐리웃 영화 록키의 주제가와 미국 1세대 아이돌로 불리는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마이웨이(My Way)도 울려 펴졌다. 이는 김 위원장의 취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에스라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는 "기록영화에는 당국의 정치적 의도와 지도자의 문화적 취향이 반영되는 측면이 있다"며 "북한은 투입 비용 대비 선전효과가 높다는 판단 하에 기록영화 제작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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