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년간 툭하면 무용론...통조림 취급 받는 전차의 역설[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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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두한 무용론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물론이거니와 많은 이들이 3~4일이면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양국의 전력 차이가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치열하게 교전 중이다. 러시아가 밀어붙이고는 있으나, 초조해진 푸틴이 핵무기 사용을 암시하는 언급까지 할 정도로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설령 러시아가 이기더라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러시아군 탱크가 우크라이나군 공격에 파괴돼 연기를 내뿡고 있다. AFP=연합

러시아군 탱크가 우크라이나군 공격에 파괴돼 연기를 내뿡고 있다. AFP=연합

이렇게 예상을 벗어난 데는 많은 이유가 거론된다. 러시아의 준비 부족과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도 그중 하나다. 속절없이 격파되는 러시아군 전차의 모습은 이런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러시아군 전차가 보병의 도움 없이 경계를 게을리하고 이동하다가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준비가 안이했는지 알 수 있다. 반대로 위험을 불사하고 가까이 다가가 대전차무기를 발사하는 우크라이나군의 용기는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면서 전차에 대한 격론이 붉어졌다. 그동안 러시아가 자랑하던 T-72, T-80, T-90 전차가 재블린, NLAW 같은 대전차미사일의 공격에 맥을 추지 못하자 ‘전차무용론’이 급속히 대두한 것이다. 아무리 전쟁이 경제성을 일일이 따져가면 하지는 않더라도 대당 50억 이상 하는 값비싼 전차가 1억~2억 내외의 대전차미사일에 쉽게 격파대 나간다면 전쟁 자원 관리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왼쪽에 매복한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대전차미사일에 러시아군 전차가 격파당하는 극적인 모습. 이처럼 생생한 정보가 전해지면서 전차무용론이 급속히 대두되고 있다. 유튜브

왼쪽에 매복한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한 대전차미사일에 러시아군 전차가 격파당하는 극적인 모습. 이처럼 생생한 정보가 전해지면서 전차무용론이 급속히 대두되고 있다. 유튜브

이처럼 전차가 방어력을 늘려도 대전차무기의 공격을 완벽히 막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음이 확인되자 전차의 시대가 끝났다는 주장이 많이 보도된다. 하지만 IT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전차가 격파되는 모습이 생중계되다시피 해서 보통 사람들이 받은 충격이 컸을 뿐이지 전차의 방어력 수준이나 대전차무기의 위력은 이미 알려진 상태다. 다시 말해 전차무용론이 결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오래된 주장

사실 전차무용론은 전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인 1916년에 영국군이 처음 전선에 투입한 Mk 전차에 독일군은 놀랐지만 엄밀히 말해 낯설어서 당황한 것뿐이었다. 곧바로 대응할 방법을 찾아내었고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처럼 자연스럽게 대전차무기의 역사도 함께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전차가 전선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주장과 충분히 격파할 수 있으므로 필요 없다는 주장이 양립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개발한 T-Gewehr 대전차소총. 전차 격파를 전담하기 위해 탄생한 최초의 무기다. 이때부터 전차무용론이 나왔다. 위키미디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개발한 T-Gewehr 대전차소총. 전차 격파를 전담하기 위해 탄생한 최초의 무기다. 이때부터 전차무용론이 나왔다. 위키미디어

종전 후에도 전차무용론은 공공연히 계속되었는데, 국내에도 내용이 보도됐을 정도였다. 1934년 5월 6일자 동아일보에 ‘결국 장갑을 관통하는 포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전차는 군축 의제로도 필요 없다’는 기사가 실렸다. 1937년 8월 26일 기사를 보면 더욱 구체적인데, 스페인 내전 결과 ‘전차는 용맹한 보병에 의해 능히 제압될 수 있는 통조림 같은 무기로 취급받았다’고 보도됐다.

전차무용론을 보도한 동아일보 1937년 8월 26일 기사.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차는 명실상부한 지상전의 왕자가 됐다.

전차무용론을 보도한 동아일보 1937년 8월 26일 기사.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차는 명실상부한 지상전의 왕자가 됐다.

흥미롭게도 당시에 전차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던 근거가 현재 전차무용론을 주장하는 이유와 동일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곧이어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지상전의 주역은 정작 필요 없다고 매도당한 전차들이었다. 전차를 빼고 유럽,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수많은 기동전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전쟁 말기가 되었을 때 전차는 모두가 보유하기를 원하는 첫 번째 무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심각할 정도로 전차의 위상에 위기가 닥친 사건은 1973년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이었다. 매복한 이집트군의 AT-3 대전차미사일과 RPG-7 대전차로켓에 의해 이스라엘 기갑부대가 궤멸과 다름없는 피해를 입었다. 당시에 전문가들이 받았던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당연히 전차무용론이 강력하게 대두하였지만 정작 전쟁의 대미를 장식하며 매조진 것은 이스라엘군 기갑부대였다.

노르웨이 차세대 전차 자리를 놓고 레오파르트 2A7와 경쟁 중인 K2가 현지에서 설상 주행 테스트를 받고 있다. 이처럼 무용론에도 불구하고 전차는 여전히 가치가 있는 무기다. 유튜브

노르웨이 차세대 전차 자리를 놓고 레오파르트 2A7와 경쟁 중인 K2가 현지에서 설상 주행 테스트를 받고 있다. 이처럼 무용론에도 불구하고 전차는 여전히 가치가 있는 무기다. 유튜브

이처럼 전차는 탄생한 직후부터 오늘날까지 툭하면 무용론이 주장돼 온 대표적인 무기다. 그럼에도 지난 100년간 전쟁이 벌어지면 항상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오히려 성능이 향상된 대전차무기가 계속 등장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전차가 중요한 역할을 꾸준히 담당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전차의 위상은 여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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