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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당선인이 어퍼컷 먹인 '대구막창'...시작은 서민 '육고기' [e슐랭 토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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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지역 특산물과 대통령 후보를 합성한 다양한 포스터들이 올라왔다. 지지자들이 당시 윤석열 후보의 어퍼컷 세리머니와 지역 음식·특산물을 넣어 합성한 이른바 '짤'이었다.

지지자들이 만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후보 시절 홍보 포스터. [SNS 페이스북 캡쳐]

지지자들이 만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후보 시절 홍보 포스터. [SNS 페이스북 캡쳐]

이중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대구막창을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쥔 윤 후보를 담은 포스터였다. 홍보물 위에는 '대구막창의 힘으로 정권교체!'라는 문구가 적혔다. 대선 당시 윤 후보는 대구에서 7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막창은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제주도 '흑돼지'처럼 대표적인 식재료다. 막창은 소와 돼지의 내장인데 소 막창은 소의 위를 가리킨다. 돼지 막창은 돼지의 창자다. 항문을 기준으로 안으로 약 50㎝까지 이어진 내장을 가리킨다.

돼지 막창과 돼지 곱창. 양념이 된 것이 곱창이다. 김윤호 기자

돼지 막창과 돼지 곱창. 양념이 된 것이 곱창이다. 김윤호 기자

막창은 소와 돼지의 소장 부위인 곱창과는 다른 부위다. 하지만 대구에선 사실상 막창과 곱창을 거의 혼용해 쓴다. “막창 함(한번) 묵자(먹자)”, “곱창 한디(한바가지) 하자(먹자)”라고 하면 돼지 막창이나 돼지 곱창 구이를 먹으러 가자는 뜻으로 통한다. 대구에선 막창·곱창 구이를 대부분 같이 판다.

막창은 소주 한잔에 곁들이는 최고의 안주이자 대표적인 서민음식이다. 오래전부터 대구는 ‘육(肉)고기’를 많이 먹었다. 교통이 열악하던 시절 해산물을 내륙지역인 대구로 가져오기 어려워서다.

대신 대구는 축산업이 발달한 경북 최대 도시여서 온갖 부위를 다채롭게 만들어 먹었다. 술안주도 육식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저렴한 돼지·소 막창·곱창 구이가 탄생했다.

대구막창 관련 이미지. [사진 대구시]

대구막창 관련 이미지. [사진 대구시]

대구시에 따르면 막창은 1970년대 초 대구시 중구 남산동 골목에 처음 등장했다. 한 식당에서 소 막창으로 찌개를 끓였는데 찌개에 넣는 막창이 양념이 배지 않고 미끌미끌해 술안주로 맞지 않은 게 시작이었다.

식당에선 요리한 막창을 내다 버릴 수 없어 고심 끝에 연탄불에 구워서 술안주로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 손님들이 쫄깃쫄깃한 막창 맛을 칭찬했고, 이후 술안주로 계속 찾게 된다. 막창은 이때까지만 해도 다른 소 부산물과 함께 주로 국을 끓이는 데 쓰였기 때문에 구워서 안줏감으로 낸다는 것 자체가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렇게 소로 시작된 대구막창은 훗날 돼지 막창구이, 돼지 곱창구이까지 만들어져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현재는 대구막창하면 소 막창보다는 돼지 막창·돼지 곱창을 일컫는 게 일반적이다.

대구에는 막창 식당들의 '막창 전성시대'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황금막창을 시작으로 서울막창, 삼일막창, 상동막창 시대를 거쳐 IMF 사태 직후 수성구 아리조나 막창 등의 식당들이 생겨났다. 이런 ‘막창 식당 릴레이’는 북구 복현오거리, 수성구 두산동, 남구 서부정류장 등까지 확산됐다. 고소하고 쫀득한 막창구이를 사실상 대구 전역에서 맛볼 수 있게 됐다.

안지랑 곱창골목의 모습. [사진 대구시]

안지랑 곱창골목의 모습. [사진 대구시]

해외 미디어들까지 찾는 전문화된 거리도 있다. '안지랑 곱창골목'이 대표적이다. 대구에 수많은 맛 거리가 있지만 안지랑처럼 많은 막창·곱창 식당이 단일 메뉴로 자웅을 겨루는 곳은 드물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1일 오후 찾은 곱창골목은 막창·곱창 간판을 동시에 내건 식당 50여 곳이 200m 거리에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안지곱창 임채일 대표는 "몇 년 전까지만 대구막창 맛을 보려는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더해져 골목이 인산인해였다"며 "드럼통에 연탄불을 식당 밖에 꺼내놓고 팔기도 했지만, 코로나 후 위생 문제로 식당 안에서만 돼지 막창·곱창을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안지랑 곱창골목은 1990년대 들어 가게가 하나둘 생겨나더니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맛 골목으로 자리 잡았다. 저렴한 가격에 곱창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려는 손님이 늘어나면서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곱창이나 막창을 씻고 삶는 냄새가 많이 나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업주들은 곱창 막창 가공을 외부 업체에 맡겨 악취 민원을 없애야 했다. 안지랑 곱창골목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전국 5대 음식테마거리로도 뽑혔다.

안지랑 곱창골목. 곱창과 막창을 함께 판매한다. 김윤호 기자

안지랑 곱창골목. 곱창과 막창을 함께 판매한다. 김윤호 기자

곱창골목에는 퇴근 시간인 오후 6시쯤이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골목길 곳곳에서 곱창이나 막창을 굽는 연기와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주문 단위가 '바가지'인 점도 독특하다. 플라스틱 바가지로 적당한 양에 맞춰 퍼준다. 돼지 곱창 한 바가지는 보통 500g에 1만4000원을 받는다. 막창은 150g에 9000원이다.

곱창은 기름기가 돌아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막창은 쫄깃쫄깃한 식감에 고소함이 더해져 인기가 높다. 된장소스인 막장에 찍어 먹는 손님마다 "아지매, 한디(한바가지) 더 주이소"라고 외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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