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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전설' 자매 키운 아빠…윌 스미스 생애 첫 오스카상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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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 리차드'는 테니스 최정상을 지킨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 그리고 이들을 선수로 길러낸 아버지 리차드의 실화가 토대다.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킹 리차드'는 테니스 최정상을 지킨 비너스와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 그리고 이들을 선수로 길러낸 아버지 리차드의 실화가 토대다.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갱단 범죄가 끊이지 않는 미국 LA 외곽의 빈민가 콤튼에서 무시당하며 살아온 가난한 흑인 남자가 있다. 어느 날 TV에서 우연히 테니스 경기 우승자가 엄청난 상금을 받는 걸 본 그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테니스 선수로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는 즉시 아이의 평생에 걸친 78쪽의 챔피언 육성계획서를 작성했다. 테니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그와 아내는 그길로 테니스를 독학하기 시작한다. 2년 뒤 태어난 딸과 이듬해 낳은 막내딸을 그렇게 테니스 꿈나무로 키웠다. 그 언니들까지 5자매를 한집에서 키운 부부는 밤엔 남편이 경비로, 낮엔 아내가 간호사로 맞벌이하며 어린 막둥이들에게 직접 테니스 훈련을 시켰다. 아이들을 반드시 존중받으며 살게 하리란 일념으로.

24일 개봉 영화 '킹 리차드' 주연 #테니스 제왕 윌리엄스 자매 실화 #가난속에 딸들 선수로 키운 아버지 #윌 스미스 연기 변신 첫 오스카 유력

자매 태어나기 전 시작된 테니스 챔피언 육성기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지 몰라도, 미국 테니스계 전설로 남은 실화다. 바로 20여년간 세계 테니스 제왕으로 군림한 자매 비너스 윌리엄스와 세레나, 그들을 키워낸 아버지 리차드가 그 주인공. 할리우드 배우 윌 스미스(54)가 주연과 공동제작을 겸해 이 가족의 프로 무대 데뷔기를 영화 ‘킹 리차드’(24일 개봉)에 담았다. 희끗하게 센 머리, 세월에 깊게 팬 이마 주름엔 외골수 가장의 삶의 무게가 배어난다. ‘맨 인 블랙’ 시리즈, 실사판 ‘알라딘’(2019) 등 블록버스터 속 흥행 스타의 유쾌한 모습과는 딴판이다.

스미스는 영화사와 사전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불가능한 꿈에 대한 이야기”에 빗댔다. “가능하다고 생각되었으면 했을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서 “결국 상황을 극복하는 건 인간의 정신력의 힘에 달려있다”고 했다. 테니스가 부유한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진 시대를, 딸들의 재능과 잠재력에 대한 믿음으로 뚫은 극 중 리차드에 대한 얘기이자, 그 자신에게 보내는 말이기도 했다. 1990년 NBC 시트콤 ‘더 프레시 프린스 오브 벨 에어’로 배우 데뷔해 33년 차. ‘킹 리차드’로 그의 생애 첫 아카데미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어서다.

윌 스미스, 33년만에 첫 오스카상 안을까

지난 3우러 19일(현지 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미국제작가협회 시상식에서 '킹 리차드' 배우 윌 스미스(가운데)가 영화의 실존 모델인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왼쪽),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AFP=연합]

지난 3우러 19일(현지 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미국제작가협회 시상식에서 '킹 리차드' 배우 윌 스미스(가운데)가 영화의 실존 모델인 테니스 선수 세레나 윌리엄스(왼쪽), 언니 비너스 윌리엄스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AFP=연합]

그는 이미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미국 배우조합상,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영국 아카데미 등 시상식 시즌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다. 미국 현지시각으로 27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각본‧남우주연‧여우조연‧편집‧주제가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스미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건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된 영화 ‘알리’(2001)와 강한 부성애를 연기한 ‘행복을 찾아서’(2006)에 이어 세 번째다. 수상 확률 분석 사이트 ‘골든더비’에서도 그는 ‘파워 오브 도그’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틱, 틱... 붐!’의 앤드류 가필드 등을 누르고 올해 이 부문 최고 유력 후보로 꼽힌다.

“받을 만하고, 받을 때가 됐다”(영국판 GQ)는 평단의 지지에 뒷받침이 된 건, 독불장군 같은 리차드를 그저 미화된 영웅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그려낸 그의 원숙한 연기다. 지난해 11월 북미 개봉 당시 현지 매체 US위클리는 “윌 스미스는 우뚝 솟은 연기를 통해 영웅이 반드시 지지하기 쉬운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증명한다”고, 오스틴 크로티클은 “스미스의 효과적인 연기는 리차드의 냉담함까지 충분히 표현해, (그가 외도 등으로 가족에게 저지른) 과거 착취 문제에 대해 짧게나마 질문해보게 한다”고 칭찬했다.

"가족이 선택한 꿈 향해 두 딸 '따라간' 아버지"

영화에선 리차드 윌리엄스가 딸들이 섣불리 유명세에 노출되지 않도록 프로 데뷔까지 대회 출전을 중단한 뒷이야기도 나온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에선 리차드 윌리엄스가 딸들이 섣불리 유명세에 노출되지 않도록 프로 데뷔까지 대회 출전을 중단한 뒷이야기도 나온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실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둔 스미스는 윌리엄스 가족의 이야기를 여느 스포츠 영화같은 도전과 극복이란 테마에 가둬놓고 보지 않았다. 비너스가 태어나기 불과 2년 전부터 아내와 테니스를 배워나간 리차드에 대해 “그들은 가족으로서 이 배움을 함께했고 매순간이 새로운 도전이었다”고 했다.
스미스는 부모 역시 자녀 못지않은 미완성의 존재라 해석했다. 특히 그는 올해 22살인 막내딸 윌로우와 자신을 떠올리며 리차드와 두 딸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강요도, 떠미는 것도, 윽박지르는 것도 아닌 관계였다. (실존 인물인 테니스 선수) 비너스가 들려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데 자매가 자라면서 뭔가를 잘못하면 그들은 벌로 테니스 연습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리차드는 강요하지 않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는 단지 가족으로서 함께 선택한 꿈을 향해 자매를 ‘따라갔을’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유년기 가정폭력 딛고 불가능, 가능으로 바꾼 톱스타

윌 스미스가 지난 2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열린 미국배우조합(SAG)상 시상식에서 '킹 리차드'로 받은 첫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AFP=연합]

윌 스미스가 지난 2월 2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열린 미국배우조합(SAG)상 시상식에서 '킹 리차드'로 받은 첫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AFP=연합]

빈민가에서 나고 자란 가족에겐 갱단의 범죄 위협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실제로 비너스와 세레나의 언니 예툰데와 어머니 오라신은 2003년 괴한의 총에 맞는 사고로 사망했다. 영화에도 리차드가 그 자신은 아버지 보살핌 없이 자랐지만, 딸들만큼은 지키기 위해 동네 불량배들에게 비폭력으로 맞서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리차드의 태도는 스미스의 삶의 철학과도 맞닿은 것이다. 어린 시절 가정폭력 경험을 극복하고 10대 시절 배우 이전에 래퍼로 먼저 데뷔한 그는 노랫말에 비속어를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아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랩을 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다른 래퍼들에게 상술이라 비웃음을 샀지만, 그런 고집을 지키며 그래미상을 4번이나 수상했다.

배우로선 할리우드 최고 흥행 스타를 지켜왔다. ‘맨 인 블랙 2’(2002)부터 ‘핸콕’(2008)까지 주연작 8편이 차례로 개봉해 연속으로 모두 북미 박스오피스 1억 달러를 돌파한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다. 이혼의 아픔 등을 담아 지난해 미국에 이어 올해 한국어 번역판이 출간된 그의 자서전 『윌』의 부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단 하나의 힘’이었다.

‘킹 리차드’는 테니스 선수 출신 공동 제작자 팀 화이트와 야구 선수였던 레이날도 마르쿠스 그린 감독 등 체육인 출신들이 뭉쳐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그린 감독은 스미스가 캐스팅 1순위였던 이유에 대해 “우리가 리차드 윌리엄스에 대해 아는 건 전부 미디어에서 본 것들이다. 한 인간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자 했다”면서 “윌 스미스는 아버지로서 소박함, 보호 본능을 그려내면서도 미디어의 집중 조명을 받는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균형 있게 표현했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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