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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뱀장어 철인데 또 일손 놨다…그물 가득 30㎝ '괴생물' 정체 [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일대 한강 하구에서 조업 중인 어부 김홍석(64)씨는 요즘 1주일째 일손을 놓고 있다. 봄철 주 소득원인 실뱀장어 철을 맞았지만, 천적인 끈벌레가 대거 출몰한 때문이다. 가느다란 실 모양을 한 길이 5㎝ 정도의 실뱀장어는 뱀장어의 치어다. 끈벌레는 지렁이와 비슷한 형태의 20∼30㎝ 길이로, 지난 2013년부터 봄철 한강 하구에만 본격적으로 출몰하는 신종 ‘괴생물체’다.

그물마다 끈벌레 가득, 실뱀장어 폐사  

김씨는 25일 “예년보다 10여 일 이른 이달 중순부터 실뱀장어가 잡히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설치한 7개의 그물마다 2㎏가량 끈벌레가 무더기로 걸려 나오는 바람에 그물마다 같이 잡힌 10여 마리의 실뱀장어가 모두 폐사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1일부터는 끈벌레 출몰이 본격화돼 강에 설치해둔 실뱀장어 그물을 아예 묶어버리고, 기약 없이 실뱀장어 조업을 중단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에서 실뱀장어 잡이 그물에 잡힌 끈벌레. 행주어촌계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에서 실뱀장어 잡이 그물에 잡힌 끈벌레. 행주어촌계

김씨는 “봄철이면 이런 상황이 10년간 지속하고 있지만 해마다 끈벌레가 늘어가고, 퇴치 대책도 없는 마당이어서 생계 걱정에 암울하다”고 했다. 이어 “정부에서 끈벌레를 수매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끈벌레는 지난 2013년부터 한강 하구에 봄철만 되면 대규모로 출몰하는 불청객이 됐다. 그 피해가 늘어가자 어부들이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포식성이 강한 끈벌레가 어로작업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어서다.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에서 실뱀장어 잡이 그물에 잡힌 끈벌레. 행주어촌계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인근 한강 하구에서 실뱀장어 잡이 그물에 잡힌 끈벌레. 행주어촌계

“끈벌레 수매하면 퇴치와 어부 생계유지에 도움”  

박찬수(63) 전 행주어촌계장은 “어민들이 강에서 그물 가득 끈벌레를 걷어 올려도 별도로 처리할 방법도 없고, 조업을 이어가기 위해 그대로 강에 다시 버리는 경우까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어부들이 유해생물인 끈벌레를 잡을 경우 정부에서 수매해 준다면 끈벌레를 퇴치할 수 있고 어부들의 생계유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심화식(67) 행주어촌계 한강살리기어민피해비상대책위원장은 “내수면 생태계를 교란하는 배스·블루길·황소개구리 등을 정부와 지자체 등이 수매해 퇴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끈벌레도 수매해 주길 바란다”며 “한강은 국가하천이므로 정부에서 수매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행주어촌계.

경기도 고양시 행주대교 부근 한강 하구에 설치한 그물에 끈벌레와 같이 걸려 죽은 실뱀장어. 행주어촌계.

배스·블루길·황소개구리도 수매로 퇴치  

어부들은 정부 수매 책임의 당위성으로 상류에서 하수처리장이 가동되고 있는 점, 끈벌레가 실뱀장어를 전멸시키다시피 하는 유해성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행주어촌계에 따르면 끈벌레에서 나온 점액질로 인해 잡은 실뱀장어 가운데 95%가량이 폐사하고 다른 치어들도 금방 죽는다. 이로 인해 어민 수십명이 황금 조업기인 실뱀장어 철에 일손을 놓고 있다. 끈벌레로 인해 어부 등은 연간 소득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봄철 실뱀장어를 눈앞에 두고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곡수중보 위치도. 중앙포토

신곡수중보 위치도. 중앙포토

끈벌레, 행주대교 일대서 집중 발견  

끈벌레는 고양시 행주대교 상류에서 신곡수중보 사이 15㎞ 구간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어부들은 “행주대교 기점으로 한강 상류 6∼7㎞ 지점에 있는 난지물재생센터와 서남물재생센터에서 한강으로 배출하는 방류수가 김포대교 아래 신곡수중보로 물길이 가로막히는 행주대교 일대에서 끈벌레가 봄철마다 대규모로 출몰하는 점을 볼 때 하수처리장 방류수 영향이 있다고 본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난지물재생센터와 서남물재생센터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하수·분뇨처리장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서울시 하수처리장에서 방류한 물로 인해 끈벌레가 출현했다는 어민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고 지나치다”며 “하수처리장에서 방류 중인 하수 수질은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 농도 10ppm 이하로 매우 깨끗하게 정화된 상태”라고 반박하고 있다.

행주어촌계는 4년 전 고양시의 연구용역에서 끈벌레 발생 원인이 ‘높은 염도’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국의 강 하구 가운데 행주대교 일대 한강 하구에서만 끈벌레가 나온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자유로변에서 바라보이는 한강 신곡수중보. 150m 상류에 김포대교가 있다. 전익진 기자

경기도 고양시 자유로변에서 바라보이는 한강 신곡수중보. 150m 상류에 김포대교가 있다. 전익진 기자

하수처리장 방류구 이전 검토 희망  

행주어촌계는 이와 함께 “물길이 정체되는 신곡수중보 상류 행주대교 일대에만 끈벌레가 집중적으로 출몰하는 상황을 볼 때 난지물재생센터와 서남물재생센터의 방류구를 물 흐름이 인위적으로 막히지 않는 신곡수중보 하류 쪽으로 옮기는 방안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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