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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 더 고급어종 취급…기름지고 부드러운 맛 '제주 붉조기' [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생선이라고 다 담백하다? 천만의 말씀
기름지고 고급스러운 생선 No.1, 제주 붉조기

티빙 '백종원의 사계' 제주 붉조기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제주 붉조기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제주의 봄은 당연히 바다에서 온다. 겨울이 지나면 바다에선 통통하게 살찐 뿔소라가 나오고, 속살이 붉은 홍해삼도 봄이 제철이다. 도미 종류는 크게 철이 따로 없지만 진정한 제주의 맛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자리돔도 겨울이 지나가야 맛이 들기 시작한다. 뼈째 썰어 물회로도 그만이고, 젓갈을 담그면 심각한 밥도둑.

다 맛있는 재료들이지만 다들 잘 알려진 음식들이라 신기한 맛은 없다. 그런데 여기저기 탐문을 하다 보니 제주도에서는 봄철에 조기로 회를 떠서 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조기로 회를? 처음 듣는 이야기라 신기해서 파고 들어가 보니, 그 조기는 서해안에서 흔히 먹는 참조기가 아니라 붉조기라는 다른 생선이라는 거였다.

붉조기? 붉은 조기라는 뜻인가? 아무튼 그렇게 붉조기가 표적이 되었고, 붉조기를 찾으러 제주도 다대포항으로 향했다. 물론 이 붉조기는 이름만 조기일 뿐 조기 종류는 아니었고, 붉조기라는 이름은 제주 지역에서만 불리는 방언 같은 이름이었다.

붉조기. 공식 명칭은 눈볼대. 농어목 반딧불게르치과의 생선. 등 쪽이 붉고 배 쪽은 은백색인 물고기로, 유난히 크고 동그란 눈 때문에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갖고 있다. 지역에 따라 ‘눈퉁이’나 ‘눈뿔다고’, 혹은 ‘빨간고기’라고도 불린다. 좀 더 잘 알려진 이름을 대자면 ‘금태’라는 이름도 있다. 이쯤 해서 ‘아, 금태!’ 하실 분도 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제주 붉조기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제주 붉조기편. 인터넷 캡처

맛있는 고급 어종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고급 일식당에서도 ‘금태구이입니다’ 라며 내놓는 목소리에는 은근히 힘이 실린다. 일본 이름은 아까무쓰(赤鯥). 가끔 나이 드신 분들이 이 생선을 긴타로(金太郞)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긴타로는 우리 말로 노랑촉수(정말 생소한 이름이다)라고 불리는 다른 물고기다. 긴타로도 붉은 생선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모습도 영 다르다. 그런데도 옛날 신문을 찾아보면 ‘금태(일본명 긴다루)’라고 쓰여 있는 경우를 꽤 많이 볼 수 있는데, 어쩌면 금태라는 이름이 긴타로의 한자 표기인 금태랑(金太郞)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눈볼대, 금태, 붉조기, 뭐라고 부르건 이 생선은 노랑촉수, 즉 긴타로와는 전혀 다른 종이라는 것만 알아두자. (심지어 긴타로라는 이름은 정식 명칭도 아니다. 노랑촉수의 일본 공식 명칭은 ‘히메지’다.)

우리보다는 일본에서 더 고급으로 쳐 주는 어종이고, 눈볼대라는 이름이 낯설기 때문에 본래 우리 바다에서 잡히는 어종은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자산어보』에는 적어(赤魚)라는 물고기가 나온다.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은 강성어(剛性魚)다. 모양은 도미와 비슷하지만 작고, 색은 붉다. 강진 청산도 근처에서 많이 나온다”고 되어 있다. 국립수산연구원의 ‘21세기 신자산어보 프로젝트’에서는 이 적어가 눈볼대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아마도 ‘적어’라는 표기는 부산 경남 지역에서 눈볼대를 부르는 이름인 ‘빨간고기’라는 이름을 그대로 한자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부산 출신들에게 왜 이 생선을 ‘빨간고기’라고 부르는지 물어봤다. “빨갛잖아요.” 선명하다. “제사 때 상에 올리는 생선이에요. 비싸고, 맛있고.” 눈볼대, 즉 붉조기는 다 자라면 40㎝까지 커진다고 되어 있는데, 이 큰 개체는 모두 암컷이다. 어렸을 때는 수컷인데 3~4년이 지나 번식 가능한 나이가 되면 암컷으로 성전환을 하는 묘한 생물이기도 하다.

한밤중을 지나 새벽에 제주 다대포항에 들어온 어선은 한참 동안 이런저런 생선들을 내려놓느라분주하더니붉조기는 단 한 상자를 내려놨다. 그만치 귀한 몸이다. 최대 40㎝ 정도까지 자란다고 하지만 25~30㎝ 정도는 되어야 상품성이 있는데, 그만큼 굵은 씨알은 많이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붉조기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구이를 먼저 추천한다. 기름기가 많은 생선은 열을 가했을 때 기름이 녹아내리며 살을 촉촉하게 적시기 때문에 구워도 퍽퍽해지지 않고, 특유의 풍미가 더욱 강렬해진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제주 붉조기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제주 붉조기편. 인터넷 캡처

생선이란 본래 비늘을 긁어내고 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붉조기는 비늘째 굽는 방법도 있다. 워낙 비늘이 얇기 때문에 끓는 기름을 부어 익히면 비늘과 껍질이 바삭해지며 프라이드 치킨의 껍질 역할을 한다. 여기에 무심히 소금만 툭툭 뿌려 익힌 붉조기는 진정 이름값을 한다. 서울에서 가끔 먹을 수 있는 붉조기는 대략 20㎝ 정도 크기의 작은 생선이라 이 진미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봄날 산지에서 먹는 붉조기 구이는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구이만 먹어도 별미로 칭송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봄날 산지에 가서 붉조기를 먹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회에 있다. 붉조기는 수심 100m 이하의 바다에서 살기 때문에(물론 이 정도도 본격적인 심해는 아니지만) 건져 놓으면 평지 기압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래서 선어로 회를 뜰 수밖에 없으니 싱싱함이 관건이다.

물론 그 회 맛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먹어 본 사람도 많지 않지만, 일단 살이 연하기 때문에 회도 무르다. 쫄깃한 사후경직의 맛은 아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기름 맛이 난다. 일본의 일부 지방에서는 이 붉조기 살을 가리켜 ‘흰 도로’라고도 한다고 하는데, 그 표현이 적당해 보인다. 그래서 붉조기 회는 간장이나 초장보다 마늘과 참기름이 들어간 막장에 찍어 먹는 것이 더 맛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기름기에 기름기를 더하는 것이 더 맛있을 수 있다는 역설인데, 제주에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외지인들이 가끔 의아해하는 제주의 맛, 식초다. 양념 초된장의 새큼한 맛이 언뜻 느끼할 수도 있는 붉조기 맛을 길들여준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제주 붉조기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제주 붉조기편. 인터넷 캡처

아무래도 붉조기를 제대로 즐긴다면 회-구이-조림의 순이 가장 좋을 듯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구이-회-조림도 좋을 듯. 어쨌든 마지막에 조림을 먹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한국식으로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을 넣고 끓인 새빨간 붉조기 조림. 언뜻 보기에도 국물 위에 기름 층이 꽤 두텁다. 물론 흰살생선이니 냄새도 없고, 기름도 맛있다. 진득한 맛이 밥반찬으로 그만.

요약하면 구이, 회, 조림 모두 맛있다. 다만 회에 대해서는 질감 때문에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는데, 유튜브에서 가장 핫한 김지민(유튜브 ‘입질의 추억’ 운영자)씨는 “지금껏 먹어본 생선회 가운데 top3 안에 든다”고 말한 바 있다. 식신 백종원 대표도 “제주도식 초된장이 신의 한 수다. 구이는 먹다 보면 느끼해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회는 끝없이 먹을 수 있겠다”고 했다. 궁금하지 않은가? 이 봄, 다들 한번 도전해 보시길.

송원섭 JTBC 보도제작국 교양담당 부국장.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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