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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인어공주상의 동화 같은 기적…안데르센상 후원 사연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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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레저팀장의 픽 - 남이섬과 안데르센상 

남이섬 선착장 옆 강가에 서 있는 인어공주상. 남이섬과 안데르센상의 인연은 이 동상에서 시작되었다. 사진 남이섬

남이섬 선착장 옆 강가에 서 있는 인어공주상. 남이섬과 안데르센상의 인연은 이 동상에서 시작되었다. 사진 남이섬

한국의 이수지(48) 작가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안데르센상 수상자(일러스트 부문)로 선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22일, 포털사이트 연관 검색어로 난데없이 남이섬이 올라왔다. 남이섬이 안데르센상의 단독 후원사라는 사실이 이수지 작가 수상 소식과 함께 알려진 것이다. 한류관광 일번지 남이섬이 어쩌다 해외 아동문학상을 후원하게 됐을까. 그것도 2009년부터 14년째 내리. 이야기는 남이섬 선착장의 인어공주상에서 시작한다. 어쩌면 황당한,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인어공주

남이섬에 가봤으면 본 적 있을 테다. 가평선착장에서 배 타고 남이섬에 내리면 선착장 바로 왼쪽에 인어공주상이 서 있다. 강물이 차오르면 몸이 잠기고, 겨울엔 산타 복장을 하기도 한다. 남이섬을 대표하는 조형물인데, 사실 이 동상은 인어공주와 하등 관계가 없다.

남이섬 인어공주상은 원래 처분 곤란한 동상이었다. 이 동상에 동화를 입혀 동화 같은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 사진 남이섬

남이섬 인어공주상은 원래 처분 곤란한 동상이었다. 이 동상에 동화를 입혀 동화 같은 스토리텔링을 완성했다. 사진 남이섬

눈 내리는 겨울이면 남이섬은 인어공주상에 산타 옷을 입힌다. 사진 남이섬

눈 내리는 겨울이면 남이섬은 인어공주상에 산타 옷을 입힌다. 사진 남이섬

2002년이었다. 소주병 나뒹굴던 유원지를 생태문화 관광지로 개조하던 시절, 남이섬 숲에서 방치된 동상 하나를 발견했다.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었고, 주제도 분명하지 않았다. 내다 버리기엔 아까워 선착장 옆 강가에 세워 뒀다. 발목 아래가 강물에 잠겨 인어공주상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인어공주가 사는 동화나라.’ 2006년 나미나라공화국을 선언할 때 천명했던 남이섬의 내일이지만, 남이섬이 동화나라를 꿈꾼 건 그때부터였다.

동상에 인어공주 이야기를 입힌 이듬해인 2003년, 남이섬에 안데르센홀이 들어섰다. 옛 건물을 고쳐 썼는데, 동화의 아버지를 기리기 위한 공간은 얄궂게도 유원지 시절 카바레 건물이었다. 남이섬은 2003년 안데르센홀에서 ‘안데르센 동화와 원화전’을 열었다. 국내 최초의 안데르센 육필 원고를 전시한 행사였다.

세계책나라축제  

남이섬에서 열린 세계책나라축제 현장. 책 속에서 책을 읽고 책과 노는 축제다. 사진 남이섬

남이섬에서 열린 세계책나라축제 현장. 책 속에서 책을 읽고 책과 노는 축제다. 사진 남이섬

내친김에 남이섬은 2005년 세계책나라축제를 개최했다.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 기념을 내세웠다. 행사 주최는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가 맡았고, 남이섬이 장소 제공과 경비 지원을 담당했다. IBBY는 1953년 설립된 세계 최대 아동청소년도서 비정부기구다. 유네스코와 유니세프에도 공식 지위가 있다. 세계책나라축제를 주최하는 IBBY가 안데르센상도 주관한다. 안데르센상의 권위 또한 막강하다. 덴마크가 낳은 세계 최고의 동화작가를 기리는 문학상인 만큼 덴마크 여왕이 직접 수상한다.

남이섬에는 곳곳에 책이 있다. 아무나 아무 데서 책을 읽고 책과 쉴 수 있다. 사진 남이섬

남이섬에는 곳곳에 책이 있다. 아무나 아무 데서 책을 읽고 책과 쉴 수 있다. 사진 남이섬

세계책나라축제는 남이섬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축제로 거듭났다. 2005년 첫 축제에만 38개 나라가 참가했고, 이후에도 수십 개 나라가 참가한다. 세계책나라축제는 여느 책 축제와 차원이 다르다. 섬을 아예 책으로 덮어 버린다. 다보탑·첨성대 같은 대형 조형물도 책으로 만들고, 미끄럼틀이나 의자·책상도 책으로 만든다. 벽이나 바닥에도 책을 깔아놓아 아무나 언제든지 책을 집어 들고 읽게 한다. 세계책나라축제에선 문자 그대로 책과 함께 논다.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 홈페이지에 나오는 안데르센상 관련 내용. 사진 오른쪽에 남이섬이 안데르센상을 후원한다는 문구와 남이섬 로고가 있다. IBBY 홈페이지 캡처

국제아동도서협의회(IBBY) 홈페이지에 나오는 안데르센상 관련 내용. 사진 오른쪽에 남이섬이 안데르센상을 후원한다는 문구와 남이섬 로고가 있다. IBBY 홈페이지 캡처

남이섬이 안데르센상 후원사로 선정된 건 2008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개막식에서였다. IBBY는 남이섬이 아동문학 진흥에 쏟아부은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유니세프 후원 활동(남이섬은 유니세프가 인정한 국내 유일의 어린이 친화 공원이다), 안데르센홀 운영, 세계책나라축제 개최 등 남이섬의 남다른 수고를 지켜본 IBBY는 세계 최고 권위 아동문학상 후원사로 대한민국의 작은 관광기업을 지정했다. 남이섬 이전의 후원사는 16년간 안데르센상을 독점 후원한 일본의 닛산자동차였다.

다시 인어공주

제주 탐나라공화국. 헌책 30여만 권을 기증받아 책방이자 놀이터를 만들었다. 손민호 기자

제주 탐나라공화국. 헌책 30여만 권을 기증받아 책방이자 놀이터를 만들었다. 손민호 기자

이 거짓말 같은 동화를 만든 주인공이 남이섬을 한류 관광 일번지로 가꾼 강우현(69) 전 대표다. 강우현 대표는 원래 홍익대 미대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한 그림작가다. 그림동화책도 수십 권 펴냈다. 2001년 남이섬에 들어가기 전부터 강 대표는 그림동화책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1995년 KBBY(IBBY 한국 지부)를 세울 때도 역할을 했고, 남이섬에 들어가기 전엔 KBBY 대표도 맡았다. 현재 그는 제주도에서 탐나라공화국을 일구고 있다. 책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헌책 30여만 권을 기부받아 초대형 책방이자 놀이터를 만들어놓았다.

남이섬 안데르센그림책센터. 사진 남이섬

남이섬 안데르센그림책센터. 사진 남이섬

남이섬 안데르센그림책센터에서 전시 중인 안데르센상 후보 작품들. 전시대 윗줄에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이수지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 남이섬

남이섬 안데르센그림책센터에서 전시 중인 안데르센상 후보 작품들. 전시대 윗줄에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이수지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사진 남이섬

남이섬의 책 사랑도 변함이 없다. 섬에 들어가면 사방에 책이 있다. 호텔 ‘정관루’ 객실엔 TV 대신 책이 있고, 화장실에도 책이 꽂혀 있다. IBBY와 남이섬의 관계도 여전히 두텁다. 현재 IBBY의 장밍주 회장이 나미나라공화국이 임명한 중국 대사다. IBBY에서 활동하는 해외 유명 작가 대부분이 남이섬과 인연이 있고, 남이섬에서 주최하는 나미콩쿠르(남이섬국제그림책일러스트레이션) 심사위원 상당수가 안데르센상 심사위원과 겹친다. 남이섬 민경혁(49) 대표는 “이수지 작가의 안데르센상 수상 배경에는 IBBY에 대한 남이섬의 오랜 관심과 투자가 있다”고 말했다. 남이섬은 안데르센상의 유일한 후원사 자격으로 2010년 이후 역대 후보작을 보관 및 전시하고 있다. 물론 이수지 작가의 작품도 있다.

“문화는 오랜 관심과 투자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남이섬이 처음 IBBY와 인연을 맺을 때 퍼주기냐는 쓴소리도 들었습니다. 아동도서 출판사 대부분이 외면했었고 정부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제 안데르센상 수상작가도 배출했으니 우리도 IBBY 총회를 개최해도 되지 않을까요? IBBY 총회는 전 세계 75개 회원국이 참가하는 대형 문화 행사입니다. 관광은 문화를 파는 것입니다.”

강우현 대표에 소감을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다. 참, 그 인어공주상. IBBY의 신뢰에 힘입어 남이섬 인어공주상은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그 유명한 원조 인어공주 동상과 동등한 위상을 획득했다. 남이섬 인어공주상은 IBBY가 인정하는 공식 인어공주상이다.

남이섬 인어공주상. 남이섬을 대표하는 동상을 넘어 세계 아동문학계가 인정하는 기념물이 되었다. 사진 남이섬

남이섬 인어공주상. 남이섬을 대표하는 동상을 넘어 세계 아동문학계가 인정하는 기념물이 되었다. 사진 남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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