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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과 몰락 초래하는 통합형 수능 수술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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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호 34면

2022학년도 수능 만점자 기준 표준점수 차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2022학년도 수능 만점자 기준 표준점수 차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과 침공’ 봤으면서 “지난해 수능 그대로”

“유불리 없다” 궤변 늘어놓는 무책임 정부  

문과 지망생 좌절…인문학 붕괴 가져올 것

문과 수험생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비판받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난맥상이 올해도 재현되리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2023학년도 수능 시행 기본계획’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선 지난해 처음 실시한 통합형 수능의 보완책이 나올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문과 침공’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문과 응시생의 피해의식이 컸기 때문이다. 발표 내용은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문·이과 통합형 시험 체제를 유지하고 수학과 국어 영역을 ‘공통과목+선택과목’ 형태로 출제하는 골격에 변화가 없는 것은 물론, 과도한 교차지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문과 학생의 불안을 줄일 선택과목별 세부점수통계 역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규민 평가원장은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선택과목에 따라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집단으로 문과에 불리, 이과에 유리하다고 해석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의 인식과는 간극이 큰 발언이다. 지난해에도 학원가에서는 “새로운 통합형 수능이 문과생에게 불리할 것”이라는 사전 경고가 잇따랐다. 그럴 때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 당국자들은 “특정 과목이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결과는 주요 대학에서 ‘이과의 문과 침공’으로 나타났다. 수학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이과생이 대거 문과를 지원하면서 대입 전형이 요동쳤다. 현재 공식적으론 고교에 문·이과 구분이 없다. 그러나 수능 선택과목 때문에 사실상 문과와 이과가 나뉜다. 수학 영역의 경우 문과생들은 대개 확률과통계를 선택하고 이과생들은 미적분이나 기하를 응시한다. 수능 결과 미적분 또는 기하를 응시한 학생이 유리하게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 중등진학지도연구회가 인문계열 지원자 1630명을 대상으로 이과생 교차지원 비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 22개 주요 대학 중 8개 대학에서 이과생의 인문계열 교차지원 비율이 절반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강대(80.3%), 서울시립대(80%), 한양대(74.5%), 연세대(69.6%), 중앙대(69.3%), 경희대(60.6%), 건국대(60.6%), 서울대(60%) 등이었다.

이런 사태를 겪고서도 지난해와 다를 바 없는 수능 기본계획이 발표되니 문과생의 불안은 증폭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구조적으로 바뀐 것이 없기 때문에 이과 응시자가 여전히 유리한 상황”이라고 했고,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미적분이나 기하 응시생이 높은 표준점수를 무기로 상위권 대학 문과에 지원하는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확률과통계를 택했던 문과 지망생은 뒤늦게 미적분이나 기하로 바꿔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안정적으로 공부에 매진하는 이과 수험생과 대조적이다.

문과의 위축은 수험생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이나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 같은 자조로 넘길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과학기술은 인문학적 고민과 결합할 때 빛을 발한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을 강조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심리학과 컴퓨터과학을 공부했다. 불과 20년 전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을 때 정부는 병역 특례를 늘리는 등 각고의 노력으로 과학기술의 경쟁력을 지켜냈다. 지금은 정반대의 발상이 필요하다.

인문학이 발전하려면 대학의 변화가 필수다. 우리 현실에선 입시 제도가 관건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문학의 붕괴를 바라보며 한탄하지 않으려면 비상을 걸어야 한다. 취업에 불리한 문과 지망생을 격려는 못 해줄망정 수능을 코앞에 두고 어떤 과목을 택할지 갈팡질팡하게 하는 현행 통합형 시험은 수술이 필요하다. 당장 올해 수험생의 피해를 막기 위한 겹겹의 보완책을 내놔야 한다. 수학 난이도 조정이나 각 대학의 인문계 차별 시정 같은 현장의 제안을 경청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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