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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상담·수리·행정·방역 다해, 교사 절반 “휴직 고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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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1호 06면

팬데믹 시대 ‘1인 5역’ K-선생님

지난 2일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를 나눠주고 있다. 교육부는 4월 둘째 주까지 주 2회 등교 전 선제검사를 권고한 상태다. [뉴스1]

지난 2일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가 학생들에게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를 나눠주고 있다. 교육부는 4월 둘째 주까지 주 2회 등교 전 선제검사를 권고한 상태다. [뉴스1]

지금, 선생님은 힘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3년 차의 새 학기, 우리나라 선생님은 가르침을 넘어선 일들로 버겁다. 교육, 상담, 시스템 수리, 행정에 방역의 책무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1인 5역’ 교사 5명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K-방역에 빗대 이 대한민국 교사 5명을 ‘K-선생님’으로 불러도 좋을 법하다. ‘K-선생님의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오전 7시 경기도 시흥시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하수연(가명) 교사는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등교한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업무 때문이다. 교실에 도착하면 소독제부터 뿌리고 창문을 활짝 연다. 곧이어 핸드폰이 울린다. 20여 분간 20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애가 기침을 약간 하는데, 등교해도 되나요?” “확진됐는데, 수업은 어떻게 받나요?” 학부모의 궁금증 해결도, 증상에 따른 상황판단도 모두 선생님의 몫이다. 양세훈 교사(가명, 경기도 수원시의 고등학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콜센터 직원이 된 기분”이라며 “아침마다 전화로 자는 아이들을 깨우고, 학부모님과 상담하면서 코로나 상황에 대처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교사가 학생들 대신해 교실 청소도

정작 선생님들의 코로나19 상황은 어떨까. 지난주만 해도 유·초·중·고 교직원 신규 확진자는 3만2117명이 발생했다. 전체 교직원 50만여 명 중 6%가량이 한 주 새 감염된 것이다. 학교로서는 구멍 난 인력을 재빠르게 메꾸기가 쉽지 않다. 하 교사는 “확진되면 병가를 쓸 수 있지만, 새 학기엔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격리 상태에서 수업을 강행한다”며 “초등학교는 과목별로 수업하는 중·고교와 달리 담임 한 명이 30명을 전담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오전 9시 수업 시작. 선생님은 ‘멀티플레이어’로 변신한다. 교육 당국에서는 전면 대면 수업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밖에 없다. 새 학기 이후 확진된 학생들만 약 105만 명이기 때문이다. 컴퓨터·태블릿PC·카메라·마이크 등을 총동원하다 보니 쉴 틈이 없다. 교실을 돌며 수업하는 중·고등학교 교사는 장비 세팅에만 10분이 훌쩍 지나간다. 김지수(가명, 부산의 한 중학교) 교사는 “화면 안팎의 아이들을 동시에 다루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제는 ‘난 수업할 테니, 들을 사람은 들어라’라는 심정”이라고 전했다. 양 교사는 “티를 안 내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힘들다는 불만이 튀어나온다”며 “이제는 하다못해 학생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하 교사는 “종종 아이들이 컴퓨터가 안 된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 교사지, 컴퓨터 고치는 기술자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다”며 “해결이 안 되면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결국 선생님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면 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유치원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한다. 기존의 교육과정으로는 코로나19 이전의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코로나 키즈’를 가르치기 어려워서다. 서울 관악구의 공립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연정(가명) 교사는 “학교는 보충학습이라도 가능하지만, 놀이 중심의 유치원은 수업 진행 자체가 안된다”며 “유치원에서 소풍 놀이를 한다거나, 영화관 놀이를 하면 아이들에게서 “저 소풍 가본 적 없어요, 영화관 가본 적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와 난감하다”고 전했다.

한 교사가 교육청에서 보낸 자가진단키트를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한 교사가 교육청에서 보낸 자가진단키트를 학생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 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변화한 교육환경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교사들은 현장을 떠난다. 경기도교육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중 절반가량(48.6%)의 교사가 휴직 또는 퇴직을 고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송재희(가명, 경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비대면 수업을 학부모가 지켜보고 있어 부담감도 커지고, 아이들이 선생님 사진을 캡처하는 등 초상권 문제도 생긴다”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못한 선생님들은 부담감을 느껴 예년보다 빠르게 퇴직을 결정하는 분도 계신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우리 원에서만 선생님 두 명이 휴직했다”며  “교육 현장에서의 실정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수백 차례 지침만 바꾸니 현장에서는 당연히 소화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오후 4시 학교가 텅 비는 시간, 선생님은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는 미뤄뒀던 행정업무를 처리한다. 김지수 교사는 “학교 시간표 조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확진자가 나오면 매일 시간표를 갈아엎어야 한다”며 “3년간 이 업무를 맡아 매번 다른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다가 대인기피증이 올 뻔했다”며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곧이어 청소 시간. 코로나19 이후 학생들 대신 교사가 직접 교실을 청소한다. 학생들이 등교 전 하게 돼 있는 자가진단키트도 일일이 나눠 포장(소분)해 놓는다. 하 교사는 “편의점 알바생이 따로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학생 중 확진자가 나오면 역학조사까지 선생님이 나선다. 경기도교육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88.6%의 교사들이 대면·비대면 수업, 방역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스트레스라는 점에 동의했다.

학령인구 줄어 교사 정원 감축 예정

교내 신규 확진자가 전교생의 3% 이상 발생할 경우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 [뉴스1]

교내 신규 확진자가 전교생의 3% 이상 발생할 경우 전면 원격수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 [뉴스1]

오후 8시 늦은 시간 교문을 나선다. 그런데 불안하다. 교육 당국에서 언제, 어떻게 새로운 지침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교사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포털사이트에 공문이 공개되다 보니 ‘네이버 공문’이란 별칭도 생겼다. 이연정 교사는 “구체적인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는데, 뉴스에서 지침이 바뀐다고 보도하면 학부모 전화가 쏟아져 두려울 정도”라고 털어놨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은 선생님들의 정신건강을 해친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교사 절반(48.9%)가량이 정신건강이 나빠졌다고 답했고, 5.1%는 병원 치료를 원할 정도로 정신건강 악화를 호소했다.

하 교사는 “마스크를 쓴 채 수업하다 보니 제자들을 만나면 누군지 잘 몰라 버퍼링(파악 또는 처리에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 생긴다”며 “코로나19를 핑계로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고 전했다. 양 교사는 “학부모님들은 교사에게 하소연하지만, 교사들은 하소연할 상대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 교사는 “교사는 공무원이기 이전에 교육자인데, 교육자보다는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내가 선생님이 맞나?’ 의문도 든다”고 하소연했다.

학교 현장은 사실상 좀비 상태지만 올해 교육부는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사 정원을 1089명 감축할 예정이다. 임선일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교육부, 교육청이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교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맡기고 있다”며 “코로나19를 이겨내는데 의료인만큼 큰 역할을 한 분들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이들의 상황에도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도, 행정도, 방역도 모두 선생님에게 책임을 묻는 ‘학교 만능론’은 선생님들을 지치게 한다. 송 교사는 “코로나19로 교육 격차가 벌어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정부도, 학부모도 열심히 가르치지 않은 교사 탓을 하더라”며 “학부모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교문 밖을 나서면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사는 선생님의 고충이 결국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밥상머리 교육까지도 교사에게 맡기니 아이들도 지친다. 아이들은 학교 안보다 학교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는 걸 잊지 말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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