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소주병 투척男 미스터리…"인혁당 사건과 무관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2.03.25 10:51

업데이트 2022.03.25 11:04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소주병을 던진 40대 남성이 자신의 주장과는 달리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마련된 사저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던 도중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던진 소주병이 깨지자 경호원들이 몰려들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마련된 사저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던 도중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던진 소주병이 깨지자 경호원들이 몰려들고 있다. 송봉근 기자

대구 달성경찰서는 “전날 박 전 대통령에게 소주병을 던진 40대 남성 A씨에 대해 이날 중 구속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25일 밝혔다.

A씨는 24일 낮 12시17분쯤 대구 달성군 유가읍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인사말을 하던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소주병을 던진 혐의(상해 미수)다. 소주병은 박 전 대통령의 2m 정도 앞에 떨어졌으며, 10여 명의 경호원이 즉시 박 전 대통령 앞을 막아섰다. 소주병에 맞거나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A씨가 던진 소주병 안에 든 액체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본인이 집에서 마시고 남은 소주병을 가지고 왔다고 해서 아마 남은 소주일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액체 성분 확인을 위해 국과수에 소주병 조각 등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당초 본인의 주장과 달리 1974년 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전날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소주병을 던졌을 당시 “HR_인민혁명당에 가입해달라”는 문구가 달린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A씨는 경찰에 체포된 후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본인은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사법 살인’인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사과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고 덧붙였다. 소주병 속에 있던 액체가 독극물인지 등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이날 오전 일찍부터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낮 12시15분쯤 박 전 대통령이 도착하자 인터뷰 장소 앞까지 접근한 후 박 전 대통령의 인사말 도중 뛰어들어 소주병을 던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대구 달성군 사저 입주를 앞둔 24일 오전 8시50분 박 전 대통령에게 소주병을 던진 남성이 백팩을 등에 매고 태극기를 두른 채 서성이고 있다. 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 대구 달성군 사저 입주를 앞둔 24일 오전 8시50분 박 전 대통령에게 소주병을 던진 남성이 백팩을 등에 매고 태극기를 두른 채 서성이고 있다. 뉴스1

경찰은 이 남성을 즉시 제압했지만, 이 과정에서 취재진과 시민들이 넘어지기도 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사건 당시 바로 옆에 있던 경찰관이 소주병을 던지기 직전 이 남성의 팔을 잡아당겨 병이 멀리 날아가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인혁당 사건 희생자 추모기관인 4·9통일평화재단 측도 A씨가 인혁당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4·9재단은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1975년 4월 8일에 형이 확정된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는 사형수 8인을 비롯해 총 25명”이라며 “당사자들 또는 당사자의 배우자들은 현재 모두 70세를 넘긴 고령이고 자녀·손자녀들 중에도 (A씨와) 같은 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A씨가 활동하고 있다는 ‘HR_인민혁명당’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선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라고 했다. 또 “유족들의 동의 없이 인혁당 사형수 8인의 사진을 게시해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이에 대한 시정 조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혁당 사건은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사법 살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치적 판결이다. 1974년 박정희 정부 때 중앙정보부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가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며 관련자 23명을 구속했다. 이 중 도예종씨 등 8명은 1975년 4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내린지 18시간 만에 사형당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인혁당 사건을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라고 발표했다. 인혁당 사건이 고문 등에 의해 조작됐다는 국가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2002년 12월 법원에 재심청구를 냈다.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당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첫 판결과 2007년 재심 판결을 병렬적으로 보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크게 반발했다. 시민단체 등도 박 전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이상일 공동대변인을 통해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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