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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사태에 쌀값 4배 폭등…러시아 고려인학교, 한숨만 쉰다

중앙일보

입력

“엄마가 우니까 아이도 따라 울고. 저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사는 김 발레리아(61·여)가 3일 전 목격한 이별 장면이다. 고려인 민족학교 내 유치원에 다니던 4살 여자아이는 엄마 손에 이끌려 학교를 떠나야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사업이 어려워진 부모는 더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할 것 같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김 발레리아는 “이번 주에만 아이 3명이 학교를 떠났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우수리스크도, 고려인 민족학교도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려인 아이들이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에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다. 사진 김 발레리아 제공

고려인 아이들이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에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배우고 있다. 사진 김 발레리아 제공

고려인 민족학교는 우수리스크의 유일한 한국어·문화 교육기관이다. 고려인 민족문화자치위원회 출신인 김 발레리아가 2019년 최재형기념사업회의 도움을 받아 세웠다. 그는 주민 10%가 고려인인 우수리스크에 고려인을 위한 전문 교육기관이 없는 게 안타까웠다고 한다. 국내 지자체가 힘을 보태면서 한해에 150여명이 교육받는 학교로 성장했다.

하지만, 1년 만에 위기를 맞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면서 역사탐방, 아리랑 무용단 공연 등이 제한된 탓이다. 학교 내 유치원을 세우는 등의 노력으로 건물 잔금을 치르면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사진 김발레리아 제공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민족학교. 사진 김발레리아 제공

우수리스크의 경우 1000루블이면 살 수 있던 쌀 10㎏ 값이 한 달 새 4500루블로 껑충 뛰었다고 한다. 해외에서 물품을 들여오는 게 제한되면서 소시지 공장 등이 문을 닫았고 파산하는 개인 사업자가 늘고 있다. 이를 견디다 못해 러시아를 떠나려는 사람이 늘면서 한국행 비행기 값이 한때 20만 루블까지 폭등했다. 우수리스크엔 전쟁이 끝나더라도 이전처럼 경제가 복구되기 어려울 거란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점점 학생들이 떠나고 있고 맘편히 학교에 오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김 발레리아는 전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김 발레리아는 끝까지 학교를 지키겠다고 했다. 선생님들만 바라보는 학생 140여명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어렵게 마련한 고려인 학교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도 크다고 했다. 김 발레리아는 “연해주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줄어서 이제 학교가 다시 살아나나 기대했는데 전쟁이란 악재가 생겨서 마음이 아프다”며 “하루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서 모두가 평화를 되찾고 학교도 다시 학생들로 정겹게 북적였으면 좋겠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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