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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사지휘권 격돌 천정배·김종빈…둘이 와인잔 부딪힌 이유 [尹검찰공약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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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을 둘러싸고 신·구 권력간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이유로 지휘권 폐지 등 윤 당선인 공약에 공개 반대하자 인수위가 24일 법무부 업무보고를 전격 취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수사지휘권 논란은 윤 당선인 총장 시절 추미애·박범계 장관의 3번의 지휘와 연관되지만 멀게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10월 헌정사상 첫 수사지휘권 발동 파동을 소환하고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소속 천정배(68·사법연수원 8기) 전 법무부 장관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첫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김종빈(75·연수원 5기) 검찰총장은 천 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면서도 곧바로 사표를 던졌다.

중앙일보는 1949년 검찰청법 제정 이후 장관의 첫 수사지휘권 갈등의 두 장본인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윤 당선인의 수사지휘권 폐지 등 검찰 공약과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역행이란 현 여권의 반발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2005년 10월 17일 정부 과천청사 법무부 장관실에서 천정배(왼쪽) 당시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퇴한 김종빈 검찰총장을 배웅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5년 10월 17일 정부 과천청사 법무부 장관실에서 천정배(왼쪽) 당시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사퇴한 김종빈 검찰총장을 배웅하고 있다. 중앙포토

[尹검찰공약 갈등①] 첫 수사지휘 파동 천정배·김종빈 “文정부 남용 맞지만…”

천 전 장관과 김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이어지고 있는 수사지휘권을 둘러싼 갈등 양상이 당시와는 크게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비검사 출신인 여당 유력 정치인 장관이 검찰총장을 지휘하긴 했지만, 현재 문재인 정부와 달리 적대적인 관계는 결코 아니었다고 했다. “와인 잔을 부딪쳐 가며 화기애애하게 많은 대화를 했다. 서로를 존중했다”면서다.

두 사람은 하지만 수사지휘권 제도 자체를 놓고선 의견이 갈렸다. 천 전 장관은 수사지휘권에 대해 “대통령 휘하에 있으면서 부당한 간섭을 벗어나야 하는 검찰의 상충된 위치에 대한 ‘절묘한 조화’”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김 전 총장은 현 정부의 수사지휘권 남용 사례를 거론하며 “폐지가 한 방법”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의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에 대해 천 전 장관은 반대를, 김 전 총장은 찬성을 했다.

▶천정배 = 검찰이 큰 틀에서는 대통령 휘하에 있다. 하지만 준사법적인 수사·소추 업무를 하는 검찰은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부당한 간섭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두 가지의 상충된 요구를 수사지휘권이 절묘하게 조화시켜 놨다고 생각한다.
▶김종빈 = 검찰의 독립성이 중요하지만, 견제 장치가 없으면 안된다고 해서 만든 게 수사지휘권이다.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이며, 실제로 가동돼야 한다는 법이론은 거의 없다. 현실에서 남용된 사례가 있는 한국에서는 수사지휘권을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천 전 장관은 “나도 야당 의원 시절(1996년)에 수사지휘권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고 소개했다. “검찰을 정치권력의 하수인으로 두면 안 된다고 봤다”면서다. 하지만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검찰의 정치적 독립도 중요하지만, 선출된 권력도 아닌 검찰이 스스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여러 폐해가 있는 건 사실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첫 수사지휘권 파동’ 당사자  전 법무부 장관, 검찰 총장의 생각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첫 수사지휘권 파동’ 당사자 전 법무부 장관, 검찰 총장의 생각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김 전 총장은 현 정부의 수사지휘권 발동 사례를 본 뒤 폐지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여겼다. 그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면서 ‘전에는 지휘권을 발동하면 총장이 나갔는데, (윤석열 당시 총장은) 왜 안 나가나’라고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제도의 정치적 남용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천 전 장관도 추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부적절했다는 시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윤석열 당시 총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고, 정치적 다툼으로 악용됐다”면서다. 그러면서도 “(수사지휘권) 제도로서의 장점은 살려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2005년 당시 상황에 대해 갈등이 극대화된 현 상황과 크게 다르다는 데 대해서도 동의했다. 천 전 장관은 “당시 검찰에 대한 조금의 적대감도 없었다”라며 “한국 사회의 소수 정치범이라는 이유만으로 구속이 남발되는 것에 대한 견제였다”라고 설명했다. 김 전 총장도 “사표를 내기 전에 천 전 장관과 굉장히 많은 토론을 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 전 장관은 나의 사퇴를 반대했다”고 했다.

김 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당시 ‘국민과 검찰 조직원의 신뢰를 잃었다’며 사의 의사를 밝힌 본인에게 “공영방송의 중계 하에 당신의 ‘사표 반려식’을 해주겠다. 이러면 당신 체면도 살지 않느냐”라고 사퇴를 만류한 일화도 소개했다.

지난 2015년 당시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천정배(오른쪽) 전 법무부 장관과 김종빈 검찰총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2015년 당시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한 천정배(오른쪽) 전 법무부 장관과 김종빈 검찰총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서로 다른 검찰개혁 지향에도…“文정부 개혁 실패” 이구동성

검찰 개혁의 지향점에 대해 둘의 견해는 확연히 달랐다. 천 전 장관은 수사‧소추권 분리에, 김 전 총장은 공정한 검찰 인사에 방점을 뒀다.

▶천= 검찰 권한이 부족해 못 할 일은 한국에 없다. 검찰 수사권 강화에 반대한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장이다. 수사권과 소추권을 분리하는 게 옳겠다.
▶김= 검찰개혁의 첫 번째 목표는 정치적 중립화다. 그러기 위해선 검찰에 대한 인사 공정권이 보장돼야 한다. 대통령이 검찰 인사권에 대한 개입을 대폭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천 전 장관은 윤 당선인의 검찰 직접 수사권 확대 공약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들고나온 ‘검수완박’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검찰을 둘로 쪼개서 순수한 의미의 소추권만 가지는 검찰을 두고, 강력한 수사를 할 수 있는 전문 수사기구를 만드는 게 좋겠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김 전 총장은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이 오염돼 있으면 제도가 잘 운영되지 않는다”라며 “검찰 인사를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이 검찰 인사 권한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측면에서 윤 당선인의 민정수석실 폐지 공약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민정수석의 힘이 세지며 청와대의 의중이 검찰 인사를 좌우했다”면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대한 평가도 검찰 개혁을 보는 눈과 마찬가지로 엇갈렸다. 천 전 장관은 “여러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큰 틀로 봐서 공수처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 기구로 키워가야 한다”고 했다. 반면 김 전 총장은 “공수처는 여운국 차장의 말대로 아마추어”라며 “수사 기관만 늘어나면 일반 시민들이 복잡하고 괴로워진다”고 했다.

검찰개혁에 대한 시선은 달랐지만, 현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둘 다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치 논리에 따른 졸속 개혁”(천 전 장관), “완전한 실패작”(김 전 총장)이라는 것이다. 김 전 총장은 ”사법 제도 개혁을 하려면 형사 사법체계 전반을 들여다 봐야 하는데 검찰 힘빼기에만 눈독을 들였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신분이던 지난 2월1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사법개혁 관련 공약을 발표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신분이던 지난 2월1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사법개혁 관련 공약을 발표하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尹 본인 생각 밀어붙이지 말고 소통해야”

둘은 표현만 달랐을 뿐 사법 개혁을 둘러싼 윤 당선인의 일방통행 가능성을 경계하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토론 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천= 윤 당선인이 자기 생각만 내세우지 말고 소통해야 한다. 이를테면 사회적 소통 기구를 만들면 좋겠다.
▶김= 윤 당선인이 본인 생각을 밀어붙일게 아니라 여러 개혁 방안을 토론 의제로 내놓는 것이 좋다.

천 전 장관은 “선거 때는 어차피 정치적인 상황이 반영된 공약들이 나오는 것”이라며 “검찰개혁 등은 매우 중요한 의제인 만큼 차분하게 토론을 거치면 좋겠다”라고 주문했다.

김 전 총장 역시 소통을 강조하면서 최근 수사지휘권을 둘러싼 갈등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수사지휘권은 결국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라며 “국민이 충분한 공감을 얻을 정도로 국회에서 많은 토론이 있어야 하고, 충돌도 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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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수사지휘권은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는 검찰청법 8조에 근거해 법무장관이 특정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를 지휘 또는 중단 시킬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10월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하라’며 지휘권을 처음으로 발동했다. 이에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를 수용한 뒤 검찰 수사의 독립성이 침해당했다는 항의 표시로 사퇴했다. 이후 2020년 추미애 전 장관이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당선인을 상대로 15년만에 지휘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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