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치가 정보에 개입하는 순간, 안보는 무너진다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일 청와대가 국가안보회의(NSC) 긴급 관계차관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참석자들은 한미간 긴밀한 공조 하에 발사체의 세부 제원에 대해 분석 중이며, 일련의 북한 미사일 발사에 경각심을 갖고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면서 “우리 군의 강화된 역량과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정부교체기에 안보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빈틈없이 굳건한 대비태세를 유지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전선 장거리포병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에서 240㎜ 방사포 연말 사격 장면.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전선 장거리포병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에서 240㎜ 방사포 연말 사격 장면. 노동신문

이 회의는 당시 북한이 오전 7시 18분부터 약 1시간에 걸쳐 평안남도 숙천 일대에서 서해 상으로 방사포 4발을 발사하면서 열린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의 태도가 평소와 달라 무엇인가 석연찮은 점들이 감지된다. 북한이 이날 발사한 것은 탄도미사일도 아니고, 평양에서 북쪽으로 먼 거리에 떨어진 해안가에서 진행된 단거리 방사포 시험사격이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오랜 경험에 따르면 이처럼 긴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정보를 이제까지 공개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느닷없이 군사비밀을 친절하게 드러낸 것이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좀처럼 들어보지도 못했던 NSC 긴급 관계차관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면서 회의에서 정부 교체기 안보 공백을 우려해서 굳건한 대비태세유지를 강조했다. 결국 이 대목에서 정부가 의도적으로 탄도미사일도 아닌 일방적 방사포 사격훈련을 침소봉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정부는 지난 4년 10개월간 북한이 40여 차례 60여 발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해도 이를 도발이나 위협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해 왔다. 심지어 서욱 국방부 장관은 “우리에게 직접 쏘지 않으면 도발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방사포 사격훈련에 대해 청와대가 왜 직접 나서서 NSC 긴급차관회의를 열어 정부 교체기 안보 공백을 우려한다고 발표했을까? 국방부가 북한의 방사포 활동에 대해 이를 공개하고 NSC 긴급 차관급회의가 필요하다고 적극 주장했을 리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 이러한 상황을 부풀리러 했겠느냐는 의구심에 대해 정부의 설득력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 현 정부에서 안보 공백을 우려한다는 표현도 이례적이다. 그것도 북한의 위협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에게 안보 공백을 우려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정보는 팩트에 근거해야 한다. 특히 국가 이익이나 국가 안보와 관련된 국가 정보가 왜곡 또는 과장되거나 사용되면 정보를 생산하는 정보기관과 정보를 사용하는 정책 결정자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

만약 정보기관이 정보를 정책 결정자의 입맛대로 팩트와 다르게 분석해 제공하면 정보기관이 책임져야 한다. 또한 팩트에 근거하여 생산된 정보를 사용자가 왜곡하여 잘못 활용한다면 사용자인 정책 결정자가 책임져야 한다. 양측이 사전에 입맛에 맞게 팩트와는 다른 정보를 생산하고 잘못 사용한다면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정보 생산자와 정책 결정자와의 명확한 책임관계다.

국가 안보 목적이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정보를 왜곡하거나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가 정보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특정 정치 세력을 규합하려는 의도와 목적으로 사용되는 이른바 정보에 대한 정치의 개입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정부는 정보에 대한 정치의 개입, 정치에 대한 정보의 개입을 모두 끊어버리면서 국민통합이라는 위대한 새로운 역사를 잘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