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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윤석열 택한 20대 여성 34%, ‘왜 뽑았나’ 물어보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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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젠더 갈라치기 선거 캠페인의 실패

손혜원 전 열린민주당 의원 유튜브 채널에 지난 3월 8일 올라왔다가 삭제된 ‘2번남을 위한 명상’ 영상. [사진 유튜브 캡쳐]

손혜원 전 열린민주당 의원 유튜브 채널에 지난 3월 8일 올라왔다가 삭제된 ‘2번남을 위한 명상’ 영상. [사진 유튜브 캡쳐]

“윤석열 당선인을 뽑은 이유는 정권교체를 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동산 관련해서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오히려 집값만 폭등시킨 게 직접적인 피해로 다가왔다. 또 (조국 사태 등) ‘내로남불’이 너무 싫었다. 윤 당선인이 추미애 전 장관과 대립하면서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다’고 말했을 때 무척 공감했다. 그렇지만 윤 캠프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지난 1월 7일 페이스북에 설명 없이 일곱 글자로 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문구는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알아보니 여가부 기능이 사라지는 건 아니고 관련 부서로 이관된다고 한다. (그런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캐치프레이즈처럼 내세우는 건 소위 ‘이대남’의 표만 바라보는 행위로 보여 굉장히 아쉬웠다.”(28세 회사원 배OO씨)

문 정부 내로남불·부동산에 분노
국힘 ‘이대남’ 캠페인에는 거부감
온라인 선동성에 영합하는 정치
“개념녀 취급, 1번녀 비하도 싫다”

“이대남은 윤, 이대녀는 이” 위험성

지난 1월 7일 윤석열 당선인(당시 대선 후보) 페이스북에 올라온 ‘여성가족부 폐지’. [사진 페이스북 캡처]

지난 1월 7일 윤석열 당선인(당시 대선 후보) 페이스북에 올라온 ‘여성가족부 폐지’. [사진 페이스북 캡처]

20대 대선이 끝난 후 ‘이대남은 윤, 이대녀는 이, 확 갈린 20대’라는 헤드라인이 각 언론에서 쏟아졌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58.7%가 윤 당선인(이하 윤)을 지지한 반면 20대 여성의 58%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하 이)을 지지했는데, 다른 세대에서는 남녀 지지율 차이가 이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프레이밍과 갈라치기로 물든 이번 선거에서 “이대남은 윤, 이대녀는 이”라는 말은 위험할 수 있다. 20대 남성의 3분의 1인 36.3%는 이에게 투표했고, 20대 여성의 3분의 1인 33.8%는 윤에게 투표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 20대 남녀를 각각 단순 유형화(스테레오타이핑)하기 때문이다. 3분의 1이 과연 무시해도 좋은 비율인가? 더구나 이렇게 0.73%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린 초박빙 대선에서?

단순 유형화, 속된 말로 ‘싸잡기’는, 복합적으로 바라보고 다룰 사안을 단순한 편가르기로 만들어 버리고 분열과 혐오의 정치로 이어지기 쉽다. 그런 유형화에서 비켜난 그룹 중 윤을 뽑은 20대 여성들을 수소문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문 대통령을 뽑았는데 이번 대선에는 윤 당선인을 뽑았다. 세금을 퍼주는 식의 정책이 문제가 있다고 느꼈고 민주당 내부에서 일어난 (박원순·오거돈) 시장 관련된 성추행 사건 및 각종 부패 사건과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서 점점 마음이 떠났다. 여가부 폐지와 관련해서는 복잡한 심경인데 찬성 쪽에 마음이 약간 더 간다. 꼭 여가부라는 이름의 부처가 있어야 여권신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부처에서 관련 정책을 펼칠 수 있고 여가부라는 이름 때문에 오히려 남녀 갈등만 더 생기는 것 같아서다. 그러나 여가부 이슈가 20대 남성 표를 모으기 위해 자극적인 방식으로 던져진 것은 유감이다.” (24세 인턴 윤OO씨)

“이번에 민주당을 뽑기 싫어서 2번을 뽑았다. 내로남불 행위가 많으면서도 교묘하게 언론플레이를 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잘 몰아세워서, 오히려 전 정부 때보다도 정부 비판이 자유롭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1번 후보는 포퓰리즘적 퍼주기 공약이 많아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남성들이 너도 2번 찍었냐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 안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2번남’이니 ‘1번녀’니 하는 프레임이 퍼지면서, ‘2번남’을 자처하는 이들이 2번 찍은 여성을 ‘개념녀’(2030세대에서 ‘남성이 남성 기준에서 바람직한 여성을 부르는 말’로 통용되고 있음)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런 식의 평가는 원치 않는다. 나는 내 생각을 종합해서 투표했을 뿐이다. 그리고 모두가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번남이 1번녀를 비하하는 것도, 그 반대도, 정말로 좋지 않다.”(27세 회사원 정OO씨)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이대남’ ‘이대녀’ ‘O번남’ ‘O번녀’라는 용어 자체가 프레이밍이며 갈라치기를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남초·여초 커뮤니티 모두,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 대신 쏠림 현상이 심하고 혐오 발언과 선동이 난무한다고 평하면서, 이런 커뮤니티에 기존 정치인이 영합하는 트렌드를 비판했다.

4·17 서울시장 선거와 차이점

소위 ‘1번남’과 ‘2번남’을 비교하며 ‘2번남’을 비하하는 프레임이 여초 커뮤니티에 등장한 것은 대선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였는데, 이재명 지지를 표명한 손혜원 전 열린민주당 의원은 그것에 부응해서 “2번남인 당신 (…) 여자들이 당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세요? 만약 당신이 이번 선거에서 1번을 선택한다면 많은 여자가 당신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라는 내용의 영상물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갈라치기 작작해라” “남녀 모두에게 모욕이다”라는 비난이 받아 영상을 삭제한 적도 있다.

여초 커뮤니티의 ‘1번남-2번남’ 논란과 관련, 진중권 전 교수는 대선 직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라디오 대담에서 “이 대표의 남녀 갈라치기 전략에 반발한 여성들이 다시 남성을 갈라치고 있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그가 주력한 ‘이대남’은 “세대에 따른 구분”인 반면에 ‘1번남-2번남’은 “차별금지를 입에 담는 사람들이 하면 안 되는 (…) 소위 스테레오타이핑”이라고 반박했다.

과연 그럴까? 2021년 4·1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박영선 후보에게 각각 72.5%, 22.2% 투표했다. 20대 여성은 박 44.0%, 오 40.9%로 거의 비슷하게 투표했다. 2020년 총선에서 20대 남녀 모두 민주당에 더 많이 투표한 것과 비교해서 눈에 띄는 변화였다. 20대 남성이 국민의힘에 몰표를 준 것도 놀라웠으나, 20대 여성이 총선 때 민주당에 63.6%, 국힘(당시 미래통합당)에 25.1% 투표했던 것에서 재보선 때 거의 비등한 투표로 변화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서울과 전국의 차이를 고려해도 말이다.

즉 지난해 20대는 남녀 가릴 것 없이 정부와 집권당에 분노하고 있었고, 거기에는 LH 사태로 드러난 부동산 불공정, 재보선을 초래한 전 시장들의 성폭력 사건 등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당시는 당대표 출마 준비 중이었다)는 이것을 ‘불공정에 분노한 20대의 힘’이 아닌 ‘역차별에 분노한 이대남의 힘’ 프레임으로 몰아갔고, 언론도 무차별적으로 그 프레임을 재생산했다.

결국 이 대표는 그 프레임의 혜택을 얻어 6월에 당대표에 선출된 후 ‘이대남’에만 공들이는 공략을 강화했다. 심지어 여성·아동 대상 범죄 전문가이지만 급진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먼 이수정 교수의 공동선대위원장 합류까지 “우리 당의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표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의 방항성이 ‘여혐’이란 말인가? 그 결과 대선 기간 막바지에 20대 여성의 58%가 이재명 후보로 몰렸고 윤석열 후보는 0.73%포인트 차이로 가까스로 신승을 거뒀다.

한편 이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이재명을 지지한 20대 여성 몇 명도 만날 수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그들은 본래 이가 아니라 안철수 후보(현 대통력직인수위원회 위원장)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뽑으려 했다고 답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선거 거의 직전에야 이를 뽑기로 결정했으며 어떻게든 윤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고 일념에서였다. 젠더 문제가 가장 컸다”라고 대답했다.

OECD 최악 유리천장 지수

스타트업 창업자 이OO씨(24세)는 여기에 덧붙여서 “나도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윤의 기업에 대한 자유주의 정책이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언제든 돈이 없어질 수 있고 가난해질 수 있지 않은가. 그의 정책에는 이런 것에 대한 보호장치나 공공영역을 축소만 하려는 인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윤에 투표한 배 회사원은 할당제 폐지와 관련해 “논리는 기본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여자로서 유리천장을 실제로 많이 보고 겪었기 때문에 완전히 찬성하지는 못하겠다. 어느 쪽이 더 공정인가, 이게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이달 초에 발표한 OECD 회원국의 ‘유리천장 지수’를 보면,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 육아휴직, 고위 경영직과 정치인 중 여성 비율 등을 비롯한 10가지 항목의 종합지수에서 한국은 10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지난해 KB국민은행이 남성 지원자들의 점수를 임의로 상향 조작해서 여성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성차별 채용을 해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이달 초 하나은행도 성차별 채용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할당제로 인한 역차별이 문제라면, 이런 식의 불법행위와 법망을 피해 가는 교묘한 유리천장은 어떻게 막을지 새로운 정부는 생각해야 한다. 골 깊은 젠더 갈등에서 쉽지 않더라도 새 정부는 남녀의 목소리에 모두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