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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김병준은 세종행정수도 꿈 지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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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보이던 지난해 11월 29일 세종시 밀마루 전망대를 찾아 김병준 당시 상임선대위원장과 행정중심복합도시 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 후보이던 지난해 11월 29일 세종시 밀마루 전망대를 찾아 김병준 당시 상임선대위원장과 행정중심복합도시 관련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원회에 지역균형발전특위를 두고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에게 위원장을 맡겼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그는 사석에서 말했다. “학자로서 평생 꿈꾼 일을 정부에서 실행할 기회를 가졌으니 이보다 행복한 일이 있겠나.” 20년 전 발언을 떠올린 것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놓고 갈등이 끊이지 않아서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충돌하면서 새 정부가 돌봐야 할 국정 과제가 집무실 이전 소용돌이에 빨려드는 지경이다.

대통령이 집무실을 옮기는 건 단순한 이사가 아니다. 해외에 국가를 대변하는 최고책임자의 공간은 역사적 함의와 비전까지 내포할 수 있으면 좋다. 대선 때마다 집무실을 옮길 게 아니라면 차제에 새로운 대통령의 공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광화문의 대타로 급하게 국방부 청사만 고려하는 대신 국가 대계를 담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윤 당선인이 임기를 새 청사에서 시작하기는 어려워진 상황이기도 하다.

김병준의 꿈은 세종 행정수도 이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추진했지만 헌법재판소가 관련 특별법에 대해 위헌 결정해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도 이미 외교·국방부 등 일부를 빼면 정부 부처 상당수는 세종청사로 옮겼다. 청와대와 국회가 서울을 벗어나지 못해 행정의 비효율이 발생해왔다. 공무원들이 업무 보고나 국정감사 등을 위해 서울을 오가느라 ‘길거리 국장’ 같은 말이 생겼다. 장·차관 등 고위직일수록 서울에 있는 시간이 많다. 국방부 이전이 간단치 않은 것처럼 부처를 다시 옮겨올 수 없으니 이런 문제는 계속될 거다.

인수위 지방균형발전 책임자
세종에 대통령 집무실 어떤가
지방 되살리고 안보에도 유리

윤 당선인이 국민과 동떨어져 있고 위압적인 청와대에서 벗어나겠다면 중장기 계획을 세워 세종에 제대로 된 집무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세종 제2집무실 공약을 서울 제2집무실로 바꾸자는 얘기다. 대통령이 세종으로 가면 국방부도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다. 정치권이 옥신각신할 게 아니라 국방부 청사 공사를 빨리 진행해 새 대통령이 취임 후 들어가고, 나중에 '서울 집무실'로 쓰면 된다.

 세종에는 대통령의 공간뿐 아니라 국회도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과거 행정수도 이전 때와 마찬가지로 수도권에 모든 자원이 집중된 반면 지방은 고사 위기다. 서울에 집이 부족하니 경기도까지 미어터지고, 부동산값 폭등도 수도권이 진원지다. 대구는 이미 미분양이 골칫거리고, 대선 때 복합쇼핑몰 건립 논란이 인 광주에선 있던 대기업 대형마트가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았다. 일자리가 없고 사람은 떠나며 자영업은 망해가니 쓸 돈이 없는 게 지방의 현주소다.

 그래서 꿈꿔본다. 궁궐 같은 청와대가 아니라 윤 당선인이 강조한 대로 국민과 소통이 가능하면서도 국격을 보여주는 새 공간을 세종에 설계한다. 미국 정치·행정 중심지인 워싱턴의 백악관과 의회의사당이 본보기다. 민주주의의 꽃인 두 건물 사이 내셔널 몰에는 제2차 세계대전 기념비와 링컨기념관이 인공호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한편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도 자리 잡았다. 미 연방 대법원뿐 아니라 국립미술관과 국립자연사박물관, 국립흑인역사문화박물관 등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시설이 빼곡하다. 포토맥강만 건너면 국방부인 펜타곤과 알링턴국립묘지가 있다. 미국 전역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집약한 이곳을 찾는다.

 또 상상해본다. 대통령과 국회, 정부청사 등 최고 결정기관이 세종에 있으니 파급효과가 충청과 영남, 호남으로 넘친다. 대구와 광주에서 KTX로 한 시간이면 닿고, 정체 속 서울 출퇴근을 생각하면 충청은 물론 전북, 경북까지 직장·주거 가능권이다. 기업 본사나 지사가 인근에 들어서고 판교 같은 IT 밸리가 영호남에 등장할지 모른다. 휴전선과 거리가 먼 세종은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나 한미연합사령부가 이전할 평택 미군기지와 가깝다. 국방부가 옮기면 안보컨트롤 타워가 완성된다.

 김 위원장은 "윤 당선인이 지방균형발전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고 했다. 위원회에 세종TF도 꾸린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행정수도 완성에 대해 윤 당선인의 최측근인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장제원 의원 등이 찬성 입장을 밝혔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이 있었지만 행정수도 완성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해왔던 만큼 정치권이 합의한다면 불가능하지 않다. 정치개혁 방안과 함께 개헌할 수 있고, 국민투표를 거칠 수도 있다. 윤 당선인이 진영을 넘어 수도권을 경제중심지로 삼고 지방을 살리는 도전에 나선다면 역사의 한장을 열게 될 것이다. 비좁은 서울에서 집무실 위치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상황을 보고도 '김병준의 꿈'은 피어오르지 않는가.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