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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남발 막을 장치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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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 행정분과가 24일 오전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예한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이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장관은 인수위의 통보에 대해 "오늘은 침묵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 행정분과가 24일 오전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예한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이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 장관은 인수위의 통보에 대해 "오늘은 침묵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법무부 폐지 반대하자 인수위 업무보고 연기

추미애·박범계 네 차례나 발동, 폐지 여론 자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어제 예정됐던 법무부의 업무보고를 전격 연기했다. 하루 전날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윤석열 당선인이 사법개혁 방안으로 공약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와 ‘검찰 독자적 예산편성권 부여’ ‘검찰의 직접수사 확대’에 대해 공개 반대한 게 파행의 직접 원인이 됐다. 국민의힘 이용호 의원 등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위원들은 “40여 일 후에 정권교체로 퇴임할 장관의 무례하고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신구 권력 갈등이 검찰개혁 의제를 놓고도 표출된 것이다.

박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반대 요지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책임행정 원리에 입각해 있어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다.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은 일반적인 검찰사무가 아닌 구체적 사건에 대해선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막강한 검찰권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박 장관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수사지휘권은 1949년 제정된 이래 한 차례 발동에 그쳤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네 차례나 행사됐다. 정치인 출신 추미애·박범계 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겨냥해 사실상 남발했다.

더 큰 문제는 발동 대상이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위증 강요, 채널A 사건과 라임 사건 수사에 대한 총장 보고 또는 관여 금지에서 보듯 사기 전과자의 일방적 폭로에 근거한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오죽하면 ‘법무총장’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겠나. 박 장관은 폐지 공약이 왜 나왔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현 정부가 임명한 김오수 검찰총장이 박 장관과 입장을 달리해 수사지휘권 폐지와 직접수사 확대 등에 찬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리한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잇따른 헛발질로 국가 전체의 수사 역량이 약화됐다는 반성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 출범 전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완성까지 추진하고 나선 것은 우려를 더한다. 권력형 의혹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야당의 의심이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수사지휘권 남용의 폐해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수사지휘권 폐지의 합당한 명분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수사지휘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검찰의 독주를 견제하는 상징적·실질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남용을 막을 장치를 마련하되 폐지 여부는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신중하게 추진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