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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상용의 일리(1·2)있는 논쟁

태양광에 소금밭 빼앗긴 농민들…그 선두에 선 농림부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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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용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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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그래픽=차준홍 기자

다도해의 수려한 자연경관이 펼쳐지는 전남 신안군.
유명 포털에 전남 신안군을 검색하면 나오는 첫 문장이다. 그러나 2021년 12월 내가 방문했던 신안군 임자도에서는 이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드넓은 간척지에 자리 잡은 30만평(99만㎡)의 염전을 포크레인이 무자비하게 파헤쳐 갈아엎고 있었고, 25톤 트럭들은 쉴새 없이 모래를 퍼 날랐다. 인접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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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은 평지가 넓고 햇빛과 바람이 좋아 대한민국 대표적인 천일염 생산지다. 신안군을 상상하면 해질녘 빛이 반사된 아름다운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일꾼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정책에 '힘입어' 이 일꾼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대신 평생 자신들이 소금을 생산하던 그 넓고 아름다운 땅에 태양광 패널이 들어서는 걸 무기력하게 목격해야 했다.

민가 3m 앞 태양광 공사장이라니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한 주택. 집으로부터 불과 3m 떨어진 곳에 태양광 패널 설치를 위한 터파기 공사가 진행중이다. [사진 강상용 변호사]

전남 신안군 임자도의 한 주택. 집으로부터 불과 3m 떨어진 곳에 태양광 패널 설치를 위한 터파기 공사가 진행중이다. [사진 강상용 변호사]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후 과거 염전이 있던 장소를 더 돌아봤다. 열변을 토하던 한 주민의 집 바로 앞 3m 지점에 태양광발전소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그 집 마당 바로 앞에 펼쳐진 공사현장은 위태로워 보였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신안군의 개발 관련 허가업무가 과연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과 함께 자초지종을 파악하며 졸속행정이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정황을 포착해, 증거를 수집하기로 했다. 소송을 해서라도 아름다웠던 임자도를 지키자고 다짐했던 순간이다.

신안군 임자도 일부 주민은 지난 1월 신안군을 상대로 개발행위 허가에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허가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태양광 업체를 상대로는 환경권 침해를 근거로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문 정부가 출범할 즈음인 2017년 4777ha(헥타르)였던 전국 염전 면적은 2021년 3659ha(헥타르)로 23.4%가 줄었고 소금값은 최근 1년 새 30% 폭등했다. 신안군 팔금도, 장산도에는 이미 대규모 태양광이 들어섰다. 염전뿐만 아니라 바로 인근 전남 영광 삼호, 미암면 일대 농지 500만평에도 대규모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게 되면서 임차농들이 쫓겨난 지 오래다. 통계상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농지를 전용해 태양에너지 발전설비로 허가한 면적은 축구장 8750개를 합친 면적보다 넓다. 자그마치 여의도 면적의 30배다.

농지법 개정해 태양광 설치에 열 올린 정부 

태양광 얼마나 더 지어야 하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태양광 얼마나 더 지어야 하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렇듯 갑자기 염전과 농지가 태양광으로 뒤덮이는 이유는 뭘까. 문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하면서 2017년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한 게 시작이다. 2030년까지 36.5 GW를 태양광으로 대체한다며 농림축산식품부로 하여금 10GW 규모의 태양광을 설치하도록 할당했다. 신월성 1호기가 생산하는 전기가 1GW이다. 자그마치 신월성 1호기 10개에서 생산할 전기를 농민과 농업을 관장해야 할 농림부에 배당한 것이다. 더 나아가 정부와 여당은 농지에 태양광 패널을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농지법까지 개정해, 간척 농지를 태양광 시설로 전용할 수 있는 염도 기준까지 낮췄다. 한마디로 거의 모든 농지에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셈이다.

농림부가 할당받은 10GW 전기를 태양광으로 생산하려면 앞으로 패널 면적으로만 1만3000ha 의 농지가 더 필요하다. 이는 여의도 45배에 달한다. 이쯤되면 현 정부는 농지란 농지는 모두 찾아서 태양광 패널로 덮어버릴 심산 같다.
농림부는 이렇듯 태양광 사업 선두에 서서 농지를 파괴하고 농민들 터전을 빼앗는 것을 방치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오히려 전기생산량을 할당받아 적극 동조하기까지하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부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세계적으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피할 수 없는 흐름인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농업 역시 국가의 책무이자 필수산업이다. 농지면적은 식량안보와 직결하는 문제다. 안 그래도 이미 대한민국의 곡물자급률은 21%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곡물 수입 의존도 역시 세계 7위 수준이다. 식량안보 측면에서 이미 취약한 국가인데 태양광을 생각하면 더 암울하다.

지난해 11월 합천댐 수상태양광 발전 관련 주민ㆍ전문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합천댐 수상태양광 발전 관련 주민ㆍ전문가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연합뉴스]

식량안보 기반인 농지에 이렇듯 대규모로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는 건 처음부터 신중했어야 한다. 그런데 취임 초기부터 탈원전을 부르짖던 문 대통령이 이번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향후 60년간 원전을 주력 기저 전원으로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원전을 번복하는 듯한 발언에 친여 진영으로부터 비판이 이어졌고, 급기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와 송영길 당 대표는 원전 회귀는 아니라고 변명했다. 누가 말이 맞는 것이든 어처구니가 없다. 애초에 신중한 고려 없이 실행된 정책이라는 방증이다.

남은 건 오염된 토지뿐 

무책임한 정책 탓에 농지가 사라지고, 임차농들이 떠난 뒤 결국 남는 것은 시커먼 태양광 패널과 오염된 토지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종국적으로는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농림부 장관은 멀쩡한 농지에 태양광 패널을 뒤덮는 것을 멈추고 진정 농민과 식량안보를 위한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장관은 임기가 끝나면 그만일지 몰라도 농민들은 태양광 패널이 들어선 그 땅,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그 땅에서 평생을 살아야만 하지 않나. 책임지지 않는 정치 탓에 왜 농민만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지 답답하다. 새 정부가 이제라도 바로잡을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