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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5년만의 귀향, 박근혜의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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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마련된 사저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20324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낮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마련된 사저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20324

1. 박근혜 전 대통령이 24일 삼성병원을 퇴원해 고향 대구 달성군 사저로 돌아갔습니다.
2017년 3월 구속된 이후 꼭 5년만입니다. 박근혜는 퇴원후 현충원 박정희ㆍ육영수 묘소에 헌화한 다음 귀향했습니다. 사저 앞에서 기다리던 수천명의 지지자들에게 한 인사말에서 심경이 읽혀집니다.

2. 인사말의 앞부분은 고향사람과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돌아보면 지난 5년의 시간은 저에게 무척 견디기 힘든 그런 시간이었습니다.힘들 때마다 저의 정치적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인 달성으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며 견뎌냈습니다..제가 많이 부족했고 실망을 드렸음에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따뜻하게 저를 맞아주셔셔 너무나 감사합니다..’

3. 달성은 박근혜가 정치를 시작한 1998년 이래 4선을 역임한 지역구입니다.
박근혜는 평생 살아온 서울 대신 정치적 고향 달성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선택했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실망을 드렸다’는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물론 탄핵 때문에..

4. 그러나 국정농단에 대한 사과는 아닐 겁니다.
박근혜는 최근 펴낸 책(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에서..자신의 억울함을 안타까워하는 지지자들에게..‘거짓은 잠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세상을 속일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그 모습을 반드시 드러낼 것으로 믿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5. 박근혜 변호인과 지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탄핵과 국정농단 유죄판결은 ‘거짓’에 해당됩니다. 주장의 골자는..

-국정농단 사건은 기본적으로 최순실이 호가호위하면서 이권을 챙긴 ‘최순실 스캔들’이다. 박근혜는 이런 사실을 몰랐기에 공범이 아니다.

-대기업들에게 재단출연금을 요구한 건 문화융성ㆍ스포츠 지원과 같은 공익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며, 이와 관련해 특혜를 준 적이 없다.
-이런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헌법재판소가 서둘러 탄핵을 결정한 것은 정치적 박해다.

6. 그래서 인사말의 뒷부분에 힘이 실립니다.
‘제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이루지 못한 많은 꿈들이 있습니다. 제가 못 이룬 꿈들은 이제 또 다른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좋은 인재들이 고향인 대구의 도약을 이루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합니다..여러분의 성원에 조금이나마 보답해 나가겠습니다.’

7. 이 대목은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말과 맞아 떨어지는듯 합니다.

박근혜 본인이 정치일선에 나서진 않겠지만..‘좋은 인재’를 지원하는 방식으로..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합니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광범위한 의미에서 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8. 박근혜의 정치적 영향력은 상당해 보입니다.
탄핵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늘 건강하십시오’란 문구를 적은 축하난을 보내고, 국정농단을 수사했던 윤석열 당선인이 일찍부터 ‘퇴원하면 찾아뵙겠다’고 할 정도이니..

9. 박근혜가 인사말 도중 40대 남성이 소주병을 투척한 돌발사건에 보인 반응도 눈길을 끕니다.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괜찮나’고 묻자 엷게 웃으면서 '이야기가 끊어져서..’라고 한 다음 말을 이어갔습니다. 커터칼 테러를 당하고도 ‘대전은요?’라고 물었던 모습이 연상됩니다.

10. 사면복권된 박근혜의 정치활동은 자유입니다.

다만 탄핵ㆍ투옥ㆍ투병의 가시밭길을 걷는 과정에서 박근혜의 정신세계가 깊어진 만큼 좁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사저로 들어서는 박근혜 옆에는 유영하 변호사만 보였습니다.
〈칼럼니스트〉
2022.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