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90년대생이지만, 90년대 후반 친구들은 또 다르더라고요."
'문명특급' 홍민지 PD 인터뷰
1990년생부터 2000년생까지 모인 팀 안에서도 세대 차가 있다. 92년생 팀장은 8살 차이 나는 팀원들과 일하기 위해 나름의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최근 첫 에세이 『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다산북스)를 펴낸 SBS 디지털뉴스랩 산하 문명특급팀 홍민지(30) 팀장을 지난 17일 만났다.
제작진 5명, 인턴 3명으로 구성된 그의 팀이 만드는 웹예능 ‘문명특급’은 현재 유튜브 구독자가 179만명에 달하는 '핫 채널'이다. 2015년 동료 PD이자 진행자 재재(이은재, 32)와 둘이서 무작정 시민 인터뷰를 모아 넣던 프로젝트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한국방송대상 '뉴미디어 프로그램상'도 받았다.
무례·평등 민감한 MZ… "재미는 둘째고, 불편하면 빼자"
출연자의 이력을 샅샅이 공부해온 뒤 ‘뻔하지 않은 질문’을 하는 인터뷰, 무작정 장기자랑을 시키지 않는 인터뷰 등 '문명특급'의 개성은 홍 PD와 재재가 느꼈던 ‘불편감’에서 만들어졌다. 홍 PD는 "방송국에서 마주치는 아이돌들이 일방적으로 ‘90도 인사’를 하는 걸 보고, ‘한쪽만 하는 90도 인사는 예의가 아니라 갑을관계’라는 불편감이 들었다"고 했다.
홍 PD는 “저희 다음 세대 친구들은 ‘무례함’과 ‘평등’에 대한 감수성이 더 높다”며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재미’는 두 번째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빼자’는 쪽으로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성공은 결정권자가 되는 것"… 콘텐트 결정권은 인턴에게
에세이 출간 제안을 받은 건 2019년이다. 하지만 따로 쓸 시간이 없이 걸어서 출퇴근하는 20분 동안 생각을 정리해 모으느라 2년 넘게 걸렸다. 책에는 비정규직의 불안한 심정으로 맨땅에서 시작했던 ‘문명특급’ 초반부터, "이것저것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 팀장이 된 최근까지의 생각을 담았다.
그에게 '성공'이란 "돈은 모르겠고 결정권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일정 부분 결정권자가 됐다. 책에서 그는 '90년대생은 윗세대보다 이기적인 것 같다'고 고민을 토로하는 선배 팀장들에게 "팀의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90년대생 팀원들 때문이 아니다"라며 "소속감이나 충성심보다 독립을 요구하면, 각자 역량을 키우면서 팀 자체 퀄리티가 좋아진다"고 했다. 그는 MZ세대 팀원들과 일하는 노하우로 ▶'이들에게 내가 꼰대인가?' 자주 생각하고 ▶뭘 물어보더라도 '이거 질문하면 안 되니?' 피드백을 받고 ▶삐지지 않기를 새기며 팀원들을 대한다 등을 제시했다.
그는 콘텐트에 관한 가장 큰 결정권을 '가장 젊은 시각'인 인턴에게 준다. “재미가 없으면 인턴 눈부터 다르다. 동공에 이미 힘이 풀려있다"며 "‘별로구나?’ 하고 두 번 물어봐야 솔직하게 들을 수 있다"는 나름의 패턴도 생겼다고 했다.
"요즘은 자기소개처럼 MBTI 말하더라, 성격도 고려하는 게 리더 역량"
저자 소개 맨 앞에 MBTI(성격유형검사)를 써넣은 것도 팀원들과 소통하며 터득한 방식이다. 홍 PD는 “요즘 어린 팀원들은 처음부터 자기소개하듯 MBTI를 얘기하는데,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은 해주세요’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며 “사생활이 아니라 '성향'을 궁금해하고, 성격도 고려하는 게 리더의 역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은 혹시 내가 삐지거나 화낼까봐 걱정하는데, 내 MBTI를 알고 나서는 역으로 ‘아, 삐지진 않겠네’ 하고 걱정을 덜어서 편하기도 하다”고도 했다. 그의 MBTI는 ENTP(외향적·직관적이고 사고형·인식형인 성격)다.
"팀원이 잘하는 건 팀장에게도 '개이득'"
'문명특급'을 시작한 뒤 3~4년 동안 그는 하루 10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편집을 하고, 편집하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 일 생각을 하는 상태로 살았다. 그나마 최근엔 1주일에 하루 정도는 쉰다. 홍 PD는 “편집하는 팀원의 역량이 오르니까 제 휴식시간이 늘어나더라, 팀원이 잘하는 건 팀장에게도 ‘개이득’”이라며 “팀원이 성장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은 선의가 아니라, 팀장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담백하게 말했다. "이기적으로 퇴근해버리는 팀원이 있어야 칼퇴 문화가 정착한다"고 책에 썼지만 업무가 몰릴 때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대신 그는 “중간고사 100점, 기말고사 60점 해서 평균 80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며 "띄엄띄엄 징검다리처럼 빡세게 하려고 한다"고 했다.
비정규직으로 시작해 "그냥 살려고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그는 요즘도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일단 하자"다. '문명특급' 초반에는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유튜브 벗어날 수 없고 제작비 충당할 광고도 붙지 않는다며 큰 방송국 정규직 PD로 가라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는 "지금 돌아보니 안된다던 걸 다 했네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