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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동맹 단합' 얻었지만…세계는 '유사 냉전' 휘말렸다 [우크라 침공 한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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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 유럽으로 향한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 유럽으로 향한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유럽 정상들과 추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넌다. 지난달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처음이다. 전례 없는 제재 폭탄에도 러시아의 공격이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푸틴을 당장 단념시킬 획기적인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게 미국과 유럽의 고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4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만나 새로운 대러 제재를 발표하고, 기존 제재의 이행을 점검할 계획이다. 정상들이 논의해야 할 주제 중 하나는 푸틴이 핵무기나 화학 무기를 사용하거나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감행할 경우 동맹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CNN은 예상했다.

70여년 만에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최대 전쟁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군 수천 명이 숨지고 수백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인플레이션에 러시아발 에너지 수급 불안이 겹쳐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고 세계는 '유사 냉전' 시대로 접어들었다.

역설적으로 푸틴의 침공에 힘입어 미국은 동맹과 연대를 단단히 하게 됐다. 경제적 여력과 군사적 능력이 있는데도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던 유럽이 잇따라 국방비 증액과 안보 강화 계획을 발표했다. 푸틴이 노렸던 나토 분열과 약화 대신 역설적으로 나토는 더욱 강해질 채비를 하고 있다.

주요국 대러시아 제재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국 대러시아 제재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국은 또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주도하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공고히 했다. 유럽 뿐 아니라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을 포함해 세계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들을 대러 제재에 동참시켰다. 러시아 은행과 올리가리히(친 푸틴 재벌 세력), 에너지 부문까지 전례 없는 규모의 제재를 성사시켰다. 바이든의 취임 일성인 "미국이 돌아왔다"는 슬로건이 유럽의 시큰둥한 반응을 덮고 일시나마 사실상 실현됐다.

문제는 경제 제재로 러시아 주식시장이 3주 넘게 문 닫고, 루블화 가치는 폭락했으며, 세계 주요 기업은 러시아에서 영업을 중단했지만 러시아의 철군이나 휴전을 끌어내지는 못하고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경제 제재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제재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흡수하기가 수월해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이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에 나선 것과 달리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럽이 행동을 주저하는 것도 제재에 틈을 벌리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2일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과 대러 추가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제재 회피를 엄중히 단속하고 강력한 집행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해 새로운 제재뿐만 아니라 기존 제재 회피나 불이행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으로 최전선에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과 국민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가 앞으로 올 것"이라며 "이 전쟁은 쉽게, 빨리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전 이래 '골리앗' 러시아에 맞서 저항 의지를 꺾지 않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에 미국 등 서방은 대규모 군사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발표한 8억 달러어치 무기 지원 등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를 도운 규모는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을 거부하고 있다.

애초에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절대 불가 원칙을 공개적으로 반복한 것이 푸틴 대통령에게 침공에 대한 '그린라이트'를 줬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이 푸틴의 전쟁을 억지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러시아 지원 차단을 끌어내지 못하는 데서 바이든 외교전략이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주요국 대러시아 제재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국 대러시아 제재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바이든 행정부는 해외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 미국 내 여론과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하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푸틴의 침공 이후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일부 올랐다. 사사건건 대립하던 민주당과 공화당은 러시아 문제는 대체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불복으로 극도로 분열됐던 미국 내 여론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가 커지면서 반러 정서로 단합됐다. 푸틴을 칭송하고 친러 발언을 일삼던 트럼프의 영향을 받은 공화당 지지자들도 푸틴의 침공을 규탄하고 대러 제재에 찬성하고 있다고 브루킹스연구소는 전했다.

다만,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푸틴이 긴장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는 험난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의 외교안보팀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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