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프리다 칼로…여성 관객 열광한 여성만의 뮤지컬

중앙일보

입력 2022.03.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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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프리다’의 한 장면. 고통의 삶에서 벗어난 프리다가 자유롭게 노래한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프리다’의 한 장면. 고통의 삶에서 벗어난 프리다가 자유롭게 노래한다. [사진 EMK뮤지컬컴퍼니]

“천재면 답니까? 천재의 아내는 이 모든 걸 감당해야만 합니까?” 외도한 남성을 향해 여성 배우들이 일제히 총 쏘는 시늉을 하자, 남성은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이어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지난 1일 첫 공연을 한 뮤지컬 ‘프리다’의 한 장면이다.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1907~54)의 삶을 소재로 한 이 작품에는 그를 둘러싼 고통이 등장한다. 여성만 이해할 수 있는 아픔인 유산, 실연, 기회의 박탈, 남편의 외도 등이다. 여기에 소아마비, 교통사고, 죽음의 공포가 겹친다. EMK뮤지컬컴퍼니가 만든 창작 뮤지컬로 2020년 시험 공연을 거쳤다.

여성의 고통, 여성에 대한 억압, 그리고 강한 의지로 여기에서 벗어나는 서사의 뮤지컬 두 편이 동시에 공연된다. 또 다른 작품은 24일 개막하는 뮤지컬 ‘리지’로, 역시 실화가 바탕이다. 1892년 미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인데, 보든가(家)의 둘째 딸 리지가 친부와 계모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받은 일이다. 책·연극·드라마로 변주됐던 ‘리지’ 뮤지컬은 2009년 뉴욕에서 초연됐고 서울 첫 공연은 2020년이다.

‘리지’의 한 장면. 살해 용의자인 리지의 법정에서 배우들이 록 음악을 열창한다. [사진 쇼노트]

‘리지’의 한 장면. 살해 용의자인 리지의 법정에서 배우들이 록 음악을 열창한다. [사진 쇼노트]

뮤지컬 ‘리지’는 아버지의 지속적 성폭력을 암시한다. 무자비한 도끼 살인에 앞서 이를 납득할 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초연에 이어 재연을 연출한 김태형은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관객이 이러한 장치 없이도 이미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을 이해하고 있었던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학대받고, 가부장제로 피해 보고, 자신의 의지를 펼치지 못한 주인공의 처지를 더 잘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다. 그런데 초연에서 관객 반응을 보니 고민이 무의미했다.”

김태형 연출은 이번에는 설명 장치를 덜어내고 대신 리지 보든의 행동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남성 캐릭터는 훨씬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해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살인한 여성 캐릭터 역시 더 뻔뻔하게 굴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는 리지가 도끼로 부수는 건 특정 인물이 아니라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시스템이라는 점을 보여주려고 했다.

‘프리다’와 ‘리지’에는 남성 배우가 출연하지 않고, 각각 4명의 여배우가 무대를 채운다. 프리다의 남편 디에고 역시 여배우가 연기한다. 추정화 연출은 “프리다를 제외한 3명은 그를 지켰던 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그 ‘수호신’ 중 하나가 디에고를 맡아줬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수호신’은 극 중 허구적 인물로, 프리다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 간 연대도 두 작품의 중요한 키워드다. ‘리지’에서는 옆집 여성 앨리스가 리지의 정신적 안식처이며, 서로 의지하고 비밀을 공유한다. 리지의 언니 엠마, 가정부 브리짓도리지와 함께 법정에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록 음악 창법으로 반격한다.

두 작품 모두 가상의 화려한 콘서트로 막을 내린다. ‘프리다’는 장애와 고통에서 벗어난 프리다가 세 수호신과 함께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를 열창한다. 한풀이 같은 장면이다. ‘리지’ 또한 1800년대에서 벗어나 화려한 콘서트 형식으로 강렬하게 끝난다. 두 작품의 현대적인 콘서트는 21세기 관객과 옛 여성의 연결고리다.

100여년 전 여성이 겪었던 폭력과 억압의 스토리이지만 현대 한국 관객의 지지를 받고 있다. 김태형 연출은 “관객이 여성 서사의 에너지를 시원하게 받아들인다. 앞으로도 이런 무대가 계속되리라 본다”고 했다. 티켓 판매 사이트인 인터파크에 따르면 ‘리지’ 관객의 여성 비율은 2020년 94.2%였고, ‘프리다’는 22일 기준 86.6%다. 최정원·김소향이 주연을 나눠 맡는 ‘프리다’는 5월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전성민·유리아·이소정 등이 출연하는 ‘리지’는 6월 1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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