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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자유 오히려 위축?…지하철역 故변희수 광고 무슨 일이 [이슈추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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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육군에서 강제 전역됐던 故변희수 하사를 응원하는 광고가 두 번의 ‘불승인’ 끝에 지하철역 벽면에 걸렸다. 시민들이 광고 게재를 위해 수백만원을 모아 게재하려 했던 광고다. 광고 게재를 위해 모금을 시작한 지 7개월 만인 지난 2월 25의 일이다.

인권위 권고가 나온 뒤에야 걸린 광고는 ‘지하철 광고 게재 기준’이라는 쟁점을 남겼다. 그 내막이 23일 인권위의 결정문을 통해 드러났다. 서울교통공사가 개정하려던 광고 관리 규정을 공개하면서다.

서울교통공사의 잇따른 광고 불승인

지난 2월 28일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4번 출구 방면 벽면에 게시된 광고에는 '변희수의 꿈과 용기,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와 변 하사의 사진이 담겼다. 연합뉴스

지난 2월 28일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4번 출구 방면 벽면에 게시된 광고에는 '변희수의 꿈과 용기,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와 변 하사의 사진이 담겼다. 연합뉴스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동위)’가 故변희수 하사의 모습이 담긴 광고를 게재하려 한 건 지난해 8월이다. 10월 7일 변 하사의 전역취소 소송 선고를 앞둔 시점이었다. ‘대한민국을 위한 헌신, 차별할 수 없습니다’ 라는 문구의 광고였다.

서울교통공사 광고심의위원회는 9월 2일 광고 게시에 대해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소송 중인 사안이므로 공사의 정치적 중립성 방해가 우려된다’는 점과 ‘성정체성과 관련해 의견이 대립하여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라는 점이 근거였다.

9월 30일 두 번째 심의도 불승인 결정되자 공동위는 이 문제를 인권위에 가져갔다. 인권위는 서울교통공사 사장에게 사회적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서울교통공사의 광고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 등이 관련된 것이 아니기에 소송에 연관된 광고를 게재한다고 하여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는 게 아니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필수 요소이며 광고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 “규정 퇴행…오히려 위축”

지난 2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열린 고(故)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 문화제 행사장에 고인을 추모하는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2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열린 고(故)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 문화제 행사장에 고인을 추모하는 메모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이후 인권위 권고에 따라 서울교통공사는 광고관리규정 체크리스트 항목 개정을 권고했으나 이날 서울교통공사가 인권위의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는 결정문을 냈다.

앞서 서울교통공사는 광고 승인의 기준이 되는 체크리스트에서 ▶의견이 대립하여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광고주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은가라는 두 항목을 삭제하고 두 항목 신설을 계획했다. 새로운 항목은 ▶소송 등 분쟁과 관련 있는 사안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가 ▶공사의 중립성 및 공공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가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 경우 인권위 권고의 뜻과는 반대로 표현의 자유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고 봤다. 광고 내용이 무엇이든 소송과 관련한 것이면 게재가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이유다.

공동위 관계자는 “새로운 항목은 민원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아예 광고를 걸지 않겠다라는 퇴행적 개정”이라며 “지하철은 불특정 다수가 문턱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 기간산업인 만큼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결정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권고 적극 수용…개정하겠다”

 지난 2월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열린 고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제에서 한 시민이 추모글을 적어 붙이고 있다. 뉴스1

지난 2월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열린 고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제에서 한 시민이 추모글을 적어 붙이고 있다. 뉴스1

인권위 결정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는 이날 “인권위 권고를 모두 수용하겠다”며 “인권위에서 지적한 두 항목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광고관리규정 개정을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의견광고에 공사의 의견을 투영하는 일은 없으며 외부 광고심의위원회에서 평가한 결과대로 광고를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 기관이 트렌스젠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우리 문화의 형세에 따라 달라진다. 성소수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보니 기관이 움츠러들게 되는 것”이라며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귀를 열고 들어주는 포용적인 문화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첫째”라고 꼬집었다.

서범석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명예교수는 “과대광고나 타인을 비방하는 광고가 아닌 이상 광고에 있어서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며 “더군다나 서울교통공사 광고심의위원회의 심의는 ‘자율’ 심의인 만큼 기관의 특성을 보더라도 인권위에서 정리한 내용을 받아들이는 게 맞는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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