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러 입에서 직접 '핵무기' 꺼냈다…英 "재앙 벌어질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 22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국가 존립의 위협을 받을 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AFP=연합뉴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지난 22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국가 존립의 위협을 받을 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가 22일(현지시간) “국가 존립 위협 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국제사회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 위협용 카드"란 평가와 “실제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엇갈리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국가 안보 개념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공개돼 있다. 국가가 실존적인 위협에 처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러시아 당국이 핵무기 사용 조건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이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우려를 표했다. 이날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핵무기 사용에 대한 모스크바의 수사법은 위험하다”며 “이건 책임 있는 핵보유국의 행동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미국은 매일 러시아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다. 아직 미국이 핵억지에 대한 대응전략(strategic deterrent posture)을 바꿔야 할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 제재가 시작되자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달 27일 푸틴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에 공격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며 자국 핵무기 운용부대에 경계 태세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미과학자연맹(FAS)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5977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학자연맹(FAS)가 지난달 발표한 각국 핵탄두 보유량. FAS는 러시아가 약 2900개의 비축 핵탄두를 비롯해 총 5977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FAS 캡처

미국과학자연맹(FAS)가 지난달 발표한 각국 핵탄두 보유량. FAS는 러시아가 약 2900개의 비축 핵탄두를 비롯해 총 5977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FAS 캡처

“본토 공격 시에만 핵무기 사용할 듯”

크렘린궁 대변인이 이처럼 핵무기 사용 조건을 언급한 것을 놓고 주요 외신과 전문가들의 분석은 갈렸다. CNN은 이날 “러시아가 핵무기 사용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전한 반면 로이터통신은 “크렘린궁은 러시아의 존립이 위협받아야만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곰펄트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대행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핵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원칙이 명확해졌다. 푸틴 대통령의 입장은 러시아 핵무기 사용의 기준은 ‘국가 존립 위협’이란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나토가 우크라이나 분쟁에 개입할 경우 핵전쟁으로 확산할 것이란 기존 우려와 달리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지 않는 이상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메시지"란 해석을 내놨다.

이어 곰펄트 전 DNI 국장대행은 “푸틴 대통령은 핵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를 이용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의 정보력과 감시 능력은 충분히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충분히 무력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자국 핵무기 운용부대에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자국 핵무기 운용부대에 경계 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 고전이 푸틴에겐 실존적 위협”

반면 영국 국방·안보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매튜 해리스 선임 연구원은 이날 포린폴리시에 “강력한 위협은 쉽게 실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푸틴 대통령의 핵 공격은 적어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에게 매우 위험한 게임이고, 푸틴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엄청난 대가도 감수할 것”이라며 “단순한 수사적 표현을 넘어 러시아 핵무기 운용부대의 실전 배치 등 더 심각한 위협을 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러시아군의 고전이 계속된다면 푸틴 대통령은 경제적 혼란과 내부 반발로 통치 기반이 흔들릴 것이고, 이것이 푸틴 대통령에게 핵무기 사용의 위험을 감수할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소형 핵 사용할 수도" 

이동식 발사차량에 적재되는 러시아 전술미사일 이스칸데르-M.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지난달 벨라루스와 러시아 동부 접경지에선 핵탄두 탑재 능력을 갖춘 이스칸데르-M 탄도 미사일이 배치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타스통신=연합뉴스

이동식 발사차량에 적재되는 러시아 전술미사일 이스칸데르-M.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인 지난달 벨라루스와 러시아 동부 접경지에선 핵탄두 탑재 능력을 갖춘 이스칸데르-M 탄도 미사일이 배치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타스통신=연합뉴스

러시아가 제한적인 파괴력의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1일 뉴욕타임스(NYT)는 여러 군사 전문가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벼랑 끝 전술로 우크라이나에 소형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러시아와 미국은 과거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대규모 파괴력의 핵무기와 달리 위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전술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공멸 우려로 심리적인 장벽이 높았던 기존 핵무기와 달리 소형 핵무기의 사용은 덜 무서울 수 있다”고 했다. 한스 크리스텐슨 FAS 핵 정보프로젝트 소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약 2000개의 소형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클래퍼 주니어 전 DNI 국장은 NYT에 “러시아는 냉전 시대 이후 핵무기 사용 기준을 낮췄다”며 “러시아는 핵무기를 사용 가능한 실용적 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방사능 유출 우려에도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한 점을 언급하며 “원자력과 핵무기에 대한 러시아의 느슨한 태도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