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크닉] 22만원이 1300만원에 팔리는 한정판 신발의 마법

중앙일보

입력 2022.03.23 07:00

업데이트 2022.03.24 14:03

브랜드랑 썸타는 101가지 방법-②새 신을 팔고 뛰어볼까 팔짝

나이키, 눈물의 에어포스원

20여년 전,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어머니가 버스비와 간식 사 먹을 때 쓰라며 주신 한 달 용돈 2만원을 반 년간 모아 꿈에 그리던 새 운동화를 샀어요. 화이트 컬러에 심플한 디자인이 돋보였던 이 운동화 가격은 무려 10만9000원, 열네 살 제겐 명품이나 다름없었죠. 너무 예쁘고 소중한 이 운동화는 한동안 신발장으로 가지 않고 제 침대 위에 있었답니다. 머리맡에서 새 신발 냄새가 나는 것도 좋았어요.

큰맘 먹고 새 신을 신고 등교했던 그 날. 하교 시간에 신발장에 있던 운동화가 사라진 걸 알게 됐어요. 학교 곳곳을 찾아봤지만, 운동화는 없었죠. "기다려봐, 누가 잘못 가져갔나 봐. 다시 가져다 놓을 거야" 담임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저는 알고 있었어요. 제 운동화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라는 걸요. 체육 선생님의 낡은 삼선 슬리퍼를 신고 집으로 향하던 그 날 밤 발걸음이 어찌나 무겁던지요. 제대로 신어보지도 못했다는 억울함에 눈물도 났어요. 정든 학교를 떠날 때까지 사물함으로 돌아오지 않은 그 신발은 나이키 '에어포스원(Air Force 1)'이었어요.

사진=나이키

사진=나이키

NIKE Air Force 1

약칭 'AF1'. 에어포스원은 1982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직원의 '농구화에 에어(Air)를 넣어 보면 어떨까?'라는 단순한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신발의 높이에 따라 로우, 미드, 하이로 나뉜다. 에어 포스 로우 화이트 컬러는 컨버스와 반스, 아디다스 슈퍼스타와 더불어 국민 신발이라고 봐도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신는다. 항상 판매되는 화이트 컬러를 기본으로 매년마다 컬러와 디테일이 추가된 수많은 모델이 출시되고 있다. 정가는 12만9000원이지만 '슈프림(Supreme)', '오프화이트(OFF-WHITE)', '꼼데가르송', '트래비스 스캇' 등 타 브랜드나 아티스트와 협업한 제품은 가격이 매우 비싸고 인기가 많다.

야, 너 이렇게 대단한 신발이었어?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했는지 서른 살이 넘은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같은 디자인의 에어포스원을 삽니다. 이걸 신으면 14살 어린 저로 돌아간 느낌이 들거든요. 이제 누가 훔쳐가진 않겠지만, 제 신발장 보물 1호는 여전히 에어포스원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최근 레트로(Retro) 열풍에 이 운동화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졌거든요. 나이키에 따르면 에어포스원은 2020년에 이어 지난해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판매된 스니커즈였어요. 한 달간 시장 조사(?)를 하고 나서야 한 스니커즈 중개 거래 플랫폼에서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답니다.

중개 거래 플랫폼을 탐구하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아 이 사람들, 운동화를 신으려고 산 게 아니구나.' 네 맞아요. 이제 신발은 신는 게 아니라 파는 아이템이 됐어요. 운동화의 몸값이 날로 뛰고 있어서죠.

세상에서 가장 비싼 운동화는?

지난해 4월, 래퍼 겸 프로듀서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신던 운동화가 경매에서 자그마치 180만 달러(약 20억원)에 팔렸어요. 카니예 웨스트와 나이키가 협업한 '나이키 에어이지1 프로토타입'인데요. 운동화 최초로 100만 달러를 넘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어요.

그 전까지 가장 비싼 운동화는 2020년 경매에서 61만5000달러(약 6억9000만원)에 판매된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 마이클 조던의 운동화였어요. 국내에서도 2019년 지드래곤이 나이키와 콜라보해 출시한 '지드래곤 포스'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1300만원에 거래됐죠. 이 신발의 출고가는 21만9000원이었어요. 왜 이렇게 가격이 뛰었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 지드래곤의 친필 사인 덕분이었죠.

운동화가 핫해지니 플랫폼도 핫해졌다

요즘 한정판 운동화를 되팔아 자산을 불리고, 또 그 운동화를 구매하는 수집가들이 많아요. 신제품 출시가에 브랜드와 한정판 여부, 신발 사이즈 등 여러 조건에 의해 프리미엄이 붙죠. 이렇게 웃돈을 주고 되파는 행위를 '리셀(Resell·재판매)'이라고 합니다. 리셀을 업으로 삼은 '리셀러'도 있어요.

운동화 리셀 시장은 개인 간 중고 거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됐어요. 주식처럼 신발을 거래하는 개념을 2015년 최초로 도입한 스탁엑스(StockX)는 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이 됐죠. 국내에도 스탁엑스를 벤치마킹한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겼어요. 대표적인 게 크림(KREAM)솔드아웃(Soldout)입니다.

사진=크림

사진=크림

크림 KREAM

크림은 2020년 3월에 론칭된 판매 중개 플랫폼이다. 지난해 1월에는 네이버 자회사인 스노우로부터 분사에 성공했다. 플랫폼 접근성이 좋고, 네이버페이를 사용할 수 있다. 한 달에 1~2번씩 진행하는 럭키드로우에 당첨되면 한정판 신발 구매권을 990원에 살 수 있다. 초기 시장을 잘 분석해 진입한 덕분에 거래완료 건수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이 70~80%에 육박한다. 2021년 누적 거래액은 전년도 2700억원에서 약 250% 성장한 9450억원을 웃돌았으리라 추정된다.
사진=솔드아웃

사진=솔드아웃

솔드아웃 Soldout

2020년 7월 패션 커머스인 무신사가 론칭한 플랫폼이다. 값비싼 운동화를 매주 1000원에 살 수 있는 구매권을 주는 행사인 '위클리 래플'이 있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솔드아웃의 하루 사용자수(DAU)는 약 4만2000명. 최근에는 솔드아웃 사업을 자회사인 '에스엘디티(SLDT)'로 분사하고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확장 중이다.

드로우, 선택받은 자들만의 혜택

운동화를 되팔기 위해 알아야 하는 개념이 있어요. 바로 드로우(Draw), 우리말로 '뽑기'죠. 공식 홈페이지나 유명 편집숍 홈페이지에서 추첨 혹은 선착순으로 한정판 운동화 구매 자격을 얻는 것을 뜻해요. 브랜드에 따라 래플이라고도 하고요. 공짜로 주는 게 아니고, 정가 주고 살 권리를 준다는 거예요.

경쟁은 생각보다 치열합니다. 가족이나 지인의 개인 정보까지 모아 복수 응모하는 경우도 많아요. 구매 링크를 타고 원하는 사이즈를 재빠르게 클릭해야 그나마 당첨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남성 270, 여성 235가 인기예요. 사이즈별로 경쟁률, 가격도 다르답니다. (아니, 내 돈 주고 사겠다는데 이렇게 힘들어?)

하우 투 리셀

어렵게 손에 넣은 운동화를 되팔려면 크림이나 솔드아웃 등 중개 플랫폼을 이용합니다. 즉시판매와 입찰판매 중 골라야 해요. 즉시판매는 플랫폼이 정한 기준 가격에 바로 판매하는 거예요. 입찰판매는 내가 원하는 희망 판매가를 써서 거래가 성사되길 기다리는 방식이에요. 매물 시세가 엎치락뒤치락하니까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해요!

리셀 시장의 미래

전 세계 리셀 시장은 2024년 40조6000억원까지 규모가 커질 전망이에요. 소프트뱅크와 알토스는 크림에 200억원을, 두나무는 솔드아웃에 100억원을 투자했어요. 결국은 얼마나 많은 고객을 확보하느냐가 리셀 사업의 승패를 가를 겁니다. 불투명한 세금 문제와 가품(짝퉁) 논란도 리셀 시장의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어요.

사진=freepik

사진=freepik

#뱀발: 추첨의 역사

추첨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복권과 비슷한 방식의 추첨 게임이 이뤄진 유물이 그 근거죠.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도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경품 추첨행사를 열었다고 해요. 조선 후기 유행했던 산통계(算筒契)도 추첨 행사였어요. 이름이나 숫자 등을 적은 알을 통에 넣고 흔들어 밖으로 빠져나온 알에 따라 당첨을 결정하는 방식이었죠. 먼 훗날에는 우리 세대가 운동화를 추첨해서 구매했다는 것도 역사책에 기록될까요? 아니면 운동화는 당연히 추첨해서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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