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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서 내려온 '대사 동지'…'유창한 조선어' 크룩스 주한英대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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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가. 21일 서울 중구 대사관에서 인터뷰 중 영국 유니온잭과 태극기 사이에 서있다. 김현동 기자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가. 21일 서울 중구 대사관에서 인터뷰 중 영국 유니온잭과 태극기 사이에 서있다. 김현동 기자

“북에서 저는 ‘대사님’ 아니고 ‘대사 동지’였습네다.”

콜린 크룩스 신임 주한영국대사가 지난 2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 중 한 말이다. 그의 ‘조선어’, 즉 북한식 억양은 완벽한 수준이었다. 그는 2018~2021년 평양 주재 영국대사로 근무한 뒤 올해 2월부터 서울 주재 영국대사로 부임한 색다른 이력을 가졌다. 서울엔 1995~1999년, 평양엔 2008년 이미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어뿐 아니라 조선어는 물론 문화까지 습득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1999년 방한 당시 실무를 관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한반도와 인연이 깊은 셈. 결혼도 한국 여성과 해서 슬하에 자녀가 둘이다.

그의 유창한 한국어는 중앙일보 독자들을 위해 보내온 기사 마지막 영상 메시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는 모국어인 영어로 주로 진행했으나 그는 “조선어도 구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반갑다는 듯 바로 위와 같은 답을 내놓았다.

콜린 크룩스 대사가 2019년 평양 주재 당시 트윗했던 사진. 평양 국제마라톤 대회 현장이다. 연합뉴스

콜린 크룩스 대사가 2019년 평양 주재 당시 트윗했던 사진. 평양 국제마라톤 대회 현장이다. 연합뉴스

2019년 크룩스 대사가 올렸던 또다른 북한 평양의 현장 트윗.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북을 맞아 환영 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이 길가에서 대기 중이다. [크룩스 대사 트위터]

2019년 크룩스 대사가 올렸던 또다른 북한 평양의 현장 트윗.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북을 맞아 환영 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이 길가에서 대기 중이다. [크룩스 대사 트위터]

크룩스 대사는 남북의 모든 도(道) 단위 행정구역을 방문한 기록도 갖고 있다. 남과 북을 통틀어 한반도의 핏줄이라고 해도 갖기 어려운 기록이다. 그는 북한 주재 시절, 자신의 일상을 트위터를 통해 공유하며 세계적 화제의 중심에 여러 번 섰다. 금강산의 단풍도, 묘향산의 꽃도 그립지만, 그가 제일 그리워한 것은 북한의 일반 주민의 미소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북한에서 사진을 찍고 트윗을 올릴 때, 제지 또는 검열은 없었는지요.  
“북한에서의 일상이 어떤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고 트윗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 주민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거죠. 그들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의외로 북한 주민 중에서 마음을 열어준 이들도 많았어요. 저에게 ‘(북한) 밖의 여성의 지위는 어떠냐’서부터 ‘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사느냐’ 등을 묻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서울에 부임한 지금, 북한에서 가장 그리운 건 뭘까요.
“묘향산도 아름다웠고, 단풍이 한창인 금강산도 멋있었지만 일반 주민들의 소탈한 모습이 가장 그립네요. 촬영했던 사진 중 좋은 것들은 대부분 트윗에 올리긴 했지만, 아직 정리를 채 하지 못한 사진들도 수백장 이상이 됩니다. 어느 휴일, (평양) 모란봉 공원에서 불고기를 구워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흥겨워하던 북한 주민들과 어울렸던 시간이 그립네요.”  
콜린 크룩스 대사가 북한 전역에서 만난 주민들은 그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고 한다. [크룩스 대사 트위터]

콜린 크룩스 대사가 북한 전역에서 만난 주민들은 그에게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다고 한다. [크룩스 대사 트위터]

크룩스 대사는 평양의 마라톤 대회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을 환영하기 위해 대기 중인 인파 등 북한의 곳곳의 일상을 렌즈로 포착했다. 그 중엔 북한의 형식적인 선거 투표 용지도 있었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그가 올리는 사진이 항상 반갑지만은 않았을 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북한 대사관은 잠정적으로 문을 닫은 상태다. 크룩스 대사는 “팬데믹으로 봉쇄가 더 강해지면서 장마당에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의 삶이 특히 힘들어졌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서울은 어떨까. 그는 “(서울) 종로 거리를 걸으면서 (같은 한반도인데도) 평양과도 너무 다른 모습에 새삼 놀랐다”며 “평양이 조용하다면 서울은 에너지가 가득하고 사람들의 열기가 느껴지는 생동감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를 두고 ‘한반도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크룩스 대사는 그에 대해 “과찬”이라며 “나는 그저 한반도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는 외교관”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주한영국대사관저 앞에 선 크룩스 대사. 김현동 기자

서울의 주한영국대사관저 앞에 선 크룩스 대사. 김현동 기자

주한 영국대사로서 꼭 이루고픈 포부는 뭘까요. 윤석열 당선인도 얼마 전 만나셨지요.
“한국과 영국은 역사나 문화, 언어는 다르지만,자유뿐 아니라 경제적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입니다. 이런 공통의 가치를 함께 수호하고,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 등에 있어서도 양국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합니다. 요즘 영국 정부가 내세우는 모토는 ‘글로벌 브리튼(Global Britain)’인데요, 한국도 ‘글로벌 코리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호흡이 잘 맞는다고 봅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가운데) 국민의힘 당시 후보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만난 크룩스(맨 왼쪽) 대사. 맨 오른쪽은 크룩스 대사의 전임자 사이먼 스미스 당시 대사. 임현동 기자

지난해 12월 윤석열(가운데) 국민의힘 당시 후보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만난 크룩스(맨 왼쪽) 대사. 맨 오른쪽은 크룩스 대사의 전임자 사이먼 스미스 당시 대사. 임현동 기자

올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재위 70주년, 즉 플래티넘 주빌레를 맞이하는데요.
“한 개인이 70년 동안이나 왕위라는 무거운 책임을 평생 지켰다는 것은 엄청난 성취입니다. 여왕께서 (1999년) 방한하셨을 때 제가 마침 서울에서 1등 서기관으로 근무 중이었어요. (서울) 인사동이며 (경북) 안동을 방문하셨는데, 마침 당시 생일이셔서 잔칫상을 화려하게 차려주셨던 환대를 받으시며 기뻐하셨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올해도 아무쪼록 팬데믹 상황이 나아져서 플래티넘 주빌레를 한국 국민들과 함께 축하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AFP=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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