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저는 ‘윤핵관(윤석열 핵심관계자)’이었지만, 이제 ‘윤멀관(윤석열 멀어진 관계자)’이 됐습니다. 새로운 ‘윤핵관’은 이철규입니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강원 동해시 유세의 한 장면이다. 윤 당선인 도착 전 먼저 연단에 오른 ‘윤핵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동해-태백-삼척-정선 지역구 의원인 이철규 당선인 총괄보좌역을 ‘신 윤핵관’으로 소개했다. 권 의원은 “윤석열 후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국회의원이 이철규”라며 “윤 후보가 이철규를 인간적으로 많이 부려먹어서 미안한 감정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보좌역의 현재 위상이 고스란히 담긴 발언이다.
“신 윤핵관”…경선 승리 공신
경기지방경찰청장 출신인 이 보좌역은 경찰 재직 당시 검사였던 윤 당선인과 안면을 텄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윤 당선인의 정치 입문 이후다. 이 보좌역은 같은 강원 출신인 원조 ‘윤핵관’ 권 의원의 추천으로 초창기 경선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선거에서 조직은 승패를 가르는 주요 변수 중 하나다. 특히 당원 50%, 국민여론조사 50%를 합산한 국민의힘 20대 대선 후보 경선에선 누가 더 많은 당내 조직을 장악했는지가 승부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 결과는 당원 투표에서 넉넉히 앞선 윤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이긴 홍준표 의원을 제치고 대선 후보가 됐다.
“경찰청 정보국장 출신으로 쌓아온 이 보좌역의 넓은 인맥과 원만한 성격 등이 조직을 담당하기에 최적임자였다”는 게 당시 캠프에 몸담았던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이 보좌역의 지역구는 지난해 당비를 납부하는 책임당원이 가장 많은 지역 당협으로 꼽혀(당원배가운동) 당 지도부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이 보좌역에게 위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8월 국민권익위의 국회의원 부동산 전수조사 결과 국민의힘 의원 12명에 대한 부동산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 중 한명이 이 보좌역이었다. 이 보좌역은 당선인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며 경선 캠프 본부장직을 내려놓은 뒤, 경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고 다시 윤 당선인 곁으로 돌아왔다.
대선 후보가 된 윤 당선인은 이 보좌역에게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란 중책을 맡겼다. 선거상황을 실시간 체크하고 대응하는 캠프의 야전사령관격 자리다. 하지만 한 달 뒤 이 보좌역은 선거 전략을 수립하고 지휘하는 당내 핵심 요직인 당 전략기획부총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권 의원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윤한홍 의원 등 이른바 ‘윤핵관’ 3인방이 당 안팎의 견제로 인해 밀려나자 그 역할을 대신 맡은 것이다.
갈등조정자 역할…강원지사 출마 가능성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이 보좌역의 활약상이 외부에 드러난 건 지난 1월 권영세 당시 선대본부장과 홍준표 의원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였다. 본격적인 선거운동 개시를 앞두고 당내 ‘원팀’ 기조가 뒤흔들리는 중대 사건이었다.
1월 19일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윤 당선인과 경선 경쟁자였던 홍 의원이 마주 앉았다. 당시 회동 말미 홍 의원이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재ㆍ보궐선거 2곳의 전략공천을 요구했고, 이에 윤 당선인 측은 “구태 밀실정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권 본부장은 홍 의원과 그의 측근들에게 잇따라 연락해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열흘 가까이 이어진 윤 당선인 측과 홍 의원 간의 갈등을 풀어낸 건 다름 아닌 이 보좌역이었다. 홍 의원과도 친분이 있는 이 보좌역이 권 본부장과 홍 의원 사이를 오가며 갈등 중재 역할을 자임했다.
결국 설 연휴 직전인 같은 달 28일 홍 의원은 자신이 만든 ‘청년의 꿈’ 홈페이지에 “화이부동(和而不同). 힘든 결정을 해야 할 시점이다”라는 글을 남기며 윤 당선인 지지 의사를 밝혔고, 권 본부장은“홍 선배가 당의 큰 어른이자 큰 정치인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제가 과한 표현을 썼다”며 사과했다.
윤 당선인은 대선 승리 직후 이 보좌역을 당선인 비서실에 배치했다. 3선 장제원 실장 바로 아래 자리다. 이 보좌역에 대한 윤 당선인의 신임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다.
이 보좌역의 차기 진로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당내에선 경찰 출신인 이 보좌역의 행정안전부 장관 입각설과 강원지사 출마 가능성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