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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무능하고 중립성 의심받는 김진욱 공수처장의 버티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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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해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당시 수사 전문가 사이에선 현판식 참석자가 여당 인사 위주인 점 등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진영 기자

지난해 1월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에 김진욱 초대 처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당시 수사 전문가 사이에선 현판식 참석자가 여당 인사 위주인 점 등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진영 기자

반성한다며 “끝까지 소임” 사퇴설 일축  

1년여 민망한 일탈로 조직은 존폐 위기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자진해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김 처장은 지난 16일 공수처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우리 처가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끝까지 제 소임을 다하면서 여러분과 함께할 생각”이라고 했다. 1년10개월 남은 임기를 채우겠다는 바람을 공개한 셈이다.

그는 e메일에서 한시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인용하면서 “우리 처는 신설 수사기관으로 현재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걷고 있다. 우리 처가 지난해에 좀 어지러이 걸었던 것으로 국민이 보시는 것 같아 되돌아보게 된다”고 적었다. 또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말씀하신 흠흠(欽欽)의 마음으로, 즉 삼가고 또 삼가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는 자세가 긴요하다”고 했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도 언급했다.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집중 수사해 ‘윤수처’라는 비난을 들은 공수처에 정치적 중립성이 시급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수뇌부의 무능이다. 지난 1년의 일탈은 나열하기조차 민망하다. 김 처장은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자신의 관용차에 태워와 ‘황제 조사’ 논란을 자초했다. 이 사실을 보도한 TV조선 기자의 통신 자료를 들여다봤다. 이 고검장 관련 공소장이 유출되자 중앙일보 기자의 가족까지 통신 자료를 뒤졌다. 이런 식으로 당한 언론·시민단체·야당 인사가 수백 명에 이른다. 카톡방까지 훑었다. 김 처장은 e메일에서 “저 역시 지난해를 되돌아볼 때, 수사기관의 장으로서 그 무게감에 맞게 말하고 행동했는지 반성이 된다”고 했다.

어제 김 처장의 코로나19 확진으로 대행을 맡게 된 여운국 차장은 ‘고발 사주’ 수사와 관련해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체포 및 구속영장을 세 차례나 청구했다가 연거푸 기각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영장 심사 과정에서 남긴 “우리는 아마추어”라는 말은 두고두고 회자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공수처법상 강제 이첩 조항을 없애는 공약을 발표했으며, “고칠 만큼 고쳐보고 안 되면 폐지 수준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 역시 토론회에서 “모든 부분에서 공수처 실력은 0점이라 생각한다”며 폐지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예산을 배정하지만, 집행은 행정부가 한다”며 공수처 인건비를 확 줄여 기능을 마비시키는 방안까지 거론했다.

국가기관장은 배우고 연습하는 자리가 아니다. 평생 실력을 쌓아 정점에 이르렀을 때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역할이다. 한 해 예산 200억원을 쓰면서 헛발질만 하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존폐 위기에 몰린 공수처는 중립성과 수사 역량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 김 처장이 적임자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