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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신구권력 치킨게임…현안이 뒤로 밀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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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재인(左), 윤석열(右)

문재인(左), 윤석열(右)

미래 권력의 무리한 속도전인가, 현재 권력의 돌연한 발목잡기인가.

윤석열(오른쪽 사진) 대통령 당선인의 집무실 용산 이전 방침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정면충돌이 갈수록 위태롭다. 정권 이양기에 벌어진 권력 충돌이 해소될 기미 없이 확전일로 양상이어서다.

문재인(왼쪽 사진)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 원수이자 행정 수반, 군 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것을 마지막 사명으로 여기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국민 경제, 국민 안전은 한순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에서 윤 당선인의 ‘용산 이전’ 구상에 대해 안보 공백 등을 이유로 “무리”라고 한 데 이어 불가론을 재천명한 말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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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또 “공공부문의 여성 대표성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많이 떨어지지만 우리 나름의 목표를 정하고 목표 이상으로 대표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며 여성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윤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우회적으로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윤 당선인 측 역시 물러섬 없는 직진 의지를 드러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인수위 브리핑에서 “난관을 이유로 꼭 해야 할 개혁을 우회하거나 미래의 국민 부담으로 남겨두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날 ‘용산 이전 무산 시 취임 직후 통의동 (인수위원회) 집무실 사용’ 방침을 밝힌 것과 달라지지 않은 기조다.

윤 당선인의 반응은 훨씬 격앙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전날 청와대의 제동에 윤 당선인은 내부 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 준비를 방해하는 게 아니냐”며 “그들이 아무리 방해해도 절대로 청와대는 안 들어간다. 이렇게 청와대로 가는 건 권력에 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인수위 관계자는 전했다.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 대해서도 “이전 비용 등을 협상하기 위해 만나는 건 안 하겠다. 필요 없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고 한다.

여 “뭐가 씌었나” 야 “대선불복”… 감정싸움으로 국민만 불안

윤 당선인 측은 5월 10일 취임 후에도 통의동 사무실을 임시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는 방안에 대한 내부 검토에 착수했다.

이 밖에도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핵심부 인사들과 국회 등 곳곳에서 거친 파열음이 나오는 등 다층적 전선이 형성됐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직접 총대를 메고 장외 여론전을 주도했다. 이날 다섯 차례 언론 인터뷰에 나와 “현재 상태로 (이전)하면 (위기관리시스템이) 단절될 수밖에 없다”는 등 논리를 폈다. 윤 당선인 쪽에선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은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이 나서 “(북한이) 방사포를 쐈다고 갑자기 NSC를 소집하며 안보 운운하는 자체가 굉장히 역겹다”고 직격했다.

훨씬 거친 언사가 동원된 여야 공방은 감정싸움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용산 이전 계획에 대해 찬성 33.1%, 반대 58.1%로 나온 이날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결과를 들어 “‘칼사위’를 내민다 한들 절대 꺾이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국민 불안 대참사”(안규백 의원), “이렇게 옮기게 되면 ‘뭐가 씌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국민들이 생각할 것”(설훈 의원)이란 말도 나왔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문 정권이 이제 와서 안보를 내세우는 것은 참으로 난센스”라고 맞받았다. 성일종 의원은 여권 일각의 ‘용산 이전 비용 1조원설’을 들어 “광우병 괴담으로 재미를 봤던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대선에 불복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이 돼버린 청와대를 나와 시민들 한가운데로 들어가겠다는 윤 당선인의 ‘소통’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직접 지휘봉을 들고 용산 이전 구상을 브리핑했고, 대통령 집무실 1층에 프레스룸을 마련하겠다는 얘기도 언론의 필봉을 약으로 삼겠다는 소통 의지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집무실 이전 시 군 지휘통제체계 공백 가능성과 이후 안정화 시간 등을 감안하면 충분한 협의와 준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허니문’ 없는 권력 이양기에 벌어진 신구 권력의 날선 충돌이 국민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안정적인 정권 이양이 어려워지면 그로 인한 민생 공백 등 피해는 결국 국민 몫이다.

‘깻잎 한 장 차이’라는 0.73%포인트 차이로 승패가 갈린 이번 대선에 담긴 민의는 절묘하게 배분된 득표율만큼이나 여야가 협치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양측이 감정싸움으로 치달을 게 아니라 조속히 만나 집무실 이전 문제를 매끄럽게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소상공인 손실 보상, 불필요한 규제 완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급변하는 국제정세 대비 전략 등 직면한 국정 현안이 산적한 현실에서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현 정부는 선거 결과로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들어 협조적으로 인수인계하고, 새 정부 측은 ‘권력’이 아닌 ‘행정업무’를 넘겨받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점령군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주변의 신뢰할 만한 측근들이 유연하게 타협의 명분을 주고 두 분이 직접 만나 갈등을 풀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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