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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민영의 일리(1·2)있는 논쟁

어릴적 여가부 도움받은 청년, 기꺼이 폐지 지지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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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새 기획 칼럼 시리즈 '나는 고발한다. J'Accuse...!'가 대선 이후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이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나는 고발한다 번외편-일리(1·2)있는 논쟁'을 22일부터 일주동 동안 매일 연재합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찬반 의견, 탈원전 이슈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여가부와 함께 성폭력 피해자 변호를 해온 김재련 변호사가 "여가부 '폐지'가 아닌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데 이어 23일 어린 시절 여가부 도움을 받았다는 박민영 전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이 "부처 이름이 그 역할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면 이젠 다른 이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소개합니다. 더 다양한 글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가부엔 여성 정책만이 아니라 가족 정책도 많다. 문재인 정부는 그 부분이 취약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여가부엔 여성 정책만이 아니라 가족 정책도 많다. 문재인 정부는 그 부분이 취약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배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타인의 장점을 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단점을 답습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접하는 타인은? 부모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하나 보다. 그 거울이 부모의 장점만을 비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부모도 인간이며, 부모 노릇이 처음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 보통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다. 인격의 완성을 위해선 부모의 장점을 취함과 동시에, 부모의 단점을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는 커서 우리 부모가 하듯 저러진 말아야지”라는 다짐이 비극이자 축복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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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그랬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386세대 남성이었다. 운동권 출신이었다. 언제나 학생운동 시절의 경험을 영웅담처럼 늘어놓곤 했다. 그러나 내가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당신이 묘사하듯 과거의 그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약자를 대변하지도, 노동자를 존중하지도 않는 위선으로 가득 찬 꼰대가 나의 아버지였다. 난생 처음 만난 택시기사와 정치적 언쟁을 벌일 때는 ‘박사’라는 자신의 지위를 앞세웠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돌봐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던 우리 삼 남매에게 학벌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는 비하적 언어로 ‘공돌이’와 ‘공순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커서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통제 가능한 결론을 도출했다.

아버지는 가족을 돌보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방관으로부터 장남이었던 나는 어릴 적부터 책임의 중요성을 배웠다. 사실 이건 훨씬 나중에 깨달은 거고 내 어린 시절은 그저 불우했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 나와 두 명의 동생을 부양한 건 보험 일을 비롯해 갖은 일을 하던 어머니였다. 대학 운동권 서클에서 만나 같은 꿈을 꾸던 두 사람. 그러나 한 사람은 가부장적 꼰대 마인드로 무장해 가족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존재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학대받다 여성학 공부한 어머니 

내가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무슨 연구기관에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대뜸 내게 학원비를 건네며 “투자한 만큼 성적으로 보답하라”고 요구했다. 부모의 잦은 별거로 이사만 너덧 번을 다니며 알파벳 읽기조차 제대로 못 배운 내가 갑자기 좋은 성적을 받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손에 쥔 성적표는 빚 독촉장처럼 무겁게만 느껴졌고,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려 밤거리를 헤매이다 새벽에야 쥐 죽은 듯 귀가해 새우잠을 청하는 게 내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의 전부다. 이따금 어머니가 내 편을 들어 나서기라도 하면 아버지는 “여긴 내 집이니까 나가라”고 호통치며 우리를 내쫓았다. 아버지라는 권위만을 누렸고 아버지로서 책임은 망기했다. 나는 그런 경멸스러운 아버지가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박민영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의 어린 시절. 가족 사진이 거의 없다. [사진 박민영]

박민영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의 어린 시절. 가족 사진이 거의 없다. [사진 박민영]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삼 남매가 아닌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한때 아버지의 이념적 동지였던 어머니는 당신의 삶을, 온전히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자식을 키우는 데 바쳤다. “그때는 손만 잡아도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다”라며,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게 해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어머니는 선비질이 몸에 밴 386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피해자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악착같이 우리 삼 남매를 거뒀으며,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내 학비를 스스로 벌게 되자 “내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했다. 여성학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동생들을 돌보기 위해 휴학하고 돈을 벌면서, 그런 어머니가 아버지만큼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해했다. 그리고 어느덧, 문제의식을 배움의 토대로 삼는 어머니의 모습과 닮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을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는 건 이런 경험에서 나온 것이리라.

결핍 채워준 여가부

책임지지 않는 아버지, 독립을 선언한 어머니. 줄곧 이해할 수 없는 결핍에 삶이 고달팠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결핍은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꿈의 토대였다. 나의 아버지는 썩 유능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기숙학원에서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학원비를 내어줄 정도의 경제력은 있었다. 비록 좋은 대학에 입학할 것을 조건으로 한 계약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살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물론 대학 입학 직후에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부모님의 이혼 소송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홀로 학비를 벌며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권에 나선 지금까지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내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스스로 노력해서 쟁취한 명문대 졸업장이라는 학력이라도 없었다면 나는,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미약하게나마 도움을 주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여성가족부였다. 가정폭력을 가정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고, 위자료와 양육비 산정 기준을 개선하였으며, 한부모 가정 지위를 신설하여 지원한 건 여가부의 공이다. 내가 직접 경험해봐서 안다. 그러기에 가족 문제만큼은 지금의 여가부 이상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여가부가 아니라 말이다. 어릴 적 여가부의 도움을 받은 내가 여가부를 폐지하고 미혼모와 한부모 가정, 위안부 피해자 보호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부처를 신설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생각에 기꺼이 동의할 수 있는 이유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정강정책연설을 하고 있는 박민영씨. [유튜브 캡처]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정강정책연설을 하고 있는 박민영씨. [유튜브 캡처]

아무튼, 그 작은 불씨들을 살려 고민하고 성장할 기회를 얻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기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386세대를 보며 나의 아버지에 스민 악을 본다. 자사고 폐지 등 교육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자기 자식은 학비 비싼 특목고인 외국어고와 과학고에 보내고, 노동자를 대변한다면서 일자리 세습을 요구하고, 검찰과 언론 개혁을 외치면서 180석 국회의 기득권은 내려놓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바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악이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우리 청년세대는 적어도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도록, 아픔을 통해 성장하는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보려고 한다.

세상에는 많은 악이 존재한다. 사실은 악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문제의식이 있고, 갈등이 있고, 그렇게 갈등하며 사회는 성장한다. 세대갈등과 젠더갈등도 마찬가지다. 자식이 부모를 반면교사 삼듯,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를 반면교사 삼아 새로운 가치를 좇는다. 그렇게 도달하게 될 미래가, 세대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