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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미애의 일리(1·2)있는 논쟁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오해 말라...尹 '7글자'에 담긴 숨은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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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애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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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새 기획 칼럼 시리즈 '나는 고발한다. J'Accuse...!'가 대선 이후 첨예하게 의견이 엇갈리는 이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는 '나는 고발한다 번외편-일리(1·2)있는 논쟁'을 22일부터 일주동 동안 매일 연재합니다. 여성가족부 폐지 찬반 의견, 탈원전 이슈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여가부와 함께 성폭력 피해자 변호를 해온 김재련 변호사가 "여가부 '폐지'가 아닌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데 이어 23일은 피해자 보호를 직접 했던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의 글과 어린 시절 여가부 도움을 받았다는 박민영 전 국민의힘 청년보좌역이 "부처 이름이 그 역할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면 이젠 다른 이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전합니다. 더 다양한 글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래픽=전유진 기자

그래픽=전유진 기자

존폐 논란이 불거진 후 사람들이 '여성'에만 주목하지만 사실 여성가족부 업무의 다른 한 축은 '가족'이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보호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한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족, 가정(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돌봄과 지원 기능이 주된 역할이라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기간 중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자 공약을 내놨을 때 의미했던 건 세간의 오해처럼 이 두 기능을 전부 없앤다든지, 혹은 여성을 지운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던 기능을 합쳐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방향으로 봐야 한다. 다만 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여가부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난 새 틀을 갖추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16년간 부산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소년 보호 업무를 해온 나 역시 여기에 동의한다.

우선 청소년 보호 업무를 얘기해 보자. 나는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은 아이들의 위탁 보호자 및 국선 보조인 역할을 여러 차례 맡았다. 비행의 정도가 약하고, 자기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소년들이 시설(소년원)이 아닌 사법형 그룹홈(청소년 회복지원시설)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업무가 부처별로 쪼개져 유기적 연계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가령 보호처분은 가정법원이 내리고 보호관찰소가 관리한다. 보호처분 받은 아이들 상담은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여가부의 일인데, 문제는 여가부가 이런 아이들의 특수성에 맞춰 제대로 상담을 할 만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게다가 야간이나 주말에는 아예 상담 업무를 하지 않는다. 도움이 절실한 순간에 문을 닫아버리는 셈이다. 국회에 오기 전부터 이런 여가부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부처간 경계가 사각지대 만들어 

이게 다가 아니다. 차라리 학교 밖 청소년이면 여가부 전담이라 명확하다. 좀 더 어린 나이에 아동학대 정황이 있는 경우엔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가 개입한다. 피해자를 학대 가정(부모)에서 분리한 뒤 상담이나 치료 등 회복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 기능을 하는 여가부 산하 건강가정지원센터가 있지만 부처 간 협업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장애인이나 노령층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가족 관련 사업도 비슷하다. 주무 부처는 보건복지부다. 그런데 다문화 가족이나 한부모 가족 지원은 여가부 업무다. 아동 돌봄도 가정 안이냐, 밖이냐의 차이로 담당 부처가 여가부가 되기도 하고, 복지부·교육부가 되기도 한다. 청소년이라도 학교 안은 교육부, 학교 밖은 여가부 소관이다.

여성가족부의 2022년 업무 계획 브리핑 장면. [연합뉴스]

여성가족부의 2022년 업무 계획 브리핑 장면. [연합뉴스]

부처 간 원활한 협업은커녕 당장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가 어디에서 도움을 얻을지 알지 못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모든 정책은 국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민은 당연히 논스톱 복지 서비스를 원하는데 부처 편의에 따라 대상자를 분리 지원하는 건 효과가 반감된다. 이러니 만족도가 떨어진다.

최근의 여가부 폐지 논란 가운데 가장 뜨거운 이슈인 성폭력 피해 지원도 얘기해 보자.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미투법률지원단을 만들어 일할 때도 상담부터 판결 확정까지 세심한 도움이 필요함에도 여가부가 주무 부처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사실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권력형 성범죄는 물론 공군 여중사 성폭력 피해 사건에서 도대체 여가부가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어떤 도움을 줬는 지 알 수가 없다. 여가부가 모든 사건을 방관하지는 않았겠지만 시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는 늘 실망감을 안겼다.

2020년 4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부산경찰청을 방문해 오거돈 전 부상시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에 김미애 의원이 있다. 송봉근 기자

2020년 4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부산경찰청을 방문해 오거돈 전 부상시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에 김미애 의원이 있다. 송봉근 기자

뜨거운 감자인 '여성' 얘기도 해야겠다. 보호와 연대가 필요한 건 비단 여성만이 아니다. 크게 늘어나는 남성 고독사 관련 대책도 시급하다. 여성을 넘어 남녀 모두를 보호해야 한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지금의 여가부가 감당할 수가 없다.

남녀 모두 위해 여가부·복지부 결합해야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 역할과 기능의 통합이다. 복지부와 여가부의 결합이 필요하다. 그냥 두 부처를 합치자는 게 아니다. 우선 보건복지부를 보건과 복지로 분리해야 한다. 보건의료와 사회복지는 각각의 분야가 방대할 뿐만 아니라 업무 성격 차이도 크다. 특히 코로나 19 이후 감염병 및 질병 관리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도 보건과 복지를 구분할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렇게 보건을 뗀 복지부와 여가부를 통합해 ‘복지가족부’(가칭)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대상자, 나이, 형태 등에 관계없이 생애주기에 걸친 보편적이고 연속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여가부가 주로 맡아 온 여성 일자리 개발 및 경력단절 여성 지원은 여전히 중요하다. 여가부가 그동안 권력형 성범죄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지만 성폭력이나 스토킹 피해자 보호 및 지원은 비교적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기능과 역할은 유지돼야 한다. 다만, 여성만이 아니라 남녀 모두를 보호하는 정책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또 저출생과 초고령화 등 인구 문제를 관장하는 인구청을 신설하거나 복지가족부 산하에 관련 조직을 별도로 두면 좋겠다. 인구 문제를 다룰 컨트롤타워 신설은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2021년 8월에 실시한 여론조사

2021년 8월에 실시한 여론조사

2001년 출범한 여가부는 호주제 폐지, 성폭력·성매매 방지법 제정, 경력 단절 여성 지원 등의 성과를 냈다. 이런 부분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재의 여가부는 회복 불가능할 만큼 국민 신뢰를 상실했다. 권력형 성범죄에 단호하지 못하고, 거꾸로 권력과 가해자를 두둔하면서 여성권익 신장에 역행한 탓이다. 재탄생이 불가피하다. 이게 어떻게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 하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국민의 권익과 편의를 위한 체제 개편이자 개혁일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윤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라고 쓴 건 그만큼 개혁 의지가 선명하고 확고하다는 걸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 일곱 자에 기능 중심으로 부처를 재편하고 정부 조직을 재구성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이제는 국민 모두 알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