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감독 브래너 "벨파스트 종교 분쟁에 3700명 사망…폭력 해답될 수 없어"

중앙일보

입력 2022.03.22 18:49

업데이트 2022.03.22 19:48

어린시절 겪은 북아일랜드 종교 내전을 자전적 영화 '벨파스트'에 담은 케네스 브래너 감독(사진)은 당시고향 벨파스트를 떠나며 많은 것을 잃었다고 고백했다.[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어린시절 겪은 북아일랜드 종교 내전을 자전적 영화 '벨파스트'에 담은 케네스 브래너 감독(사진)은 당시고향 벨파스트를 떠나며 많은 것을 잃었다고 고백했다.[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폭력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죠. 그 답은 항상 대화여야 합니다.”
영국의 배우 겸 감독 케네스 브래너(62)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분열이 심화된 국제정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2일 영화 ‘벨파스트’의 한국 개봉(23일)에 앞서 진행된 전화 인터뷰에서였다. 그는 자신이 소년 시절 고향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겪은 종교 내전 상흔을 ‘벨파스트’에 담았다. “30년간 벨파스트 분쟁은 3700명의 사망자를 낳았고 이후 위기로 휘청거리는 평화가 이어졌다”고 돌이킨 그는 “영화에도 나오듯 ‘우리 편이거나 적이거나(둘 중 하나)’라는 태도는 해답이 될 수 없다. 폭력은 즉각적으로 예와 아니오, 흑과 백 중 하나를 택하게 강요하지만 인간의 행동과 국가 간 관계는 그보다 복잡하다”면서 “폭력이 앞서면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받는데 그건 불공평하다”고 했다.
브래너는 영국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헨리 5세’ ‘햄릿’ 등의 고전과 ‘덩케르크’ ‘테넷’ ‘나일강의 죽음’ 등 블록버스터를 넘나 들어온 배우 겸 감독이다. ‘벨파스트’의 각본‧연출‧제작을 맡아 처음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냈다.

23일 개봉 영화' 벨파스트'
브래너 감독 자전적 유년기
69년 벨파스트 종교내전 그려

"50년간 트라우마 과소평가…
영화 만들며 정체성 되짚었죠"

아이들 놀던 골목 불구덩이 만든 종교분쟁

1969년 벨파스트에서 발발한 개신교‧천주교도 간 폭력사태로 그의 가족은 고향을 등지고 영국행 피란길에 올랐다. 영화는 이를 그의 분신인 아홉 살 소년 버디(주드 힐)의 천진난만한 눈높이로 그린다.
어린 버디에게 벨파스트는 세상의 전부다. 하굣길엔 가까이 사는 할머니‧할아버지 집에 매일같이 들르며 재밌는 이야기를 듣는다. 생전 처음 좋아하는 여자애도 생긴다. 그날도 버디는 골목에서 나무칼을 휘두르며 용을 무찌르고 있었다. 이웃들과 인사하던 순간 화염이 치솟았다. 창문이 깨지고 자동차가 폭발했다. 엄마는 비명 치듯 애타게 버디를 불렀다.
“이 영화는 진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술이죠. 지난 50여년간 나는 그렇게 벨파스트를 떠난 것이 얼마나 트라우마가 됐는지를 과소평가했어요. 벨파스트를 탈출하는 동안 많은 것을 잃었죠. 정체성까지도요.”
브래너 감독에게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벨파스트 공장지대의 가난한 노동자 마을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창작 원천을 되짚는 일이기도 했다. 데뷔 초부터 영국에서 로렌스 올리비에를 잇는 셰익스피어극 정통 배우로 각인돼온 그는 “내 스토리텔링의 뿌리는 북부 벨파스트 거리의 노동계급 공동체 생활에서 시작됐다”면서 “이 영화를 만들며 지난 50년간 줄곧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으려 했다”고 말했다.

"흑백은 사람들의 영혼을 더 잘 보여준다" 

23일 개봉하는 영화' 벨파스트'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9살에 가족과 함께 떠나온 고향,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그 시절 겪은 비극을 유년기 추억에 버무려낸 영화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23일 개봉하는 영화' 벨파스트'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9살에 가족과 함께 떠나온 고향,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그 시절 겪은 비극을 유년기 추억에 버무려낸 영화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이유는.  

“흑백 영상에는 ‘시(詩 )’가 담겨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고전 영화 ‘자전거 도둑’의 흑백 이미지엔 진정성이 느껴진다. 흑백은 때로 사람들의 영혼을 더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50년 전 기억을 되새겨낸 감독이 아홉 살짜리 눈을 통해 들려주는 일종의 꿈과 같은 이야기고 꿈에는 흑백이 더 잘 어울린다.”

버디가 가족과 보는 극 중 영화‧연극만은 컬러로 표현했다.

“내 기억 속 벨파스트는 남성적이고 회색빛 모노톤 도시였지만, 극장에서 만난 ‘컬러’(영화)가 우리 삶을 침입했다. 컬러는 탈출의 언어였다. 이야기의 언어, 세계의 언어였다. 거의 전기충격 같은 매력이었다. 영화 관람은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했던 의식이고 벨파스트의 실생활과 대조를 이뤘다. 내가 궁극적으로 예술의, 그 ‘컬러’의 일부가 될 수 있게 해준 이 어린 시절의 무수한 경험이 감사할 뿐이다.”

계속 벨파스트에 살았다면 지금과 삶이 어떻게 달랐을까.

“더 일찍 작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노래와 시를 사랑하고 그런 이야기의 전통에 나는 완전히 매료됐을 테니까.”

주디 덴치, 27일 윤여정에 아카데미상 받을까 

영화 '벨파스트'에서 온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장면. 맨가운데가 배우 주디 덴치가 연기한 버디(오른쪽 두 번째)의 할머니다.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벨파스트'에서 온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간 장면. 맨가운데가 배우 주디 덴치가 연기한 버디(오른쪽 두 번째)의 할머니다.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에서 가게에서 어설프게 과자를 훔치려다 잡혀 경찰서까지 갔던 장면도 실화가 토대다. 친구도 종교가 같아야 사귈 수 있는 건지, 심각한 고민에 빠진 버디를, 열두 살 신예 주드 힐이 섬세하게 연기했다. 오디션에서 300대 1 오디션을 뚫고 발탁된 배우다.
주연 배우들은 모두 실제 아일랜드 출신이다. 버디의 할아버지 역 시아란 힌즈는 브래너 감독 가족과 당시 지척에 살았던 한동네 출신이었다. 당시엔 종교가 달라 서로 섞이지 못했지만 이번엔 한뜻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할머니 역의 주디 덴치는 오는 27일(미국 현지 시간) 배우 윤여정이 시상자로 나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벨파스트’는 이를 비롯해 작품상‧감독상‧각본상 등 총 7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인상 깊게 본 한국영화를 묻자 브래너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고 답했다. ‘기생충’은 2년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기생충’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영화죠. 연기력, 아이디어의 독창성, 구현력, 복잡함…. 그 모든 것이 즐겁고 고무적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독창성은 할리우드 주류영화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불어넣었어요. ‘기생충’의 위대한 성공이 우리를 다른 좋은 한국 영화들로 인도해준 것에 대해 저는 영원히 감사할 겁니다.”

영화 '벨파스트' 촬영 당시 현장에서 케네스 브래너 감독. 그는 9살 때 자신에게 나중에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누가 말했다면 "달에 가는 게 더 쉬울 걸" 하며 웃어넘겼을 거라고 미소로 돌이켰다. [사진 유니버슬 픽쳐스]

영화 '벨파스트' 촬영 당시 현장에서 케네스 브래너 감독. 그는 9살 때 자신에게 나중에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누가 말했다면 "달에 가는 게 더 쉬울 걸" 하며 웃어넘겼을 거라고 미소로 돌이켰다. [사진 유니버슬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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