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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배신자" 찍힌 중국인…'고기 영상' 찍던 그가 변한 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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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오데사에 거주하는 중국인 왕즈시안(36). [사진 페이스북]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거주하는 중국인 왕즈시안(36). [사진 페이스북]

 “또 공습경보인가요? 그놈들이 다시 오고 있네요.” 우크라이나 항구도시 오데사에 사는 중국인 왕즈시안(王吉贤·36)은 요즘 매일 오데사 현지 상황을 촬영해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에 공유한다. 또 다른 동영상에선 중국 여권을 들고 “이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나치가 아니라 IT 프로그래머, 이발사 등 보통 이웃들”이라고 강조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발언을 인용해 전쟁을 비판하기도 했다.

인류애를 강조한 그의 주장은 그러나 중국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올린 동영상이 거의 매번 10만회를 넘기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자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댓글도 함께 늘었다. “당신에겐 더는 중국 여권이 필요 없다. 당신의 나라를 이미 잊어버렸으니까”라거나 “국가의 공식 입장은 모든 중국인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왕씨는 18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뭘 어떻게 배신했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러시아 지지 영상에 분노 

중국 계정이 차단되자 지난 7일 입에 X자로 검정색 테이프를 붙이고 영상을 촬영한 왕즈시안. [유튜브 캡처]

중국 계정이 차단되자 지난 7일 입에 X자로 검정색 테이프를 붙이고 영상을 촬영한 왕즈시안. [유튜브 캡처]

베이징 출신인 프로그래머 왕씨는 4년 전 직장 문제로 오데사에 정착했다. 미술을 전공하고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왕씨는 문화도시 오데사에 금방 매료됐다. 개전 이후 그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 투사를 자처한 건 아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달 24일 그가 중국판 틱톡 ‘두인’에 올린 영상은 슈퍼마켓에서 과일과 고기를 사는 모습이었다. 중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잘살고 있다는 생존신고를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후 러시아 공격이 격화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두인에 접속할 때마다 본 중국인들이 제작한 영상은 러시아 침공을 지지하는 내용 일색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참상을 중국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유튜브와 중국 메신저 위챗, 두인 등 플랫폼을 다양하게 활용했다. 왕씨는 “(러시아 지지) 영상을 보니 너무 화가 났다”며 “이곳 비디오를 통해 실제 전장이 어떤 모습인지 그들에게 보여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돈을 받고 영상을 올린다는 오해도 받았다. 왕씨가 마케도니아에 거주할 때 알고 지냈던 중국 대사관 직원은 “누가 당신을 우크라이나에 보냈냐”고 물었고, “돈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다”라는 왕씨에게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은 국익과 맞지 않는다”며 “당신과 절교하고 싶다. 서로 (SNS 계정을) 차단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왕씨는 “정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돈 받나” 오해받고 절교 당하기도

왕즈시안이 중국 메신제 위챗 사용정책 위반으로 단체채팅방 입장이 차단됐다는 알림. [유튜브 캡처]

왕즈시안이 중국 메신제 위챗 사용정책 위반으로 단체채팅방 입장이 차단됐다는 알림. [유튜브 캡처]

중국 검열 당국도 그의 동영상 단속에 나섰다. 그의 중국 계정 중 위챗은 80%, 두인은 20%의 동영상만 각각 남아있다. 왕씨가 해외 언론에서까지 주목받자 당국은 아예 SNS 계정까지 차단해 가족과 연락할 수도 없게 됐다. 왕씨는 자신이 무슨 규칙을 위반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7일엔 입에 X자로 검은색 테이프를 붙이고 아무 말 없이 몸짓으로만 오데사 집 바깥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을 게시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동영상 게시를 중단하라는 권유와 압박도 셀 수 없이 받고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저는 우크라이나의 영웅과 이웃을 위해 목소리를 낼 겁니다. 제 눈에는 모두가 영웅이거든요. (이 상황에도) 우크라이나 국민은 침착하고 용감하죠. 저는 여러분에게 누가 죽어가고 있는지, 누가 죽임을 당했는지 알려주고 싶어요.”

그를 걱정하는 이들은 우크라이나를 빨리 떠나라고도 한다. 동영상을 촬영하지 않을 때면 난민들의 휴대전화를 수리해주는 등 자원봉사를 한다는 그는 그러나 “오데사가 완전히 파괴되기 전까지는 떠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만약 제가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버리고) 돌아서서 떠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저는 전쟁이 끝나고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때까지 우크라이나를 떠날 생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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