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서 흥한 ‘시맨틱 에러’…BL 드라마 대중화 물꼬 트이나

중앙일보

입력 2022.03.22 12:07

업데이트 2022.03.22 12:12

지난 18일 왓챠가 공식 SNS에 업로드한 자사 오리지널 시리즈 '시맨틱 에러' 스틸컷. 지난달 16일 공개된 이후 '시맨틱 에러'는 왓챠 시청순위 TOP10에서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왓챠 제공]

지난 18일 왓챠가 공식 SNS에 업로드한 자사 오리지널 시리즈 '시맨틱 에러' 스틸컷. 지난달 16일 공개된 이후 '시맨틱 에러'는 왓챠 시청순위 TOP10에서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왓챠 제공]

원칙주의자 공대생 추상우(박재찬)는 조별과제에 무임승차한 조원들의 이름을 발표자료에서 몽땅 빼버린다. 그로 인해 해당 과목에서 F학점을 받고 졸업이 좌절된 시각디자인과 ‘인싸’ 장재영(박서함)은 자신을 피하는 상우를 필사적으로 찾아 나선다. 끈질긴 추격 끝에 마침내 조우하게 된 두 사람. “생각보다 잘생겼네?” 재영이 상우에게 던지는 첫마디다.

6주째 왓챠서 1위…NEW도 BL 드라마 제작 나서

지난달 16일 공개된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시맨틱 에러’의 초반 줄거리다. 2018년 출간된 동명의 웹소설을 8부작으로 그려낸 이 드라마는 공개 직후부터 줄곧 왓챠 시청 순위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BL물 ‘시맨틱 에러’…왓챠서 6주째 1위

서로 상극인 두 주인공이 초반에는 티격태격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에게 ‘스며드는’ 이야기. 전형적인 로맨스 코미디물의 서사를 따르지만, ‘시맨틱 에러’에선 그 로맨스의 주체가 둘 다 남성이다. 국내 OTT 오리지널 콘텐트로서는 이례적으로 ‘BL(Boy’s Love, 남성 동성애 코드의 로맨스물)’ 장르를 전면에 드러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맨틱 에러’의 흥행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지난달 16일 공개된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시맨틱 에러'는 로봇처럼 짜여진 일상을 살아가는 공대생 추상우(박재찬, 오른쪽)의 일상에 갑자기 들어온 디자인과 '인싸' 장재영(박서함)의 이야기를 다룬 캠퍼스 BL물이다. [왓챠 제공]

지난달 16일 공개된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시맨틱 에러'는 로봇처럼 짜여진 일상을 살아가는 공대생 추상우(박재찬, 오른쪽)의 일상에 갑자기 들어온 디자인과 '인싸' 장재영(박서함)의 이야기를 다룬 캠퍼스 BL물이다. [왓챠 제공]

10~30대 여성이 주요 소비층 BL 장르는 TV 같은 대중매체보다 웹소설·웹툰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숨어서 보는’ 콘텐트로 여겨지는 측면이 강했다. 다만 일본·대만·태국 등 일부 아시아권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BL 장르의 영상화가 활발히 이뤄지는 흐름이었다. 국내에서도 2020년 제작된 웹드라마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를 시작으로 ‘새빛남고 학생회’ ‘나의 별에게’ 등 BL 영상 시리즈물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국내 주요 OTT인 왓챠가 제작한 ‘시맨틱 에러’가 성공을 거두면서 BL의 대중화에 물꼬가 트이는 양상이다. 아이돌 출신 주연 배우 2인에게도 덩달아 관심이 쏠리며 곳곳에서 화제성을 입증하고 있다. 두 사람이 표지를 장식한 영화 잡지 ‘씨네21’ 1346호는 출간 직후 품절됐고, 상우 역을 맡은 박재찬이 소속된 아이돌 그룹 DKZ(전 동키즈)의 과거 타이틀곡이 일부 음원차트 순위권에 재진입하며 ‘역주행’하기도 했다. 원작 웹소설을 유통한 플랫폼 리디북스에 따르면, 드라마 공개 이후 일주일간 웹소설 거래액은 이전 대비 576% 증가했다.

웹소설 '시맨틱 에러'를 기반으로 한 동명의 웹툰(왼쪽)과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의 포스터. [리디, 왓챠 제공]

웹소설 '시맨틱 에러'를 기반으로 한 동명의 웹툰(왼쪽)과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의 포스터. [리디, 왓챠 제공]

이같은 흥행에 대해 왓챠 관계자는 17일 통화에서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반응이 폭발적인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시맨틱 에러’를 오리지널 콘텐트화 한 이유에 대해 “단순히 BL물이어서 선택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기존에 왓챠로 유통했던 BL 콘텐트들에 비춰볼 때, BL이 충분히 화제성과 팬덤을 일으킬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취향 위해 지갑 연다”…‘음지 문화’ 수면 위로 올리는 이용자

BL물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배경에는 OTT의 발달이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과거 레거시 미디어가 일방적으로 콘텐트를 공급했던 것과 달리, 여러 OTT들이 이용자 한 명 한 명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면서 BL과 같은 장르물도 주요 시장으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장민지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젊은 여성이 주를 이루는 BL의 주요 이용자층은 자신의 취향을 위해 언제든 지갑을 열 수 있는, 구매력 높은 이들”이라며 “이용자를 지속적으로 붙잡아두는 게 중요한 OTT로서는 팬덤이 계속해서 구축되는 BL 장르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성애 등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나마 포용적으로 변한 사회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들어 동성애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가 다수 등장하는 등 조금씩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거꾸로 BL 드라마가 동성애에 대한 접근성을 자연스레 높이면서 포용적인 관점을 확산시키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영화배급사 NEW가 제작 및 투자에 나선 BL 웹드라마 '블루밍'의 포스터. BL웹툰 '인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이달 31일 네이버 시리즈온, IPTV (KT olleh TV, SK Btv, LG U+TV) 등을 통해 동시 공개될 예정이다. [NEW 제공]

영화배급사 NEW가 제작 및 투자에 나선 BL 웹드라마 '블루밍'의 포스터. BL웹툰 '인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이달 31일 네이버 시리즈온, IPTV (KT olleh TV, SK Btv, LG U+TV) 등을 통해 동시 공개될 예정이다. [NEW 제공]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권에 BL 팬덤이 넓게 구축돼있다는 점에서 콘텐트 업계의 관심은 이어질 전망이다. 왓챠는 내달 중 BL 사극 웹툰 ‘춘정지란’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를 공개할 예정이다. 또 영화 투자배급사인 NEW는 사업 다각화의 일환으로 BL 웹드라마 제작 및 투자에 나섰다. BL 웹툰 '인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블루밍’을 오는 31일 네이버 시리즈온과 IPTV 등을 통해 동시 공개한다. 이어 3편의 BL 웹드라마를 올해 안에 추가로 제작해 유통시킬 계획이다. NEW 영화사업부 김재민 대표는 지난 7일 “팬데믹 환경 속에서 BL 콘텐트가 활성화된 국내 및 해외 시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며 “4편의 BL 드라마는 이미 해외 선판매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BL이 웹드라마 형태를 넘어 확고한 주류문화로까지 대중화될 수 있을지를 두고는 회의적인 전망도 있다. 정 평론가는 “왓챠는 토종 OTT 가운데 동성애를 비롯한 개성 있는 소재를 다룬 콘텐트를 많이 유통하는 편”이라며 “BL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국내 OTT들까지 BL물에 뛰어들기까지는 장벽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 교수도 “BL은 산업적으로 보면 분명 파급력이 큰 장르이지만, 과거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가 공중파에서 방영됐을 때 반발이 일었던 사례 등을 돌이켜 보면 대중화가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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