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킹] 아침을 여는 커피 ‘에스프레소’

중앙일보

입력 2022.03.22 07:12

업데이트 2022.03.25 09:08

정동욱의 〈커피 일상〉
커피는 참 이상합니다. 필수영양소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허기를 채워주는 것도 아닌데 왜들 그렇게 마시는 걸까요. 생존을 목적으로 진화한 인간에게 쓴맛은 독, 신맛은 부패한 음식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단맛을 넘어 신맛과 쓴맛까지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죠. 커피가 바로 그렇습니다. 바리스타 정동욱의 ‘커피 일상’에서는 오랜 시간 각인된 본성마저 거스르며 이 검은 액체를 거리낌 없이 사랑하게 된 이유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커피 일상' 1화에서는 아침을 여는 커피, 에스프레소를 소개한다. 사진 정동욱

'커피 일상' 1화에서는 아침을 여는 커피, 에스프레소를 소개한다. 사진 정동욱

“사장님 모시고 이탈리아 한번 가고 싶어요.”

“왜요? 제가 거기서 조금 더 배워야 할까요?”

매일 아침 9시, 젊어서 이탈리아 유학을 하신 59년생 손님은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위해 저희 가게를 찾으십니다. 자리에 앉을 것도 없이 바에 선 채로 커피를 받아 들고는 설탕을 넣고 천천히 저은 뒤 단숨에 커피를 털어 넣죠.

오픈 시간에 맞춰 오시는 손님 덕분에, 저희 가게 매일 아침 첫 세팅은 에스프레소입니다. 바리스타들은 그날그날 바뀌는 기온과 물의 특성을 확인하고 최상의 커피 맛을 내기 위한 세팅을 합니다. 특히 수온과 물의 TDS(Total Dissolved Solid, 총용존 고형량)가 중요합니다. TDS란 물속에 무기물과 유기물이 얼마나 녹아있는지 측정하는 일을 말하죠.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정동욱 대표의 모습. 사진 정동욱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정동욱 대표의 모습. 사진 정동욱

오늘 아침은 기온이 낮네요. 다크 로스팅한 원두 17.5g을 곱게 갈아, 커피 가루를 담는 필터인 포터 필터에 커피를 넣고 가볍게 탬핑을 합니다. 탬핑은 포터 필터에 담긴 분쇄한 커피를 다지는 행위를 말합니다. 로스팅 시간을 길게 한 다크 로스팅 커피는 라이트 로스팅 커피에 비해 산미가 적고 묵직한 편이죠. 네, 오늘 같은 날씨에는 묵직한 커피가 어울릴 것 같네요.

포터 필터에서 떨어지는 갈색의 액체를 유심히 살펴본 후 맛을 봅니다. 아무래도 커피를 분쇄하는 그라인더의 워밍이 덜된 것 같네요. 다시 작업에 들어갑니다. 원두를 갈고 추출하고 맛을 보는 작업을 반복하며 오늘 환경에 맞는 최적의 커피 맛을 낼 추출 시간을 계산합니다. 드디어 손님에게 내어 줄 에스프레소가 완성됐습니다. 커피를 받은 손님은 이제야 제 질문에 답을 줍니다.

“아뇨. 그들이 커피를 얼마나 대충 만드는지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모습. 사진 pexels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모습. 사진 pexels

커피를 아주 곱게 갈아 높은 압력으로 소위 짜내듯이 추출한 진한 커피가 에스프레소입니다. 길어야 30초면 완성될 정도로,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커피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빠르다’라는 의미인 에스프레소(Espresso)가 커피 이름이 되었죠. 물의 양도 적게 들어갑니다. 그러니 맛은 농후하기 그지없죠. 커피에 익숙하지 않다면 즐기기 쉽지 않은 음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진한 액체가 있어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에스프레소를 삼킨 이후에야 비로소 “잠이 깬다”거나 “몸에 온기가 돌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고 표현하죠. 이는 카페인의 약리적 작용의 효과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보다 어떤 의식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으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것이죠. 참 멋지지 않습니까?

에스프레소는 원두와 로스팅 방법에 따라 각기 다른 풍미가 있다. 사진 정동욱

에스프레소는 원두와 로스팅 방법에 따라 각기 다른 풍미가 있다. 사진 정동욱

간혹, 에스프레소는 기계가 만들어주는 커피, 핸드드립 커피는 손으로 내린 고급 커피라는 인식을 마주할 때가 있는데요. 이는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내리는 방법을 고급과 저급으로 구분할 수 없죠. 커피는 어떤 원두를 사용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또 생두를 볶는 과정인 로스팅도 중요하죠. 각기 개성이 다른 원두를 섞어 만든 블렌딩 커피로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도 있지만 한 곳의 원산지에서 나온 원두로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드럽고 달큰한 맛을 내는 다크 로스팅의 블렌딩 커피도 있지만, 향긋한 꽃향기와 오렌지 톤의 산미가 경쾌하게 느껴지는 라이트 로스팅의 싱글 오리진 온두라스 커피 역시 에스프레소로 즐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한 쓴맛 같기만 한 에스프레소지만. 그날의 날씨와 기분, 취향에 따라 매번 다른 아침을 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이런! 의식을 마친 손님의 아침이 드디어 시작된 모양입니다.

“진짜 맛있어요, 사장님. 좋은 하루 되세요.”

DRINK TIP 에스프레소 즐기는 법

에스프레소를 먼저 한 모금 머금어 보세요. 커피의 향미가 입안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끼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잔향이 옅어질 때쯤 다시금 한 모금 머금어 보세요. 이번에는 단 향이 짙게 느껴질 거예요. 잔을 모두 비운 후에는 데미타쎄(demitasse)잔에 남아 있는 단 향을 마지막으로 느껴보세요. 신맛이 좋은 라이트 로스팅 에스프레소의 경우 설탕과 만나면 과일주스처럼 변신합니다. 다크 로스팅 커피는 살짝 녹은 설탕에서 캐러멜과 달고나가 연상되는 단맛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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