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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신변보호 워치까지 등장...막장 펜트하우스 뺨치는 타팰 큰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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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타워팰리스 1차 아파트 대로변에 두 개의 서로 다른 현수막이 나붙었다. 위는 비대위가 입주자대표 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것이고 아래는 입대의 회장이 "횡령은 없다"며 반박하는 내용이다. 조강수 기자

타워팰리스 1차 아파트 대로변에 두 개의 서로 다른 현수막이 나붙었다. 위는 비대위가 입주자대표 회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것이고 아래는 입대의 회장이 "횡령은 없다"며 반박하는 내용이다. 조강수 기자

서울 강남의 랜드마크이자 부(富)의 상징인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아파트 위탁관리업체 선정을 둘러싼 내부 갈등과 대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11~12월 새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입대의)가 관리업체 선정 방식을 공개경쟁입찰로 바꾸자 20년 동안 수의 계약으로 관리 업무를 맡아온 기존 업체가 반발하면서다. 강남 한복판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서 거친 비방과 물리력 행사, 고소·고발 등이 이어지며 막장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따로 없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아파트 관리의 전권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다툼 현장을 찾아가 봤다.

도곡동 타워팰리스에선 지금 무슨 일이 #새 회장, 관리업체 경쟁입찰 전환 #반대 측에선 신임 회장 해임 투표 #물리적 충돌, 고소고발 등 이어져 #한국 명품 아파트의 추락 비판도 # #강남구청, "해임 투표 중대 하자" #추후 법원의 판결에 관심 집중돼 #

기존 관리업체들의 거센 반발
 지난 16일 오후 5시 20분께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 아파트. 차가 거대한 나무의 입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 같다, 는 생각을 하며 지하 6층까지 내려갔다. 방문자 주차장소가 저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주민 우대 및 사생활 배려가 감지됐다. 그런데 1층 주민생활지원센터 문 앞은 딴판이었다.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근무복이 다른 직원 20여 명이 둘로 나뉘어 대치 중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오가는 대화 내용은 대부분 반말이었다.

지난 16일 신규 선정 관리업체가 타워팰리스 1차 아파트 생활지원센터 앞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요구하자 기존 관리업체 직원들이 막아서고 있다.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대치가 끝났다.  조강수 기자

지난 16일 신규 선정 관리업체가 타워팰리스 1차 아파트 생활지원센터 앞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요구하자 기존 관리업체 직원들이 막아서고 있다.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대치가 끝났다. 조강수 기자

  "우리가 새 관리업체로 계약했고 업무 인수·인계를 받으러 온 거야. 업무 방해하지 마. 비켜."
  "합법적으로 계약이 됐다는 증거를 가져와. 그러면 인계해 줄 테니. 불법 입찰·낙찰받고 어딜 들어와."
 고성과 욕설이 이어졌다. 사정을 알아보니 새 출범한 10기 입주자대표회의가 의결·확정한 공개경쟁입찰 방식에 따라 우리관리㈜가 지난달 23일 신규 관리업체로 선정됐는데 업무개시일이 3월 4일이었다. 그러나 첫날부터 기존 관리업체인 타워PMC 직원들이 "불법 계약이라 원천 무효"라며 센터 사무실을 비워주지 않았다. 여러 번 진입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막혔다.
 이날도 우리관리 직원 7~8명이 센터로 들어서자 타워PMC 직원 10여 명이 막아서면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 60대 주민이 양쪽을 나무랐다. "욕하지 마세요. 단지 격 떨어지게. 그리고 우리관리는 오지 말라는데 이번이 벌써 네 번째야. 필요하면 법원 영장하고 판결문 갖고 와요. 정당한 절차를 밟으라고. 나중에 타워PMC와 우리관리를 놓고 주민 투표로 결정할 때 와서 프리젠테이션(PT)하면 되잖아요." 한 여자 주민은 "여기가 놀이터야. 맨날 오게. 주민 설명회 없이 계약한 신정이 나와. 얼굴 좀 보자"라고 소리쳤다. 양측의 대치는 30분 뒤 경찰이 출동하고 우리관리 직원들이 물러난 뒤에야 풀렸다.
 현장 분위기로만 보면 기존 업체와 그에 동조하는 일부 주민들의 기세가 등등했다. 하지만 목소리 크다고 옳은 건 아니다. 양측이 첨예하게 맞설 때는 이권이 걸려 있거나 이해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다반사다. 입주자대표회의 신정이(56·여) 회장을 직접 만나 경위를 물었다.
 신 회장은 새 관리업체가 선정·발표된 다음날(2월 24일) 일부 주민들이 집으로 몰려와 1시간 동안 겁박한 일을 겪은 후 무서워서 호텔로 나와 지낸다고 했다. 경찰에 신변 보호를 요청해 긴급 연락용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았다며 손목을 내보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초 제가 입대의 회장에 취임하고 20여일 뒤 긴급회의를 열어 '주택관리업자 선정을 위한 공개경쟁입찰에 관한 건'을 동대표 6명 중 4명 찬성, 2명 반대로 가결을 공표했다"며 "그에 이어 다음날 입찰 공고를 낸 게 이번 사태의 발단"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달 31일 위탁 계약(2년)이 만료되는 기존 업체가 수의 재계약을 요청했지만 이는 전임 입대의가 지난해 10월 실시한 의견 청취에서 주민의 10% 이상(12.2%, 183세대)이 재계약에 반대하는 결과가 나와 불가능했고 관리규약상 무조건 공개경쟁입찰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민·형사 소송전으로 정면충돌
 그러나 생활지원센터 근무자들과 일부 주민들이 "반대 의사를 표시한 동대표 한 명이 회의가 끝날 무렵 사퇴 의사를 밝히고 퇴장한 만큼 의결 정족수 미달로 무효"라며 반발했다. 유모 센터장은 "신 회장이 입대의 회의록을 가져가 안 내놓고 센터 근무자 임금을 체불한 사유 등으로 회장 해임 투표를 추진함과 동시에 법원에 소송을 냈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주민여론전, 민·형사 소송전으로 정면충돌하면서 불과 3개월 만에 갈등의 골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 팼다.
 특히 이 과정에서 신규 업체에 업무를 인수·인계해야 하는 센터 직원들은 사용하던 컴퓨터 내부 자료를 삭제해 업무를 방해했다는 게 신 회장 측 주장이다. 급조된 '주민비상대책위원회' 사람들과 함께 단지 내 방송실과 승강기 게시판을 장악하고 입대의 회장에 대한 비방 글을 퍼뜨려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회장 해임 투표의 효력을 놓고도 맞섰다. 유 센터장은 "선거관리위원회가 해임 투표 진행을 거부함으로써 간사인 센터장이 2월 3일 해임투표 공고를 강행했고 같은달 10일 투표 결과 주민 59% 투표, 87% 찬성으로 해임이 확정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신 회장은 해임 투표 공고와 함께 회장 직무가 정지된 기간에 3명이 공동관리하던 아파트 관리비 통장의 인감, 비밀번호, OTP를 변경해 110억원의 관리비를 횡령했다"고 말했다.
 반면 신 회장은 선관위가 요건 미비로 반려한 해임절차 소명자료 요청서에 선관위원장 직인을 무단으로 찍어 회장 해임투표를 강행·가결했기 때문에 원천 무효라는 입장이다. 관리비 통장 재발급에 대해서는 "계약기간이 끝난 위탁관리회사와 생활지원센터의 불법적 자금집행을 막기위해 재발급 받은 것이지 횡령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3~25일 민원 실태 조사를 벌인 강남구청은 지난 18일 양측에 총 4가지 사안을 시정하라고 통보했다. 핵심은 해임 투표 관련 부분이다. 구청은 "1개월이라는 해임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선관위가 아니라 참관인과 관리사무소 직원이 선거를 진행한 것은 선거 절차의 중대한 하자"라고 판단, 회장 해임 투표 결과 및 회장 변경 신고서를 반려했다. 이에 대해 센터 측은 "구청의 판단이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남구청은 신 회장을 상대로는 "우리관리를 낙찰자로 선정한 입찰절차는 공동주택관리법상 응찰 회사가 최소 3개사에 미달하는 2개사라서 제한경쟁입찰 요건에 맞지 않고 관리비 통장 인감을 회장 단독으로 변경한 것 역시 법령에 맞지 않는 행위"라고 통보했다. 또 입대위 입찰공고 의결(지난해 12월 21일) 회의록을 회의 후 5일내에 관리주체(센터)에 제출하지 않고 2개월여가 지나 최근 실태조사 기간에 제출한 것은 규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신 회장 측은 "3차 입찰 과정에서 센터가 응찰 서류를 숨기는 등 집요하게 방해해 1개사 서류는 회장이 직접 받고 적법 절차를 모두 거쳤다. 나머지도 일방적 주장인데 강남구청이 편향된 판단을 내려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강남구청이 21일 "회장 해임 투표는 선거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통보한 공문.

강남구청이 21일 "회장 해임 투표는 선거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통보한 공문.

타워팰리스 2차도 공개입찰
 타워팰리스1차 아파트는 4개동 1499세대 규모다. 1~3차 아파트 중 2002년에 가장 먼저 완공됐다. 그때부터 대기업 임원 출신이 설립한 타워PMC가 수의계약으로 1, 2차 관리용역을 맡아왔다. 앞서 재계약 반대라는 주민 의견 수렴 결과는 그동안 쌓인 불만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례로 타워 1차 아파트의 위탁 수수료는 지난해 관리업체를 공개경쟁입찰로 교체한 인근 타워 2차 아파트 대비 4.35배라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41억여원을 더 부담한 셈이다. 지난해엔 단지 내에 고급 스크린 골프장 신설을 추진한다고 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고 한다.
 더욱이 공개입찰로 위탁관리권을 따낸 우리관리는 공동주택관리 업체 순위(한국주택관리협회 2020년 기준) 1위다. 유착 의혹을 제기하기 어려운 구도다. 타워 2차 아파트의 강모(67·여) 입대의 회장은 "우리도 공개경쟁입찰 의결 이후 일부 주민들이 수의계약을 원한다고 몰려와 주민설명회를 열어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타워PMC가 왜 세 차례 진행된 공개경쟁입찰에 응찰하지 않고 입대의 회장 해임에 매달렸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업무 개시일이 17일이 지났지만 신규 업체가 센터를 인수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기존 업체와 비대위 측은 관리비 입금 통장을 따로 개설하고 회장을 새로 뽑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분쟁 해결의 키는 법원이 쥐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1부는 지금까지 제기된 세 건의 관련 소송 가운데 회장 직무정지 및 입찰중지 가처분 신청은 지난 1월 중순 기각했다. "회장 직무를 정지하거나 입찰을 중지할 만큼 긴급한 사유가 없다"며 신 회장 손을 들어줬다. 조만간 입주자대표회의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사건의 결론이 나온다. 판결에는 승복해야 한다.

입주자대표회의를 지지하는 입주민들이 해임 투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입대의 제공

입주자대표회의를 지지하는 입주민들이 해임 투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입대의 제공

 이곳 선관위원장을 지낸 한 입주민은 이렇게 진단했다. "지난 20년간 위탁관리를 도맡아온 업체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들이 파견한 직원들로 이뤄진 생활지원센터도 주민 통제 기구가 된 느낌이다. M·D아파트도 갈등이 심각하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아파트들이 어쩌다 이리 추락한 건지…."  (※이 기사 작성에 사회2팀 채혜선 기자가 참여했습니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