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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에 '동물 탈' 알바도 했다...尹이 픽한 '용인대 출신' MB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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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 정치팀장

서승욱 정치팀장

막 출범한 ‘윤석열 인수위’엔 ‘이명박(MB) 2기’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민주당이 비아냥의 수단으로 삼는 포인트다. 몇 명이라 콕 집어 표현하긴 어렵다. 그런데 얼핏 봐도 MB계가 많기는 많다. 과거 보수 세력은 친MB 아니면, 친박근혜였다. 탄핵으로 엉망이 된 친박계 등용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니 윤 당선인과 MB계의 결합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인수위 내 MB계는 인수위원부터 비서실, 특별고문, 각 부처에서 파견된 전문위원까지 폭넓게 포진돼 있다. 내각이나 대통령실 요직 기용설이 도는 중량급도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MB계 인사는 따로 있다.

당선인 비서실 정무2팀장인 이상휘 전 MB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다. 그의 출신이나 이력은 ‘서오남(서울대·50대·남자)’ ‘서울대 법대 전성시대’로 표현되는 엘리트들의 짱짱함과는 거리가 멀다. 엘리트는 커녕 ‘안 해본 것이 없는 인생 전문가’란 말이 늘 따라붙는다. MB와 같은 포항 출신인 그는 당시만 해도 가난한 고학생이 주로 진학했던 포항수산고(현 포항해양과학고)를 겨우 졸업했다. 이후 용인대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몇 개월간은  “연봉이 좀 세더라”는 이유로 다단계 판매회사에 다녔다. 이후 대기업(동방그룹 비서실)에서 일했지만, 친구 빚보증으로 떠안은 1억여원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평일 낮엔 샐러리맨으로 직장을 다녔고, 주말과 밤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놀이동산에서 동물의 탈을 뒤집어썼고, 나이트클럽과 잔칫집에서 사회도 봤다.

‘인생전문가’ 이상휘 정무팀장 등
윤석열 인수위는 MB맨 전성시대
14년 전 실패 ‘실용의 시대’ 기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이 18일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 현판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수위원에는 이명박(MB)계로 분류되는 이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이 18일 오전 대통령직 인수위 현판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인수위원에는 이명박(MB)계로 분류되는 이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뉴시스]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의 일화도 유명하다. 지역구 관리의 최전선에서 몸이 부서지라 뛰었다. 악바리 근성으로 주말엔 지역구 내 조기축구회를 7곳이나 돌았다. 그 바람에 이가 8개나 빠졌다. MB 청와대에서 춘추관장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뒤에도 ‘기인 열전식’ 삶은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인터넷 매체의 공동대표를 했다. 이 매체의 기자 신분으로 자신이 수장을 맡았던 춘추관에 출입기자로 등록해 출근하기도 했다. 현재 당선인 비서실 정무2팀장의 공식 임무는 ‘정무 지원’이다. 후배 기자가 그에게 정무 지원의 의미를 묻자 “빵과 과자, 의자, 휴지 등 인수위에 지원해야 할 물품이 많다. 그게 정무 지원의 역할이니 매우 바쁘다. 다시는 전화 하지 말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팀장의 이력을 다시 거론하는 건 그와 마찬가지로 2008년~2013년 MB 시대에 인생을 불살랐던 군상들이 윤 당선인 밑에 다시 모였기 때문이다. 그때 이루지 못했던 인생의 꿈을 다시 이루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MB정부와 윤석열 인수위는 단순히 사람들만 닮은 게 아니다. 이념보다 국익과 실용이 우선이라는 생각도 매우 닮아있다. 통합과 국익, 실용을 외치는 현재의 윤 당선인 만큼 14년 전 MB도 적극적이었다. 정부의 이름을 ‘이명박 정부’ 대신 ‘실용 정부’로 부르고 싶어했다. MB는 역대 경선 사상 가장 치열했다는 2007년에도 ‘중도 실용’ 노선으로 ‘정통 보수’를 자처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승부를 겨뤘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녹색성장 등 진보진영의 화두를 과감하게 꺼내 들었다.

의욕적이던 MB의 중도 실용 실험이 좌초한 건 두 가지 결정적 이유 때문이다. 서툰 위기관리, 그리고 내부 권력 투쟁이었다. 지금 시각으론 SF소설 수준인 광우병 괴담과 진보 진영의 새 정부 흔들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첫째다. 실용을 앞세워 늠름하게 시작했던 MB정권의 기반은 정권 초부터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다음은 내부 균열이었다. 인수위 시절부터 싹이 보였던 내부자들의 갈등은 정권 초부터 폭발하고 말았다. ‘청와대 인선 명단을 누가 짤지, 누가 장관 후보를 추천할지’로 시작된 갈등은 결국 정권 핵심부를 두 동강 냈다. 이후 MB정권은 이념적으론 ‘보수냐, 중도냐’로 갈팡질팡했고, 인사로 틀어진 진영 내 분열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압도적 승리를 바탕으로 좌우를 넘는 실용 정권을 세우겠다는 MB맨들의 도전은 이런 시련 속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한국 정치는 진영대결과 내로남불로 얼룩진 암흑기, 박근혜·문재인 정권 9년여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진영이나 이념 싸움으로 허송세월할 수 없는 결정적인 국면을 맞고 있다. MB정권 출범 이후 14년 만에 맞이한 절체절명의 찬스를 놓치지 않도록 윤 당선인과 MB맨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