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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우버기사로 생계 잇는다…7조 주무른 아프간 前장관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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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021년 아프가니스탄 재무장관 시절 할리드 파예드. [사진 트위터]

지난 2021년 아프가니스탄 재무장관 시절 할리드 파예드. [사진 트위터]

나라 잃은 설움이 바로 이런 걸까.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연간 60억 달러(약 7조3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관장하던 한 국가의 재무장관은 이제 미국에서 우버 드라이버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수입은 18일(현지시간) 기준 6시간 동안 150달러를 약간 웃도는 수준. 아프가니스탄의 마지막 재무장관 할리드 파옌다(40)를 이날 워싱턴포스트(WP)가 만났다.

패망 일주일 전 대통령과 갈등 끝 사임 

“미국이나 아프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공허한 느낌이죠.” 파옌다는 WP에 현재의 삶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기 일주일 전 아슈라프 가니 당시 대통령과 갈등 끝에 재무장관직을 사임했다. 자칫 누명을 쓰고 체포될까 봐 서둘러 미국으로 떠날 때만 해도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고 정부가 붕괴할 것이란 상상은 하지 못했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한 지난해 8월 15일 그는 트위터를 통해서 소식을 접했고, 새벽까지 뉴스를 봤다. 다음날 카불의 세계은행 국장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다 끝났군요. 우리는 20년 동안 전 세계의 지원을 받아 아프간에 작동할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처참하게 실패했어요. 우리가 지은 건 부패 위에 지은 종이집이었네요. 우리 정부 사람들은 일말의 기회가 있을 때도 도둑질을 택했어요. 우리는 우리 국민을 배신했습니다.”

몇 시간 후 아프간 정부 동료 장관들의 그룹 채팅에선 가니 대통령과 함께 아프간을 탈출한 최측근들을 향한 성토가 이어졌다. “도망친 사람들의 삶은 저주받을 것”이라는 분노부터 “우리는 여기서 감옥에 있는 것과 같지만, 당신들은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도와주세요”라는 호소까지 나왔다. 파옌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말을 해도) 상처를 후벼 파는 일이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모친 잃고 재무장관직 수락 

미국 워싱턴DC에서 우버 기사로 생계를 잇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마지막 재무장관 할리드 파옌다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했다.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미국 워싱턴DC에서 우버 기사로 생계를 잇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마지막 재무장관 할리드 파옌다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했다.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파옌다는 11살이던 1992년 소련 붕괴 후 아프가니스탄이 내전에 휩싸이자 파키스탄으로 피난을 떠났다. 12년 후 아프간에 돌아왔을 땐 미국의 공언대로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되는 아프간의 장밋빛 미래를 믿었다. 현지의 미국 국제개발처와 세계은행에서 근무한 뒤 2008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처음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프간에서 2016년 재무부 차관을 지낸 후 2019년 미국에서 컨설팅 업체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그가 다시 아프간에 정착한 건 2020년 1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머니를 잃으면서다. 당시 가니 정부와 단기 프로젝트를 위해 아프간에 와있을 때 어머니가 코로나19로 쓰러졌고 중환자실에서 13일을 지냈다. 카불 최고의 공공시설이라는 이 병원은 그러나 200달러 짜리 인공호흡기를 살 돈이 없었다. 어머니를 허무하게 보내야 했다.

어머니를 잃고 몇 주 후 재무장관직 제안을 받았다. 아내와 지인들은 만류했다. 탈레반이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고 미군은 철수하고 있었다. 정부 부패는 극심했고, 암살 위협도 현실이었다. 하지만 병원의 열악한 현실을 못본 척 할 수 없었다. 미약하나마 성공의 가능성을 믿었다. 지금은 그 결정을 후회한다. 그는 “나는 추악한 것들을 너무 많이 봤고 우리는 실패했다. 나는 그 실패의 일부”라며 “아프간의 비참한 삶을 보고 책임감을 느낄 때 어렵다”고 했다.

“美, 한순간 민주주의 포기한 이유 궁금”

할리드 파예드 전 아프가니스탄 재무장관은 15살 첫째부터 2살 막내까지 자녀 넷을 두고 있다. 딸과 함께 한 모습. [사진 트위터]

할리드 파예드 전 아프가니스탄 재무장관은 15살 첫째부터 2살 막내까지 자녀 넷을 두고 있다. 딸과 함께 한 모습. [사진 트위터]

파옌다는 조지타운대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 전쟁 및 국가재건 관련 강의를 한다. 강의료는 한 학기에 2000달러뿐이다. 그는 “학생들이 이 수업을 통해 미국이나 유럽의 원조를 받는 국가의 입장에서 분쟁을 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이 수업은 그에게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아프간의 패망의 의문점을 들여다볼 기회이기도 하다. 아프간의 부정부패가 아프간 관료의 무능 때문인지, 반 탈레반 세력에 대한 미국의 무분별한 지원 때문인지와 같은 고민이다.

그는 특히 미국이 아프간의 선출된 권력을 배제한 채 탈레반에게 국가를 넘겨준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렇게 강조해온 민주주의 가치를 한순간에 포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아프간 중앙은행의 외환 예치금 70억 달러 중 절반을 9ㆍ11테러 생존자 소송 대비용으로 떼어놓은 데 대해서도 “아프간 사람들을 더 절망적인 빈곤에 빠져들게 한다”고 비판했다. WP는 “파옌다에게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미국인의 확신은 가식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는 최근 이라크에서 국제개발 관련 업무를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아내가 “넷이나 되는 아이들은 아빠를 필요로 한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미국에서 자리 잡기 어렵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특별이민비자를 받을 때도 미국 정착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책임감 있는 일원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도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이죠. 우리 아이들이 아프간의 시와 역사, 음악을 경험하면 좋겠지만 가난한 고국의 부담은 갖지 않게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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