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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명운 달렸다"던 부동산 투기 수사…檢합수본 비교해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찰이 주도한 첫 부동산 투기사범 수사의 성적표가 발표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1일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편성해 부동산 투기 특별단속을 추진한 결과 6081명을 수사해 4251명을 송치하고, 6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3기 신도시 투기 의혹 등을 수사하기 위해 지난해 3월 1560여명 규모로 출범했다. 특수본은 총 1506억 6000만원 상당의 투기수익을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했다고 밝혔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해 3월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기자실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와 관련해 브리핑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지난해 3월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기자실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와 관련해 브리핑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구준 국수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원·자치단체장·고위공무원 등 공직자들의 고질적·구조적 비리가 발견됐고, 부동산 투기는 언젠가 처벌된다는 인식을 확고히 한 계기가 됐다”면서도 “수사 결과가 국민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을 알고 있다. 앞으로도 투기에 대해서는 엄정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기사범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부동산 투기사범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 수사 결과.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공직자 관련 873명 단속, 30명 구속

단속 현황을 신분별로 살펴보니 국회의원(33명)·고위공직자(103명)·공무원(371명)·공공기관 임직원(151명) 등 ‘공직자’는 658명(10.9%), 공직자 친·인척이 215명(3.6%), 나머지 5208명(85.5%)은 일반인으로 나타났다. 검찰 송치 인원은 공직자가 327명(구속 28명), 공직자 친·인척이 97명(구속 2명), 일반인 3827명(구속 34명)이었다.

국회의원은 검찰 송치 6명 중 1명 구속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 뉴스1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 뉴스1

국회의원의 경우 전·현직 의원과 가족 33명을 수사해 현직 의원 6명과 가족 8명 등 14명이 송치됐다. 현직 의원 6명 가운데 정찬민(용인갑) 국민의힘 의원이 유일하게 구속 수사를 받다가 지난 8일 보석으로 풀려나 1심 재판 중이다. 나머지 송치된 의원은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승수·한무경·강기윤·배준영 국민의힘 의원이다.

남 본부장은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어떤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 사실관계를 토대로 본인은 물론 가족, 친인척까지 철저히 수사했다”며 “다만 내용을 보면 단순 의혹 제기에 근거해서 고발이 접수됐거나 공소시효가 지난 것들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지방의원·자치단체장·고위공무원·LH 임원 등 고위공직자(103명)는 구속 6명을 포함해 42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3기 신도시 투기에 연루된 LH 전·현직 직원은 98명이 수사 대상에 올라 61명이 송치됐고, 이 중 10명이 구속됐다.

내부정보 이용보다 농지투기, 주택투기 적발 많아 

지난해 3월 3일 오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지난해 3월 3일 오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의 모습. 뉴스1

단속 유형을 따져보면 특수본 출범 계기가 됐던 내부정보 부정이용 적발은 595명(9.8%)에 그쳤다. 농지투기가 1693명(27.8%)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주택투기 808명(13.3%), 내부정보 부정이용, 기획부동산 698명(11.5%) 순이었다. 남 본부장은 “내부정보 이용은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입증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2기 신도시 땐 1만여 명 적발, 수백명 구속

정부가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부동산 투기사범 적발에 나선 건 세 번째다. 앞선 1·2기 신도시 때와 달리 이번엔 경찰이 수사를 주도했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조정에 따라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범죄 등 6대 범죄로 제한되면서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특수본 수사를 놓고 “경찰의 명운이 달린 엄중한 시기”라며 “대형·중요 사건의 수사 주체는 ‘경찰’이라는 점을 확고히 인식시켜나가자”(2021년 3월 26일)고 강조했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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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7월 11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 부동산투기사범 단속전담 부장검사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가 시작되기 상의를 벗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05년 7월 11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 부동산투기사범 단속전담 부장검사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가 시작되기 상의를 벗고 있다. 중앙포토

신도시 개발 때마다 대대적인 부동산 관련 비리 수사가 벌어지면서 20년 안팎의 주기가 형성됐다. 1989년부터 일산과 분당 등 1기 신도시를 만든 노태우 정부는 1990년 2월 검찰 주도의 합동수사본부(합수부)를 만들어 1만3000여 명을 적발하고 987명을 구속했다. 당시 금품수수와 문서위조 혐의로 구속된 공직자는 131명이었다. 2003년부터 김포와 검단, 동탄 등 2기 신도시 건설에 착수한 노무현 정부는 15년 만인 2005년 7월 다시 검찰에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한다. 당시 수사에서 1만5558명을 입건하고 455명이 구속기소 됐다. 연루된 공직자는 27명이었고 이 중 7명이 구속됐다.

남 본부장은 “2기 신도시 수사 당시 검거 인원은 1만여 명이 넘는데 공직자는 27명이고, 일반인이 다수였다”며 “2기 신도시와 비교하면 이번에 공직자가 24배 더 많다”고 말했다. 이번에 부동산 투기수사에 연루된 공직자가 658명이라 그때(27명)보다 많다는 설명이다. 당시 합수본 수사 기간은 6개월(2005년 7월~12월)로 이번보다 짧았지만 적발 건수는 2배를 넘었다.

한편, 경찰은 이날부터 특수본을 상시단속 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대규모 개발지역을 관할하는 경찰서에서 투기 범죄를 집중 단속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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