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00만 학생 시청한 '평화의 수호자'…러 학교 파고든 'Z교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 학교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Z 교육'이 파고들고 있다. 'Z'는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의 표식으로 러시아의 새로운 상징물로 떠올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림반도 합병 8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러시아를 위하여'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8일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림반도 합병 8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러시아를 위하여'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 학생 500만명 '애국 교육' 시행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러시아 전역 학교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특별 '애국 교육'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 영상 혹은 슬라이드쇼 형식의 수업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역설한 우크라이나 역사 등을 담았다. 세르게이 크라브초프 러시아 교육부 장관은 지난 3일 500만명 이상의 학생들이 '평화의 수호자'라는 수업을 이수했다고 말했다.

WP가 수업 자료를 확인한 결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강조하는 수정주의 이론이 담겨 있었다. "우크라이나는 실제로 국가로 존재한 적이 없는 말로로시야(소 러시아)로 불리는 작은 땅이었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만든 것이고 크림반도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 우연히 우크라이나에 넘어갔다"는 내용 등이다.

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나치라 비방하는 푸틴 대통령의 주장을 반영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은 나치와 협력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지난 3일 애국 교육으로 평화의 수호자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러시아 키즐랴르 직업교육대학교 학생들. kppk_kiberdruzhina 인스타그램 캡처

지난 3일 애국 교육으로 평화의 수호자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러시아 키즐랴르 직업교육대학교 학생들. kppk_kiberdruzhina 인스타그램 캡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애국 수업이 이뤄졌다는 인증샷이 올라왔다. 러시아 다게스탄공화국의 키즐랴르 직업교육대학의 한 교사는 인스타그램에 학생들이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모습을 올리며, "러시아 전역에서 이뤄진 공개 온라인 수업이 있었다. 1000여명의 학생이 세계의 수호자에 대한 영상을 시청했다. 우리 군이 자랑스럽고 푸틴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했다.
러시아는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서구 SNS를 금지했지만, 일부는 가상사설망(VPN)에 접속해 이용 중이다.

초등생도 'Z' 표식 들고 러시아군 지지 

러시아는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등 전 학생들에게 이런 애국 교육을 하면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고 있다. SNS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Z 표식을 든 어린 학생들 사진이 많다. 러시아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메이스키의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한 교사가 SNS에 Z 표식을 든 학생들 사진을 올리며 "러시아군을 지원하는 우리 반 학생들의 플래시몹"이라고 했다.

러시아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메이스키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Z 모양으로 앉아있다. 인스타그램 my_mayskiy_캡처

러시아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메이스키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Z 모양으로 앉아있다. 인스타그램 my_mayskiy_캡처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의미로 Z 표시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탕에도 Z표시가 나왔다. 트위터 캡처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의미로 Z 표시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탕에도 Z표시가 나왔다. 트위터 캡처

러시아 정부는 지난 18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8주년을 기념하는 '크림의 봄' 행사에 학생들을 동원했다. 러시아 남부 흑해 인근 크라스노다르에 사는 학부모 이고르코스틴은 WP와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딸에게 '18일 행사를 위해 따뜻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어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알고 보니 크림반도 합병 기념행사였다. 코스틴이 공개한 영상에는 수십명의 학생이 행사에서 러시아 국기를 들고 행진했으며, 애국의 상징인 성 게오르기우스의 리본에 Z가 새겨진 옷을 입은 채 전쟁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학부모들은 교육 당국의 처사가 못마땅하지만, 항의는 어렵다고 했다. 코스틴은 "크림반도 합병 행사에 딸을 보내지 않았다. 딸 학급에선 학생 22명 중 5명만 참석했다"며 "그런데 다들 겁이 나서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앞서 크라브초프 장관은 학교가 서방에 맞서 정보전과 심리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싸움의 중심이라고 말해왔다. WP도 "교실이 애국심을 강요하는 푸틴 대통령의 또 다른 전선"이라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68%가 우크라 전쟁 찬성 

한 러시아 여성이 지난 18일 Z표시가 있는 차량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 러시아 여성이 지난 18일 Z표시가 있는 차량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에선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사람이 다수다. 최근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 68%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 질문에 '전쟁' '침공'이라는 단어는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러시아 정부의 특수 군사작전을 찬성하는가"라고 물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7일 인구 4만3000여명의 러시아 소도시 토크조크에서 열린 전쟁 지지 시위를 소개하면서 "지방에 사는 러시아인들이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고 서방을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푸틴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러시아 고위층의 움직임이 포착됐다고 20일 전했다. 푸틴 대통령 후임자로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이 거론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쿠데타 등의 움직임이 실제로 일어날지는 미지수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알렉산드르 가부예프 선임 연구원은 "국제사회 선전전에는 러시아가 패했지만, 국내에선 꽤 성공하고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