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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석열체’와 ‘석열이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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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심새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심새롬 정치팀 기자

지난주 젊은 인수위 기자들이 순간 ‘말잇못’(말을 잇지 못)한 ‘석열체’ 해프닝이 있었다. 18일 현판식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실이 “백드롭의 글씨는 윤석열 당선인이 직접 자필로 쓴 ‘석열체’임을 알려드린다”고 공지했다. ‘겸손하게 국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라고 쓴 회의실 뒷배경 문구가 윤 당선인 자필임을 강조했는데, 굳이 필체 이름까지 지어 발표한 게 겸손 의지와 달리 ‘좀 과하다’ 싶었다.

인수위 측은 “‘겸손’위의 파란색 원은 바다를 의미하고, ‘국민’위의 붉은색 원은 태양을 의미한다. ‘겸손의 바다’를 넘어 국민 곁에 서서 ‘태양처럼 대한민국을 빛낼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기사에 ‘자축은 적당히 하라’, ‘아부가 지나치다’ 등 인수위 구성원들의 태도를 지적하는 댓글이 달렸다. 상대 진영은 뒤에서 “북한 김일성의 생전 필체를 ‘백두체’로 이름지어 부르는 것과 뭐가 다른가”(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집무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알아본 사정은 이렇다.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지난 2월 초 국민의힘이 선거운동 활용 목적으로 후보 자필을 본떠 만든 ‘윤석열체’ 디지털 폰트를 제작했다. 당시 후보였던 당선인이 한글뿐 아니라 알파벳, 숫자, 부호를 커다란 종이에 수십장 적어 실무팀에 제출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든 폰트를 인수위가 이어 쓴다는 점을 알리려다 오해가 빚어졌다. 주변 ‘윤석열 마크맨’들도 다 기억하지 못한 석열체 배경 설명이 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 입문 전부터 윤 당선인은 진솔하고 통 큰 면모가 강점이었다.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이렇게 된 마당에, 사실대로 말씀드리겠다”며 거침없이 폭로한 모습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후보 시절 예능에서 빵칼로 계란말이를 썰며 “이렇게 해야 (부인에게) 안 쫓겨나고 살지 않겠나”라고 너털웃음을 지었을 때, “사는 거 다 똑같애~”하던 방송인 김동현씨 반응이 다수 유권자 마음과 같았다.

친근하고 인간적인 ‘석열이형’이 당선됐기에, 앞으로도 자칫 권위적으로 비출 수 있는 부분을 두번 세번 조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 당선인이 사정기관 정점에 섰던 게 불과 1년여 전이다. 조금만 불통해도 국민은 대통령이 위력적·관료적이라는 인상을 전보다 더 쉽게 받을지 모른다.

통의동 첫 출근날 꼬리곰탕(14일)을 시작으로 짬뽕(15일)→김치찌개(16일)→피자(17일)→육개장(18일)을 연달아 어울려 먹는 모습에서 윤 당선인의 미식가 면모가 여전함을 느꼈다. 음식을 사랑하는 대통령을 다룬 프랑스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에는 대통령(장 도르메송)이 요리사(카트린 프로)에게 “가장 프랑스적인,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다”고 주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음식도 정치도 본연의 장점에 충실한 게 오래 사랑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