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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일만의 득점포, '진품' 이승우가 돌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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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가 K리그 데뷔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우가 K리그 데뷔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프로축구 K리그1 수원FC와 대구FC의 맞대결이 열린 수원종합운동장. 전반 12분 수원 공격수 이승우(24)의 동점골이 터지자 관중석 한켠에서 지켜보던 어머니 최순영 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벨기에 프로축구 신트트라위던 진출 후 2년 여 동안 석연찮은 이유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그래서 K리그로 무대를 옮겨 새 출발한 아들의 데뷔 골에 감정이 북받친 탓이다.

어머니가 연신 눈물을 훔치는 동안 흥겨운 춤사위로 득점포를 자축한 이승우는 최 씨가 자리한 관중석 방면으로 손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아들의 재기를 믿고 묵묵히 뒷바라지한 어머니에 대한 무언의 감사 표시였다.

득점 직후 관중석의 가족을 향해 하트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이승우. [연합뉴스]

득점 직후 관중석의 가족을 향해 하트 세리머니를 선보이는 이승우. [연합뉴스]

이승우가 부활 드라마 시동을 걸었다. 올 시즌 6번째 출장이자 2번째 선발 출장한 경기에서 K리그 마수걸이 골을 터뜨렸다. 신트트라위던 소속이던 2020년 9월 이후 553일 만에 다시 맛 본 득점포. 새 소속팀 수원FC의 첫 홈경기라 득점포의 의미도 남달랐다.

골 장면은 한때 ‘코리언 메시’라 불리던 이승우의 재능을 총망라한 하이라이트 영상 같았다. 반 박자 빠른 스타트로 상대 수비 라인의 틈새를 허문 뒤 안정적인 드리블로 페널티 박스 정면을 파고들었다. 무게 중심을 낮춰 상대 수비수 두 명의 견제를 버텨내면서 정확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 네트를 흔들었다.

경기 후 이승우는 “골이 필요한 시점에 득점으로 팀에 보탬이 돼 기쁘다”면서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늘 힘이 되어 준 가족이 가장 먼저 떠올라 (손 하트로) 감사의 표시를 했다”고 말했다.

프로축구 K리그 수원FC 공격수 이승우(왼쪽)와 어머니 최순영 씨. [사진 이승우 인스타그램]

프로축구 K리그 수원FC 공격수 이승우(왼쪽)와 어머니 최순영 씨. [사진 이승우 인스타그램]

0-1로 끌려가다 동점을 만든 이승우의 득점포 이후 양 팀 분위기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7골을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홈 팀 수원이 4-3으로 이겼다. 시즌 2승(1무3패)째를 거두며 승점을 7점으로, 순위를 8위로 끌어올렸다.

이승우는 지난해 말 신트트라위던과 계약을 해지하고 고향팀 수원FC 손을 잡았다. 유럽 내 다른 구단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K리그행을 결정한 건 ‘뛰어야 산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그는 수원FC와 계약 직후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벨기에 시절 연습경기에서 멀티 골을 넣어도 다음 리그 경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유를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나만큼이나 동료들이 억울해했다”면서 “고향 팀에서 감독님·동료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며 원 없이 뛰고 싶었다”고 했다.

친숙하면서도 낯선 K리그에 적응하는 과정에 김도균 수원 감독도 든든한 지원군으로 참여했다.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사는 이승우와 클럽하우스 출퇴근을 매일 함께 하며 ‘카풀 과외’에 나섰다. 전술부터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며 스승이자 축구 선배로 조언을 건넸다. 이승우는 당초 5월 가까이 되어야 정상 컨디션을 되찾을 거라던 예상을 뛰어넘어 시즌 초반 가파른 상승세를 그리며 김 감독을 흐뭇하게 했다.

수원FC 공격수 이승우(왼쪽)와 김도균 감독은 매일 클럽하우스 출퇴근을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눈다. [뉴스1]

수원FC 공격수 이승우(왼쪽)와 김도균 감독은 매일 클럽하우스 출퇴근을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눈다. [뉴스1]

이승우는 “감독님과 함께 출퇴근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면서 “오랜만에 풀타임을 소화해 힘들었지만, 믿고 기회를 주신 만큼 죽기살기로 뛰었다”며 미소지었다.

이승우의 조기 부활은 인기 재점화를 위해 노력 중인 K리그에 호재다. 시즌 초반 수원FC가 원정 5연전을 치르는 동안 상대 팀 홈 팬들도 이승우의 플레이에는 뜨겁게 반응했다. 패스하거나 드리블할 때, 슈팅을 시도할 때 따뜻한 박수로 격려했다.

득점 직전 수비수와 경합하며 슈팅 찬스를 만들어내는 이승우. [연합뉴스]

득점 직전 수비수와 경합하며 슈팅 찬스를 만들어내는 이승우. [연합뉴스]

데뷔골의 상승세를 잘 이어간다면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조기 확정한 축구대표팀에 건전한 자극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지난 13일 상대 팀 선수로 이승우를 지켜 본 최용수 강원FC 감독은 “내 눈으로 (이승우의) 경쟁력을 확인했다. 아직 100%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실력은 누가 훔쳐가는 게 아니다“면서 “머지않아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 같다. 한국 축구의 소중한 자산으로 기대한다”고 칭찬했다.

알렉산더 가마 대구 감독도 “볼을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영리하게 찬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우리 수비수들에게 위협적인 상대였다”고 이승우를 높이 평가했다.

수원=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이승우(가운데)는 니실라를 비롯해 동료 선수들의 득점포가 나올 때마다 앞장서서 환호했다. [연합뉴스]

이승우(가운데)는 니실라를 비롯해 동료 선수들의 득점포가 나올 때마다 앞장서서 환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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