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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물세례, 어깨빵도 OK"…1위 달리는 SK 감독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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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프로농구 SK의 포워드 최준용(왼쪽)이 500ml 생수병으로 물 세례를 퍼붓자, 전희철 감독이 빨간우산으로 막으며 끙끙 댔다. 올 시즌 중계방송 인터뷰를 하던 전 감독에게 최준용이 물폭탄을 퍼부어 화제가 됐는데, 그 모습을 재현 한거다. 김현동 기자

1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프로농구 SK의 포워드 최준용(왼쪽)이 500ml 생수병으로 물 세례를 퍼붓자, 전희철 감독이 빨간우산으로 막으며 끙끙 댔다. 올 시즌 중계방송 인터뷰를 하던 전 감독에게 최준용이 물폭탄을 퍼부어 화제가 됐는데, 그 모습을 재현 한거다. 김현동 기자

“와~ (최)준용아. 물을 마지막까지 짜내서 뿌리기냐?”

“감독님! 우산으로는 못 막아요. 다음번에는 우비 입고 오세요. 하하.”

1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프로농구 서울 SK의 포워드 최준용(28)이 500ml 생수병으로 물 세례를 퍼붓자, 전희철(49) 감독이 빨간우산으로 막으며 끙끙 댔다. 올 시즌 중계방송 인터뷰를 하던 전 감독에게 최준용이 ‘물폭탄’을 퍼부어 화제가 됐는데 그 모습을 재현 한거다. 프로스포츠에서 수훈 선수에게 축하 물세례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지만, 선수가 감독에게 두 번이나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이례적이다. 최준용은 생수병을 전 감독의 목덜미에 꼽고, 우산 안으로 물을 뿌리기도 했다.

경기 후 선수들에게 물세례를 당하는 전희철 감독. [사진 KBL]

경기 후 선수들에게 물세례를 당하는 전희철 감독. [사진 KBL]

전 감독이 최준용을 째려보며 “너랑 내가 ‘톰과 제리’면 누가 톰이냐”고 물으니, 최준용은 “감독님이 매번 당하시니까, 제가 제리 아닐까요”라며 웃었다. 전 감독은 최준용에게 헤드락을 걸고 꿀밤 때리는 시늉을 했다. 전 감독은 “감독들의 가치관의 차이다. 난 코트 안에서는 수직 관계지만, 일이 끝난 다음에는 수평 관계가 맞다고 생각한다. 선수가 코트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장난을 안 받아줄 이유가 없다”고 했다.

1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프로농구 SK의 포워드 최준용(왼쪽)이 500ml 생수병으로 물 세례를 퍼붓자, 전희철 감독이 빨간우산으로 막으며 끙끙 댔다. 김현동 기자

1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프로농구 SK의 포워드 최준용(왼쪽)이 500ml 생수병으로 물 세례를 퍼붓자, 전희철 감독이 빨간우산으로 막으며 끙끙 댔다. 김현동 기자

SK는 올 시즌 38승11패로 1위다. 2위 수원 KT에 5.5게임 앞서 우승을 눈 앞에 뒀다. 득점(85.8점)과 리바운드(39.2개)는 물론 경기당 속공이 6.9개(338개)로 압도적 1위다. 2위 고양 오리온(4.9개)보다 2개 더 많다. 5G(5세대 이동통신)급 스피드 농구다. 전 감독이 선수들과 형동생처럼 지내는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자, 공을 잡으면 최준용과 김선형, 안영준, 자밀 워니 등 5명이 함께 신나게 달린 결과다.

최준용이 경기 중 전 감독에게 달려가 몸으로 ‘하이파이브’하는 이른바 ‘어깨빵 사건’도 있었다. 최준용은 “팀에 에너지를 불어 넣고 싶어 소리를 질렀는데 마침 감독님이 보여 어깨로 툭 쳤다”고 했다. 전 감독은 “갑자기 얘가 달려오길래 ‘설마 나한테 오는 건 아니겠지’ 생각했다. 이길 수 있다면 내 어깨쯤은 기꺼이 내줄 수 있다”며 웃었다.

전희철 감독이 최준용에게 헤드락을 걸고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김현동 기자

전희철 감독이 최준용에게 헤드락을 걸고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김현동 기자

물론 전 감독이 타임아웃 때 ‘버럭’하며 호통 칠 때도 있다. 아예 침묵하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전 감독은 “올 시즌 목표가 ‘가비지 타임(20점 차로 벌어져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을 주지 말자다. 선수들이 영혼이 나간 채 경기를 놔버릴 것 같아서 이런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최준용은 “감독님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바짝 들었다. 선수 누구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 감독은 올 시즌 처음 감독을 맡았다. SK에서 코치만 10년간 하며 내공이 쌓였다. 최준용은 “작년에 감독님과 ‘롤(리그오브레전드, LOL)’을 같이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얼리 어답터’로 유명한 전 감독은 미국 연수 시절에 배운 프로그램으로 공격 패턴을 만들어 선수들에게 보여준다.

지난달 SK가 12연승을 달리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전 감독에게 직접 전화해 격려했다. 전 감독은 “회장님이 ‘행복한 농구를 해달라’고 당부하셨다”고 했다. 최준용은 “회장님 나중에 저랑도 통화해주세요. 본관이 같은 최씨인지 궁금해요”라고 했다.

지난 시즌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던 2m 장신 포워드 최준용은 올 시즌 평균득점이 두 배(8.1점→16점)로 늘었다. 최준용과 팀 동료 김선형이 강력한 MVP(최우수선수) 후보다. 둘 중 한 명만 꼽아달라고 하자 전 감독은 “나도 딸이 둘인데, 첫째 딸이 좋냐, 둘째 딸이 좋냐는 질문과 같다”고 했다. 최준용은 “저라고 적어주세요”라고 장난치더니 “제가 MVP 욕심이 있었다면 이렇게 농구 안하고 패스도 안 했을 거다. 감독님 주문을 따르고 선수들과 케미(스트리)를 맞추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프로농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최준용은 소셜미디어에 ‘희생자 한 명 나와야 대처하실 거에요?’란 글로 KBL(프로농구연맹)을 저격했다. 최준용은 “1위 팀이 목소리를 내야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상대팀 선수들 얼굴이 힘들어 보였다. 단 한 명도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정당당하게 진정한 승부를 겨루고 싶었다”고 했다. 전 감독은 “글을 잘 올렸다고 했다”고 거들었다.

전희철 감독이 최준용에게 헤드락을 걸고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김현동 기자

전희철 감독이 최준용에게 헤드락을 걸고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김현동 기자

SK는 안양 KGC인삼공사에 상대 전적 1승4패로 열세다. 전 감독은 “선수 탓 할 생각은 없고 내 능력 부족이다. KGC는 3점슛 30개 이상을 쏘려는 팀이다 보니 리바운드가 멀리 튄다. 우리 장점인 리바운드의 이점을 살리기 어렵다. 원패스와 몰아치기 등 우리가 잘하는 걸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최준용은 “플레이오프에서는 객기가 아니라 자신 있다”고 했다. 손가락과 햄스트링를 다친 김선형과 워니는 정규리그 막판에 복귀 예정이다.

전 감독은 “저도 동양 선수 시절 할아버지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뛴 적이 있는데, 준용이도 작년 12월에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 상을 당하고도 경기에 출전하겠다고 하더라”며 고마워했다. 최준용은 “할머니를 모신 곳(마산)에 못 가겠더라.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뒤 돌아가신 할머니께 트로피를 바치겠다”고 했다.

분위기가 가라앉자 전 감독은 “준용아. 근데 너 우승하면 정수기 물통 뽑아서 나한테 물 뿌릴거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최준용은 “라커룸에서 샴페인 뿌려야죠. 감독님 만취하시게”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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