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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묵은 사람 천지 삐까리다" 특허까지 낸 하동 토속음식 [e슐랭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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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경남 하동군 하동읍 섬진강재첩횟집. 봄이면 매화와 벚꽃으로 뒤덮이는 하동 십리벚꽃길 중간쯤에 있는 식당에 손님들이 붐볐다. 이곳은 사실상 하동에서만 먹을 수 있는 참게가리장국을 처음으로 음식화해 특허까지 받았다. 원래 하동은 재첩국으로 유명하지만 이곳 지역민들에게는 재첩국만큼이나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토속 음식이 참게가리장국이다.

하동 참게가리장국. 위성욱 기자

하동 참게가리장국. 위성욱 기자

참게가리장국은 섬진강변 사람들이 어린시절 강가나 논두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참게를 잡아 밀가루 등과 섞어 죽처럼 쑤어서 먹었던 게 원조다. 가리장국의 ‘가리’는 ‘가루’의 이곳 사투리다. 섬진강횟집 대표 양해영(65)씨가 2000년대 초 어린시절 추억을 토대로 음식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양씨는 “옛날에 아버지가 논두렁에서 큰 참게 서너 마리를 잡아 오시면 절구통에 갈아서 밀가루와 섞어 죽처럼 만들어 먹었다”며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어서 참게를 그냥 먹으면 많이 못 먹으니 죽같이 만들어 온 가족이 함께 배불리 먹었던 추억을 토대로 참게가리장국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동 섬진강횟집 모습. 위성욱 기자

하동 섬진강횟집 모습. 위성욱 기자

하동 섬진강횟집 대표 양해영씨. 위성욱 기자

하동 섬진강횟집 대표 양해영씨. 위성욱 기자

양씨는 원래 횟집으로 시작했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는 여러 곳의 자문 등을 받아 참게가리장국을 주로 팔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특허도 받았다.

양씨가 공개한 참게가리장국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갓 잡아 온 참게를 세척하고 삶은 뒤 건조기에서 일정한 온도로 60시간 가까이 말린다. 이후 참게를 통째로 분쇄 기계에 넣어 분말처럼 만들어 보관한 뒤 손님이 올 때마다 들깨·밀가루·검은콩가루 등 8가지 곡물가루와 섞어 죽으로 만든다.

이날 직접 먹어본 참게가리장국은 겉으로만 봐서는 참게로 만든 음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한입 먹어보니 죽처럼 걸쭉한 식감이 부드럽게 혀를 감싸 숟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참게 특유의 구수한 향과 함께 여러 가지 곡물이 잘 어우러진 맛이었다.

이날 식당을 찾은 진주상공회의소 이영춘(64) 회장은 “참게가리장국은 처음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오늘도 친구 사업장에 갔다가 맛있는 가리장국 먹으러 가자고 해서 이곳에 왔다”며 “하동 사람은 아니지만 5~6년 전에 우연히 가리장국을 먹고 고향의 맛 같은 음식에 반해 자주 먹으러 온다”고 했다.

이 회장의 친구인 이승복(64)씨는 “술 먹고 다음 날 속풀이 국으로도 제격”이라며 “과음한 날 깨고 나면 이 음식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도 한번 맛보고 나면 남다른 반응들을 보인다. 김정미(29·여·창원시)씨는 “지인 분이 추천하셔서 왔는데 이름만 듣고는 무슨 음식인지 전혀 예상을 못 했다”며 “찜 형태로 되어 있는데 맛은 되게 부드럽고 버섯 종류도 다양하게 들어가 있어 건강식으로도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동 참게가리장국. 위성욱 기자

하동 참게가리장국. 위성욱 기자

하동 참게 사진. 사진 하동군

하동 참게 사진. 사진 하동군

지금은 특별한 맛을 가진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가리장국이 음식화되기까지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양씨는 “참게를 절구통이나 맷돌 등에 넣고 갈았는데 완전히 분쇄되지 않아 이 사이에 끼이는 문제 등이 발생했다”며 “고심 끝에 부드러운 분말로 분쇄할 수 있는 기계를 찾아내면서 결국 음식화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음식화를 하는 초반에는 재료 배합이 잘못돼 창호지 등을 붙일 때 쓰는 풀 냄새가 나서 이것을 없애는데도 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참게가리장국은 양씨가 개발했지만, 레시피는 지역 상인들에게 공유됐다. 현재 십리벚꽃길 양옆의 수백개의 식당 상당수가 참게가리장국을 만들어 팔고 있다.

하동 참게는 둥근 사각형 모양으로 등 쪽은 녹색을 띤 갈색, 배 쪽은 흰색이다. 집게발에는 짧고 부드러운 털이 빽빽하게 나 있다. 80~90년대까지만 해도 하동에서는 강이나 냇가, 논두렁에서 기어 다니는 게를 손으로 잡았다고 한다. 또 계곡 등에서는 바위 속에 숨은 게를 갈대 끝에 지렁이를 빠지지 않게 꿴 다음 구멍에 넣고 바깥쪽으로 유인한 뒤 게가 빠져나오면 손으로 덮쳐서 잡았다. 참게들이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 가을 저녁 횃불을 들고 나가 줄지어 이동하는 참게를 잡기도 했다.

최근에는 주로 통발을 이용한다. 통발을 강바닥에 내려놓은 뒤 다음날 배를 타고 돌아다니며 통발에 잡힌 게를 수거하는 방식이다. 통발에는 주로 돼지비계 등을 넣어 참게를 유인한다. 하지만 최근에 개체 수가 줄면서 하동군이 수년 전부터 어린 참게를 방생하는 등 보존 활동도 하고 있다.

하동 참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경연 하동군 문화관광해설사. 위성욱 기자

하동 참게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경연 하동군 문화관광해설사. 위성욱 기자

김경연(70) 하동군 문화관광해설사(한국문화관광해설사 중앙협의회장)는 “하동 참게는 배고픈 시절 강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밥 대신 밀가루를 섞어 죽으로 만들어 생계를 잇게 해준 귀한 음식 재료였다”며 “하동에서는 재첩과 함께 참게장도 많이 만들어 먹는데 하동에 오면 이 음식들을 꼭 먹어보고 가라고 소개를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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