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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최대 적은 러시아에 있다, 4월 징집 앞두고 도망친 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반전 시위를 벌인 청년이 러시아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반전 시위를 벌인 청년이 러시아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격렬한 저항에 고전 중인 러시아군이 또 다른 악재를 겪고 있다. 전쟁이 싫어 징집에 불응하는 러시아의 일부 20대 청년들이다. 대규모 징집을 앞두고 몰래 달아나거나 이미 투입된 징집병들마저 군사 작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크라인은 조국 위해 목숨 바치지만, 우리는 왜?”

지난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에 붙잡힌 러시아 군인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AP=연합뉴스

지난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우크라이나에 붙잡힌 러시아 군인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A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알자지라는 “징병을 두려워하는 ‘반전(反戰)’ 러시아 청년들이 인접 국가들로 떠나고 있다”면서 우즈베키스탄과 조지아 등으로 떠나는 러시아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5일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한 러시아 청년 알리는 “계엄령이 도입되고 국경이 폐쇄된다는 소문을 듣고 떠나기로 결심했다”며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21세기에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엔 동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침공 3일 만에 러시아를 떠난 조니백 역시 징집을 피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난 러시아인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텔레그램 채널 등을 통해 러시아군이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총동원령이 내려질 수 있다고 생각해 서둘러 출국했다”며 “우크라이나인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납득할 수 없는 원칙 때문에 목숨을 바치는 꼴이다”고 푸념했다.

이들이 도피를 서두르는 것은 오는 4월 1일 대규모 징집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에 따르면 러시아는 계약을 통한 모병제와 1년 복무의 징병제를 동시 운용하는데 매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징집을 한다.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했던 17만 병력을 100% 가까이 투입했지만 전쟁이 '속전속결' 되지 않으면서 오는 4월 징병 대상인 청년들 일부가 '선수'를 치는 모양새다. 징집 거부 외에 서방의 제재 등을 우려해 침공 이후 열흘간 최소 20만 명의 러시아인이 출국했다는 분석(콘스탄틴 소닌 시카고대 경제학자)도 나왔다.

‘싸우기 싫은 20대’… 발목잡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징집병들이 러시아군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져 군사 작전에 차질을 빚고 부족한 동기부여가 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설명이다.

최근 우크라이나에 붙잡힌 어린 러시아 군인이 빵을 먹으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트위터 캡처

최근 우크라이나에 붙잡힌 어린 러시아 군인이 빵을 먹으며 눈물을 보이고 있다. 트위터 캡처

미국 싱크탱크 전량예산평가센터(CSBA)의 연구원 캐서린 엘긴 박사는 폴리티코에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러시아군의 25%가 징집병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은 비교적 전문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병참 업무를 하고 있는데, 개전 초기 병참에 차질을 빚어 러시아군이 고전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지난 1일 워싱턴포스트(WP)도 러시아 징집병 현황을 전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징집병은 주로 군수물자 지원과 식량·연료 보급 업무에 많이 배치돼있는데, 기본 훈련이 4개월에 불과하다고 한다. WP는 “병참 파트에서 근무하는 징집병들의 문제가 최전방 병력의 무력화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징집병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와 부족한 동기 부여가 군의 사기 저하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WP는 “러시아군의 70%를 차지하는 직업군인과 나머지 징집병의 경제적 사회적 격차는 크다. 한 달에 25달러(약3만원)도 받지 못하는 징집병이 겪는 불평등은 부대의 결속력을 떨어뜨린다”면서 “러시아군의 고전은 하드웨어 문제뿐만 아니라 사기 저하와도 직결돼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의 SNS에는 투항하거나 포로로 붙잡힌 러시아의 어린 군인들의 이야기가 자주 올라온다. 이들은 "훈련인 줄 알고 속아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향한 원성을 쏟아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4일 러시아 징집병들을 향해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나. 생존할 기회를 주겠다. 군대에서 대우받지 못했겠지만, 항복하면 우리가 대우해주겠다”며 투항을 독려하기도 했다.

"내부 역풍으로 이어질 수도"

러시아의 대표적 비정부단체인 군인어머니회.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철수와 징집병에 대한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창설됐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의 대표적 비정부단체인 군인어머니회.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철수와 징집병에 대한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창설됐다. AP=연합뉴스

러시아인의 징병 문제가 국내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엘긴 박사는 “러시아는 과거 소련 시절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대중의 반발을 우려해 징집병의 피해 실태를 숨겼고, 아들을 잃은 러시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면서 “만약 러시아가 추가로 징집병을 투입한다면 결국 러시아인들은 분노할 것이고, 전쟁 비용은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애버리스트위스대의 러시아 정치 전문가 제니퍼 마더스는 ABC뉴스에 “1980년대 평범한 소련인들이 정권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계기는 그들의 아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많이 사망했기 때문이다”면서 “현재 러시아 부모들은 징집된 그들의 자식과 연락이 거의 닿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들의 불안감은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퍼질 수 있고, 하루아침에 일어나진 않겠지만 그건 결국 러시아군을 크게 약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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