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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김총리 말에 2년 참았다…피투성이 아들 보낸 아빠의 소송

중앙일보

입력

“열이 40도가 넘는 아들을 차에 태웠습니다. 아들이 땀을 흘리며 ‘엄마, 나 진짜 아파’라고 하더군요. 그게 아들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e즐펀한 토크] 백경서의 갱상도 허스토리

“오래오래 행복하게…” 못 이룬 버킷리스트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군(당시 17세, 오른쪽)과 아버지 정성재(55)씨. 백경서 기자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군(당시 17세, 오른쪽)과 아버지 정성재(55)씨. 백경서 기자

경북 경산시에 사는 정성재(55)씨는 2년 전 아들을 잃은 당시를 회상하며 목이 메였다. 정씨의 아들 정유엽(사망 당시 17세)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초기에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 당시 코로나19가 의심된 정군은 병원들로부터 치료 거부를 당했고 상태가 악화해 숨졌다.

정씨는 지난 16일 경산시 자택에서 가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의 죽음은 코로나19 사태에 의료 공백을 만든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며 “또 다른 감염병 발생 시 아들과 같은 죽음은 없어야 하기에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열 40도 넘자…병원 “코로나 검사 결과 봐야”

2020년 3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와중에 폐렴으로 숨진 고3 정유엽(18)군의 부모가 경북 경산 천주교 성당 묘지에서 아들의 비석을 쓰다듬고 있다. 장세정 기자

2020년 3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와중에 폐렴으로 숨진 고3 정유엽(18)군의 부모가 경북 경산 천주교 성당 묘지에서 아들의 비석을 쓰다듬고 있다. 장세정 기자

정유엽군은 2020년 3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당시는 신천지를 중심으로 대구·경북에 코로나19 확진자가 퍼져 사상 초유의 감염병 사태에 빠졌다. 대구 바로 옆인 경산시에도 확진자가 쏟아져 ‘대구 폐쇄’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정부는 당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마스크 요일제’를 도입했다. 출생연도에 따라 정해진 요일에만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 정군이 마스크를 샀던 3월 10일엔 비가 왔다. 정군은 오후 5시쯤 비를 맞으며 1시간 정도 줄을 서서 마스크를 샀고, 그날 밤 열이 시작됐다.

이틀 뒤 열이 더 심해지자 정군 부모는 인근 K병원으로 정군을 데려갔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열이 40도가 넘는 정군의 코로나19 감염을 의심했다. K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음성이 나와야 치료가 가능하다”며 해열제와 항생제만 처방한 뒤 돌려보냈다.

정군은 다음 날인 13일 오전 일찍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폐X선 촬영을 했다. 당시 의사는 “폐에 염증이 좀 보인다”는 소견을 내면서 “집에 돌아가서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 정군의 아버지가 사정해 차 안에서 겨우 링거를 맞을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간 정군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한 건 그날 오후쯤이다. 정씨는 1339(질병관리청 콜센터)에 급히 전화를 걸었다. 1339에서는 경산보건소로 연결을 해줬고, 보건소에서는 “코로나19 검사가 나오지 않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정군은 K병원으로 다시 향했고, 갑자기 병원장이 나와 정씨에게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정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후 정씨는 영남대병원에서 정군을 받아주겠다고 하자 K병원 측에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정씨는 “당시 직장암 3기 항암치료로 손이 떨리는 와중에 운전대를 잡았다”고 했다.

이후 정군은 영남대병원 음압병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18일 사망했다. 정군의 어머니 이지연(53)씨는 “의사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해서 아들을 보러 갔는데, 아들이 피를 토해 온몸과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이 모든 장면이 우리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말했다.

정군은 사망 직전까지 14차례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13번은 음성이 나왔고, 1번은 양성으로 판단(정씨 부부가 들었던 담당의 소견)됐다. 정부는 정군 사망 직후 최종 ‘음성’ 판정을 했다.

정씨 “이기든 지든 정부에 소송할 것”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군(당시 17살)의 책상. 가족들은 정군의 방을 그대로 나뒀다고 한다. 백경서 기자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군(당시 17살)의 책상. 가족들은 정군의 방을 그대로 나뒀다고 한다. 백경서 기자

정씨가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하는 건 또 다른 감염병이 왔을 때 아들과 같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의료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정씨는 “병원하고는 싸우지 않더라도 국가 상대로는 책임을 묻겠다”며 “이기든 지든, 이 소송으로 진상 조사가 이뤄지고 대책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들 사망 직후 정씨는 주변에서 ‘부검은 왜 안 하느냐’, ‘병원을 상대로 소송해야 한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정씨는 “아들 사망 직후 소송을 안 한 건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아들에게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가 싫어서였다”고 했다.

그동안 정씨 부부는 정부와 K병원 등의 사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K병원 측은 의료분쟁 등을 염려한 탓인지 사과를 하지 않았다. 정부에 요구한 진상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씨가 아들이 죽은 지 한 달 뒤 김부겸 국무총리를 만났을 때, 김 총리는 ‘정유엽법’ 제정을 언급했다. 감염병을 대비해 의료체계를 촘촘하게 만들자는 취지였다.

정씨는 “김 총리의 말을 믿고 정유엽법 제정 등 대책을 기다렸으나, 지난해 9월 ‘의료분쟁으로 해결하라’고 하면서 이마저도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내에 해야 한다. 따라서 정씨는 그간 유명 변호사들을 찾아갔지만 다들 “정부 상대는 힘들다”며 거절했다. 그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서 정씨의 사정을 알게 됐다. 민변 측은 현재 “잠정적으로 (정부 상대) 소송이 가능하다고 보고 검토 중”이라고 했다.

아들 떠난지 2년…남은 가족들은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군(당시 17살)이 사망 1년전 어머니와 함께 쓴 버킷리스트. 백경서 기자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군(당시 17살)이 사망 1년전 어머니와 함께 쓴 버킷리스트. 백경서 기자

정군은 삼형제 중 막내다. 해군 장교가 돼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은 게 꿈이었다. 지금은 정군이 떠나고 입양한 강아지 잼잼이가 정씨 부부 곁에 있다.

이날 찾은 정군의 방 책상 위에는 사망 1년 전쯤 어머니와 함께 쓴 버킷리스트(Buket List·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가 액자에 담겨 있었다. ‘20년 후 공기 좋은 곳에서 (부모님과) 같이 지내기’,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라는 정군의 버킷리스트는 끝내 이루지 못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군(당시 17살)의 어머니가 빚은 모자상. 백경서 기자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정유엽군(당시 17살)의 어머니가 빚은 모자상. 백경서 기자

아버지 정씨는 “아들이 마지막에 밥 먹던 식탁을 보기 힘들어 치웠다”고 했다. 정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생각하며 모자상(母子像) 도자기를 빚어 왔다고 했다. 이씨는 “아픈 아들을 음압병실에 홀로 놔둔 미안함이 컸다”며 “모자상을 빚을 때면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여유가 되면 더 큰 모자상을 만들어 병원 수술실 앞에 놔둘 수 있도록 기증하는 게 이씨의 목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씨부부는 아들을 잃었지만, 심리 상담 등 어떠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정씨가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와 함께 공공의료원 확충 등의 내용이 담긴 ‘정유엽법’ 제정을 추진했던 이유다. 정씨는 정부가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추모 센터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씨는 “작게나마 추모할 공간이 있다면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는 지난해 3월 정군의 사망 1주기에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도보 행진을 24일간 375.4㎞에 걸쳐 진행했다. 오는 19일 오후 2시에는 정군의 사망 2주기를 맞아 경산 남매지 야외공연장에서 추모제가 열린다. 이번 추모제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연대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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